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나|장편소설 『제리』

▶ 심사위원
김미현, 박성원, 강유정

▶ 본상_ <오늘의 작가상> 기념 모뉴망
(조각가 강희덕 작품)

▶ 부상_ 상금 3000만 원 및 단행본 출간에 따른 인세
(인세가 상금을 상회할 경우의 초과분)

심사 경위

2010년 제34회 <오늘의 작가상>에는 80명의 응모자가 총 82편의 작품을 투고하였다. 응모작의 수는 예년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소재와 주제가 훨씬 다양해졌으며 뛰어난 흡입력으로 끝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작품과 한 번 이상의 정독을 요하는 수준 높은 작품 들이 많았다. 심사위원들은 <오늘의 작가상>의 위상과 성격에 대해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는 심사였다는 데 입을 모으며 수상작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심사는 예심위원과 본심위원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1차 독회를 거쳐 예심을 통과한 작품을 각 심사위원들이 다시 교독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예심과 본심은 각각 소설가 박성원 교수와 문학평론가 김미현 교수, 강유정 씨가 맡아 주었다. 예심을 통과하여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 꿈해몽사전
  • 내 물고기, 길을 묻다
  • 우리는 아웃사이더
  • 좀비들
  • 제리

작품의 정독을 끝낸 심사위원들은 4월 14일, 민음사 회의실에서 본심을 진행하였다. 후보 작품의 장단점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좀비들』과 『제리』, 두 작품으로 압축되었다. 탈북 여성을 주인공 화자로 내세운 『좀비들』은 북한의 식량 위기 등 사회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수작이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키스방에서 일하고 있는 주인공으로 인해 이종교배된 듯한 독특한 설정이 작품의 재미를 한층 배가하고 있다. 『제리』는 불우한 청춘들의 벌거벗은 삶이 시리도록 아프게, 그리고 치명적인 성애 묘사가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감각적인 성장소설이다.
심사위원들은 두 작품이 지닌 미덕과 개성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한 끝에 동시대 젊은이들의 세태를 유희가 아닌 상처, 냉소가 아닌 권태, 관념이 아닌 실감으로 제시한 소설 『제리』를 제34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당선자의 수상을 축하하며, 앞으로도 이토록 파괴적이고 충격적이며 반도덕적인 소설을 통해 한국 문학의 또 다른 돌파구를 계속적으로 제시해 줄 것을 바라 마지않는다.

심사평

▶ 당선작인 『제리』는 21세기적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 ‘루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청춘들에 대한 킨제이 보고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안티-나르키소스 세대, 희망을 갖는 것이 섹스하는 것보다 더 비경제적인 88만 원 세대의 절대 절망과 자해적 섹스가 다큐멘터리보다도 더 리얼하게 동영상처럼 제시되고 있다. 「톰과 제리」에서의 제리처럼 출발부터 뒤처져 있는 신(新)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청춘들에게 허락된 자본 혹은 일상은 무의미하다는 말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섹스뿐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섹스가 야하지 않고 슬프게 다가오는 이유, 메타포가 아니라 리얼리티로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1세기 청춘들의 절망은 그들의 삶보다 오래 지속되고, 그들의 섹스는 그들의 삶보다 언제나 빨리 끝난다.
인천에 있는 2년제 야간대학에 다니는 여주인공 ‘나’와 호스트바(노래바)의 선수인 남주인공 ‘제리’는 “뭘 해도 안 되는 세대, 애초부터 글러 먹은 신세”들이다. 당연히 꿈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이 가장 당혹스럽고, 지금처럼 다시 살게 될까 봐 죽는 것도 두렵다.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썩은 동아줄이다. 하지만 그 줄을 잡으면 땅에 떨어질 줄 알면서도 잡을 수밖에 없는 역설적 초연함을 이 소설은 담담하면서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보다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입장에서 루저가 된 88만 원 세대들의 아픔을 심층적으로 조망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소설 속 청춘들의 절망이 ‘메시지’가 아니라 ‘취향’처럼 다가오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결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게 다 내가 시작한 일이고 스스로 만들어 낸 상처”라는 자각이 앞에서의 소설적 파괴력을 감소시키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모든 단점을 능가하는 이 소설의 최대 장점은 동시대 젊은이들의 세태를 유희가 아닌 상처, 냉소가 아닌 권태, 관념이 아닌 실감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21세기에 맞춤한 또 한 사람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닮은 작가를 가지게 되었다. ― 김미현(문학평론가)

▶ 수상작은 『제리』이다.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불편했고, 다 읽은 다음에도 며칠 동안 불쾌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불편했고, 불쾌했던 까닭은 내 마음속 한구석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도덕(moral) 때문이었다. 푸코는 도덕을 개인에게 제시되는 가족, 교육기관, 교회 등의 다양한 규제 체제라고 했다. 도덕은 언제나 정당한 것인가? 푸코는 『성의 역사』 1권에서 도덕에서 벗어난 개인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이야기했다. 도덕이 개인에게 가하는 요구도 때론 매우 폭력적이다. 도덕이 시대에 따라 변하고 가면을 바꾸는 것처럼 도덕이 개인에게 끼치는 폭력도 바뀐다. 『제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웬만한 4년제 대학에도 가질 못하고, 그저 도우미가 나오는 노래방이나 호스트바에서 남자를 고르는 일만 즐긴다. 주인공은 의미 없는 섹스를 마치 출근하듯 나누고, 그 어떠한 일에도 ‘충격’을 받지 않는다. 윤리니, 자각 따위는 상실한 채 감정은 결여되어 있다. 그래서 불편하고 불쾌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단 개인에게 가해진 도덕의 잘못인지도 모른다. 대학은 더 이상 학문을 연구하는 곳이 아니다. 조기교육부터 대학 입시까지 관통하는 교육은 생존권과 노동권을 가지기 위한 도덕의 사육장이 되어 버렸다. 대학은 사회적 기능인의 배출소이며, 취업을 하기 위해선 전혀 엉뚱한 ‘여대생 해병대 캠프’까지 다녀와야 하는 실정이다. 전근대의 도덕이 물리적 폭력의 양상을 보였다면 지금의 도덕은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다만 개인들을 자발적인 ‘속물’과 노예로 만들고 있을 뿐이다. 근래 발표된 문학상 수상작들, 이를테면 임영태의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이나 문진영의 『담배 한 개비의 시간』(제3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등은 도덕 속에서 ‘무위’로 방황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러나 『제리』는 같은 ‘무위’로서의 방황을 보여 주고 있지만 도덕의 모습을 정면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글을 읽는 내내 불편하고 불쾌한 것이다. 우리들은 도덕이 지닌 위선과 폭력을 알고 있지만 애써 외면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들도 일정 부분 도덕의 노예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리』는 ‘벌거벗은 삶’들을 정면으로 이야기한다. 충격적이지만 외려 슬프고 쓸쓸해진다. 반어(irony)를 사용하지 않고도 반어가 소설을 관통하고 있다. 1994년에 발표된 신이현의 『숨어 있기 좋은 방』 이후 가장 충격적이고, 반도덕적인 소설이다. ― 박성원(소설가)

▶ 최종적으로 선정된 작품은 『제리』이다. 『제리』는 첫 장면부터 독자를 당혹스럽게 한다. 노래방에 모여서 남자 도우미들을 불러 선택하는 과정은 대개의 독자가 경험하지 못한 이상하고도 낯선 세계의 존재를 예감케 한다. 그 세계는 바로 88만 원 세대라는 지적인 호명조차 받지 못한 채, 주변 어딘가를 떠돌고 있는 삼류 20대들의 공간이다. 입사 원서를 내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스펙에 집안 환경을 지닌, 삼류 20대들은 일류들의 세상에서 점점 멀어져 간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살아 있다는 느낌을 고통의 징후로 환원한다. 고통과 상처에서 살아 있음을 확인하지만 그녀는 고통을 호소하거나 사유화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렇게 살아갈 뿐, 왜 혹은 어떻게 그런 삶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묻지 않는다.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 그녀의 초연한 태도는 부끄러움과 당혹의 몫을 모두 독자에게 건넨다. 연민과 공감, 멜랑콜리와 애도로 특징지어지는 20대의 주류 문화와 달리 김혜나가 제시하는 20대의 삶은 우리를 불쾌한 발견의 지점으로 데려간다. 도서관이나 책상에서 상상한 삶이 아닌, 길 위에서 직접 체감한 하드보일드한 삶의 질감들이 잠잠한 동년배 소설의 감상 사이를 파고든다. 이 침범은 최근 한국 소설에 없었던 새로운 어떤 표정으로 바뀐다. 동시대 소설에 낯선 무늬를 그려 줄 새로운 작가의 탄생에 기대와 축하를 함께 전한다. ― 강유정(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