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이번 주말은 산에 갈까 해

 

 

자연의 아름다움에 다가서기
어느덧 시월 마지막 주의 레터입니다. 한동안 이어지던 늦더위가 가시고 이제는 아침저녁마다 확실한 가을을 느끼고 있어요. 그래도 아직은 덜 춥다며 틈만 나면 어디론가 놀러갈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이번 주말 “더 추워지기 전에 가을 산을 오르자”라는 원대한 꿈을 실행할 참이었습니다만…… 갑작스러운 발목 부상으로 내년 봄을 기약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답니다. 칙칙한 도심 빌딩 숲을 벗어나 가을 햇살 내리쬐는 돌산을 체력 닿는 만큼 오르고, 산에 내준 체온을 하산 후 막걸리 한 잔으로 덥히려던 계획도 저 멀리 사라졌지요.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이주한 몽족 아이 리아의 이야기를 소개한 지난 레터에 많은 분께서 감상을 보내 주셨어요. “흥미로운 내용이네요. 리아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집니다.” “경계의 선명함 혹은 경계의 위험성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책, 레터, 인터뷰가 엮인 이야기 재밌었어요!”라는 형식에 관한 코멘트도요.  매주 피드백에 다시금 감사드리며, 오늘 레터는 분위기를 조금 바꾸어 이 책을 소개해 봅니다. 저처럼 피치 못한 사정으로 산에 갈 수 없는 분, ‘나가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엉덩이가 무거운’ 분들이 산에 대한 기록을 읽으며 산의 흥취를 상상해볼 수 있는 책. 조선 선비의 산행기를 모은 동양고전 『산문기행』입니다.
선인들은 산놀이에서 일어나는 감흥과 생각을 시와 산문으로 적었고, 그 시문들을 유산록(遊山錄)으로 엮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유산록을 읽으면서 미리 일정을 잡고, 유람 길에 다른 사람의 기록과 자신의 경험을 대비하며 사색했다. 그리고 자신의 유산록이나 다른 사람들이 기록한 유산록을 읽으면서 마치 스스로 거듭 산에 노니는 것 같은 기쁨을 누렸다. 그것을 와유(臥遊, 누워서 놂)라고 했다.
조선 중기의 학자 김일손은 「두류기행록(頭流紀行錄)」 첫머리에 이렇게 썼다. “선비가 태어나서 박이나 외처럼 한 지방에 매여 사는 것은 운명이다. 천하를 두루 구경하여 자기가 지은 시문들을 쌓아 놓지 못할진대, 제 고장의 산천쯤은 둘러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일이란 어그러지는 경우가 많아서 늘 뜻을 두고도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열에 여덟아홉은 된다.”
그렇게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 와유라도 하면서 산수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고 정신의 자유를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 심경호, 「산문기행,

「책을 엮으며」, 10~11쪽에서

고급 장비로 무장한 요즘 등산객들이 산 정상에 오른 흥취를 여러 장의 ‘인증샷’으로 기록한다면, 가진 건 대나무 지팡이와 짚신, 두터운 솜옷뿐이었던 옛 선인들(유몽인, 「유두류산록」)은 유람길에서 보고 느낀 것을 매일 기록해 유록(遊錄) 형태로 남겼다고 합니다. 산에 오르기 전에는 다른 사람의 유산기를 읽으며 미리 일정을 잡고, 산행길에는 그 기록물을 챙겨 가 자신의 경험과 비교하기도 했지요. 유산록은 그야말로 그 시절 산을 즐기는 특별한 매개체였던 셈입니다.
“제 고장의 산천쯤은 둘러보려” 했지만 좌절된 지금의 상태를 550여 년 전 인물의 문장으로 위로받으니 조선 시대의 글도 그리 멀지 않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봄 서울 서대문구의 인왕산을 오르며 조선 중기 문인 김상헌의 「유서산기」를 펼쳤던 것처럼 이번주 가기로 한 경기도 과천시 관악산의 모습을 옛 글로 먼저 만나볼까 해요. 18세기 정조 대 남인 정치가 채제공이 예순일곱의 나이로 관악산 정상 연주대에 오른 장면입니다.
마침내 절 뒤편의 가파른 벼랑길을 넘어가는데, 혹은 끊어진 길과 깎아지른 벼랑을 만나기도 했다. 그 아래가 천 길이므로 몸을 돌려 절벽에 바짝 붙어서 손으로 늙은 나무뿌리를 바꿔 잡으며 조금씩 조금씩 발을 옮길 뿐, 현기증이 날까 봐 두려워서 옆으로 눈길을 줄 수조차 없었다. 혹 큰 바위가 길의 척추 부분을 완전히 걸터 있는 곳을 만나면 앞으로 나갈 수 없어, 입을 크게 벌리고 있으면서 그리 뾰족하지 않은 곳을 골라 엉덩이를 거기에 붙이고 두 손으로 그 곁을 부여잡으며 천천히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고쟁이가 뾰족한 부분에 걸려 찢어져도 챙기고 돌아볼 틈이 없었다. 이와 같은 곳을 여러 번 만난 다음에야 비로소 연주대 아래에 이르렀다.
이미 정오였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놀러 온 사람 중에 우리보다 먼저 연주대에 올라간 이들이 만 길 절벽 위에 서서 몸을 굽히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흔들흔들 마치 떨어질 듯하므로 바라보자니 모골이 죄다 거꾸로 서듯 송연해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하인을 시켜 큰 소리로 “그만두시오, 그만두시오!”라고 외치게 했다. 나 또한 마음과 몸의 기력을 다 쏟아서 엉금엉금 구부정하게 마침내 그 정상에 다다랐다. 정상에는 바위가 있는데 평평하고 널찍해서 수십 명이 앉을 만했다. 그 이름을 차일암이라고 한다. 전에 양녕 대군이 왕위를 피해 관악산에 와서 살 때 가끔 이곳에 올라와 궁궐을 바라보다가, 햇살이 지지는 듯 뜨거워 오래 머물 수가 없어 작은 장막을 치고 앉았다고 한다. 바위 귀퉁이에 구멍을 파서 상당히 오목한 것이 네 개인데, 대개 장막 기둥을 고정시킨 것이다. 그 구멍이 지금까지 뚜렷하게 남아 있다. 이 대는 연주대라 하고 바위를 차일암이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연주대는 구름 하늘에 우뚝 솟아 있어 나 자신을 돌아보니 천하 만물 중에 감히 높이를 다툴 만한 것이 없다. 사방의 봉우리들은 자잘자잘해서 고려할 것이 못 된다. 오직 서쪽가에 거뭇한 기운이 쌓여 끝없이 뻗어 있는데 아마도 하늘과 바다가 이어져 있는 듯하다. 하지만 하늘에서 보자면 바다고 바다에서 보자면 하늘이니, 하늘과 바다를 또한 누가 분간할 수 있겠는가?

 

― 체제공, 「유관악산기(遊冠岳山記)」,

「산문기행, 174~175쪽에서

정상까지 가는 길이 아주 험해 기력이 못 미칠까 걱정하는 승려의 말에 채제공은 이렇게 응대합니다. “천하만사는 마음에 달렸을 뿐이네. 마음은 장수요, 기운은 졸개이거늘 장수가 가는데 졸개가 어찌 가지 않겠는가?”
그러나 산에 오르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만만치 않습니다. “그만두시오, 그만두시오!” 하는 채제공의 외침이 ‘제발 천천히 가자!’ 하는 등산 때 저의 속마음과 겹쳐 들립니다. 그가 남긴 생생한 기록에서 “마음과 몸의 기력을 다 쏟아” 정상에 오른 사람만 느낄 수 있는 상쾌함과 안도감까지 읽어내게 되는데요. 이렇게 산 위에서 가만히 사방을 둘러보며 떠올리는 상념은 나와 산의 감응으로 빚어지는 고유한 무언가가 아닌가 합니다.
올해 초 다리를 다치기 전 한창 등산에 열을 올린 시기가 있었습니다. 거의 매주 이 산 저 산 정복하듯 다녔는데요. 마지막 등산은 북한산이었어요. 가득이나 공복 상태였던 제 남은 체력이 감당할 만한 코스는 ‘용암문이나 대동문 정도에서 원점회기’ 정도였지만 ‘조금만 더’ 하는 욕심에 꼭대기인 백운대까지 향했습니다. 그리고 내려오는 길에 다리를 접질리고 말았죠.
아래로 떨어지는 짧은 순간 그날 제가 부린 욕심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정상은 ‘찍고’ 가야지 하는 욕심, 전 주보다 조금 더 빨리 그리고 멀리까지 가 보고자 한 욕심, 조금 더 공복을 유지하면 다이어트에도 좋지 않을까 했던 욕심……. 이 욕심 때문에 저는 3개월 가까이 보호대 신세를 졌고 등산은 물론 아무런 운동도 못하게 됐습니다. 말 그대로 과유불급의 산행이었죠.
그렇게 강제로 등산과 멀어져 있다 『산문기행』의 북한산 편(이덕무, 「기유북한」)을 펼치니 이런 문장이 보입니다. “바람이 메말라 까실까실한 느낌을 주고 이슬이 깨끗해 투명하게 하는 것은 8월의 멋진 절기다.” 음력 8월의 가을 공기를 감각적으로 표현한 옛사람의 표현에 책의 저자 심경호 교수는 이렇게 덧붙이지요. “지금 우리는 북한산에서 감각적인 인상을 얻어 낼 만큼 자유로운 정신을 지니고 있는가?” 글을 읽으며 전에 올랐던 등산길이 떠오르고, 다시금 ‘등산’의 의미를 새기며 산에 오르고 싶단 생각도 피어올라요. 단 이번에는 정복하듯 말고 여유롭게요.
올봄에 관악산 연주대를 올랐는데 레터의 인용글로 만나니 반갑네요. 당시에 연주대를 오르며 너무 힘들어서 몇 번이고 바닥에 주저앉았는데, 「유관악산기」를 읽고 올랐다면 예순일곱에 산을 오른 채제공의 걸음을 상상하며 조금은 더 의젓하게 산행을 즐기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어요.
산행이나 산책을 좋아하신다면 『산문기행』 속 산들을 먼저 글로 감상하고, 선조들이 오른 산을 현재의 내가 따라 올라가 본다는 느낌으로 하나씩 돌아보아도 좋을 거 같아요. 산 오르기 좋은 계절이기도 하니까요.
맞아요. 올가을은 아니지만 조만간 꼭……! 책의 저자 심경호 교수는 [링크] ‘산수를 찾아 떠나게 하는 책 다섯 권’을 추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어요. 지금 우리 산은 생채기가 나고 일그러진 곳이 없지 않으며 이러저런 이유로 가보지 못하게 된 곳도 있지요.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누워서 노니는 산수’의 한 구절, “저녁달이 동쪽 봉우리에 뜨면 하늘은 깨끗하고 뭇 사물이 숨을 죽였다”에 눈을 주면서, 청정한 나의 정신을 환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 우리는 저 산과 저 물의 풍광에 취하여 명랑한 기분을 한껏 되찾게” 된다고요.
다리를 접질러서 산에 올라가지 못한 이야기, 올라갔다가 다리를 접질린 이야기…이야기를 쭉 들으니 또 하나의 책이 쓰이고 있는 것만 같아요. 산을 둘러싼 즐거움은 직접 오르는 것에 더해, 이렇게 산 이야기를 쓰고 또 쓰는 일에도 있다는 것! 청정한 색상의 신간 『산문기행』에서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제 출간이 며칠 안 남은 2023년 민음사 인생일력에도 이렇듯 살뜰한 옛 문장들을 많이 인용해 두었죠. 저 또한 오는 주말에는 산행 대신 술집에나(또) 가게 되었지만, 꿈만은 크게 꾸고자 지금은 갈 수 없는 산에 관한 시를 떠올려 봐요.
우뚝 솟은 산부리는 새 넘는 길을 굽어보고
맑고 깊숙한 골안은 신선 자취 감추었네.
동쪽에 노닐어 그 절정에 올라서
우주를 내려다보며 가슴속 씻고파라.
― 권근 「금강산」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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