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나의 첫사랑이었다. 미국 유학 시절 석․박사 학위를 모두 윌리엄 포크너로 받았지만,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만 해도 나는 포크너보다 헤밍웨이에 훨씬 관심이 많았다. 그런 내가 헤밍웨이에서 포크너로 전공을 바꾼 것은 그 무렵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작가로 보였던 헤밍웨이에 비해 포크너는 난해한 작가로 이름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난해함을 정복하고 싶은 오기와 지적 자만심 때문에 포크너를 택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헤밍웨이의 작품을 다시 읽으며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품을 읽을수록 헤밍웨이는 포크너 못지않게 어려운 작가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의 작품이 쉽고 단순해 보인 것은 말하자면 착시 현상이었다. 헤밍웨이의 비유를 빌리자면, 그의 작품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빙산과 같아서 8분의 1에 해당하는 부분만이 수면에 떠 있고 나머지 8분의 7은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는 것이다.

내가 『헤밍웨이 선집』을 번역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삼 년 전이다. 1961년 7월 사망한 헤밍웨이의 작품은 현행 국제 저작권법에 따라 2011년 12월말에 번역 저작권이 소멸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지난 2009년부터 헤밍웨이의 주요 작품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생전에 출간한 장편소설이 일곱 권 남짓에 단편소설이 육십여 편 되지만 그중 문학사에 길이 남을 만한 작품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정식으로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장편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1926), 『무기여 잘 있어라』(1929),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 『노인과 바다』(1951) 네 권과 삼십여 편의 단편소설이었다. 금년에 출간하는 헤밍웨이 번역서는 지난 삼 년에 걸친 이러한 노력의 결과이다.

나는 헤밍웨이 주요 작품을 번역하면서 무엇보다 이른바 ‘하드보일드 스타일’이라는 그의 문체를 살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우리말 속담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말이 있지만, 번역만큼 이 속담이 피부에 와 닿는 경우도 없다. 가령 어떤 조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서도 어감이 사뭇 달라진다. 하물며 수면 아래에 8분의 7을 숨기고 있는 헤밍웨이 문체를 번역하는 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이 번역서들에서 헤밍웨이의 육체뿐만 아니라 그 영혼을 살려 내고 싶었다. 지시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함축적 의미까지 옮기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다시 말해 행간의 숨은 뜻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번역자의 이런 의도가 과연 성공을 거두었는지는 오직 독자의 판단에 맡길 뿐이다.

 

번역자 김욱동
(한국외대 영어 통번역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