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 서로 다른 시선이 충돌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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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레터 ‘모든 사람이 이미 어디선가 본 듯해’에서 올가 토카르추크의 에세이 『다정한 서술자』를 소개해 드렸어요.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소개되어 반가웠다”, “출근 시간에 읽으면서 가니까 지루하지 않았어요. 유익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느낌” 보내 주신 반응들을 보며 편집자들은 몹시 뿌듯해했답니다. “시점의 유연성, 다양성을 뛰어넘어 전우주적 포괄성을 느낀다.”라는 반응도 있었어요. “우리는 더 이상 비온트(biont, 생리적 개체)가 아니라 홀로비온트(holobiont), 즉 전(全) 생명체다.”라는 『다정한 서술자』의 주장이 다시 한번 생각나네요.
오늘 소개해 드릴 책은 『리아의 나라』인데요. 두 책의 표지, 어쩐지 비슷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모두 사람의 옆모습을 형상화하고 있지만 경계가 만들어 내는 그림에 눈을 두게 돼요. 『리아의 나라』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함께 읽어 볼까요?
‘루빈의 꽃병(Rubin vase)’은 덴마크의 심리학자 에드가 루빈(Edgar Rubin)이 고안한 이미지로, 어느 곳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 보일 수 있음을 말한다. 『리아의 나라』에서 앤 패디먼은 리아가 태어나고 자라난 머세드 지역 몽족을 루빈의 꽃병에 간접적으로 비유한다. 이 대목을 마주한 순간, 이것이 바로 『리아의 나라』를 담아내기에 가장 걸맞은 꽃병이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이 꽃병을 머세드의 몽족을 소개하는 용도로 활용하였지만, 그와 더불어 『리아의 나라』가 다루는 미국과 몽족 문화의 관계와도 상당히 유사하다는 감상을 받았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대척하거나 혹은 마주 보고 있는 두 얼굴, 그리고 두 얼굴이 만든 경계에 머무르는 연약한 꽃병…….

 

― 반비 책타래, 「꽃병에 담긴 것:

『리아의 나라』를 디자인하며」중에서

“대척하거나 혹은 마주 보고 있는 두 얼굴, 그리고 두 얼굴이 만든 경계에 머무르는 연약한 꽃병”. 인간과 새와 개구리를 넘나드는 시점을 이야기하는 『다정한 서술자』가 떠오르는 대목이네요. 이야기 속에서 여러 관점을 넘나드는 해방감을 지난 레터에서 다뤘다면, 이번에는 서로 다른 관점이 충돌하는 만나는 현실 편이에요.
『리아의 나라』는 캘리포니아주 머세드로 이민한 몽족 가족의 아이 리아의 이야기예요. 리아가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발작을 일으켰을 때, 미국 병원의 의사들은 ‘뇌전증’으로 진단하고, 리아의 가족들은 ‘영혼에게 붙들려 쓰러진 병’으로 인식하지요. 리아의 담당 의사는 리아의 가족들을 보며 “서로 세상을 보는 방식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하며 약간의 경외감을 갖게 되었다”라고도 말하는데요. 차이를 실감하게 되는 대목을 한번 읽어 볼까요?
이들(몽족)에게 익숙한 무속적인 치유의 체험에 비한다면 더욱 부족한 게 서양 의술이었다. 치 넹은 아픈 사람의 집에 찾아가 여덟 시간 동안 있기도 했다. 그에 비해 서양 의사는 환자가 아무리 아파도 병원으로 오도록 했고 병상 곁에 와서 기껏해야 20분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치 넹은 정중하고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의사는 환자의 생활에 대한 온갖 무례하고 은밀한 것들, 심지어 성적 습관이나 배변 습관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치 넹은 즉각적인 진단을 내릴 수 있었다. 의사는 흔히 혈액 샘플을 요구하거나(심지어 오줌이나 똥울 요구하기도 했고 그것을 작은 병에 담기를 좋아했다.) 엑스레이를 찍었고 연구소에서 결과가 오기까지 며칠을 기다리곤 했다.

― 앤 패디먼, 이한중 옮김,

『리아의 나라』, 67쪽에서

처음 표지를 보고 두 얼굴이 만드는 경계에서 긴장감이 느껴졌어요. 소개해 주신 대목에서 알 수 있듯, 리아를 중심으로 드러나는 문화 간 충돌을 지켜볼수록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는데요. “서양 의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시각을 가졌던 저는 초반에 리아의 병을 대하는 리아 가족과 몽족 사람들의 방식과 태도에 답답함을 느꼈다는 걸 고백해야겠어요. 하지만 책을 읽어 가면서 그 안타까움의 방향이나 내용이 바뀌어 나갔다고 할까요. 무엇보다 두 얼굴의 대면, 두 문화 간 만남에, 또 문화 충돌, 문화 갈등이라고 하는 것에는 “권력의 비대칭성”이 깔려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슬프면서도 감동적인 점은 리아의 부모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 그리고 병원 의사들도 리아를 깊이 아끼고 사랑했다는 사실이에요. 그러나 필요한 때에 서로를 신뢰하지는 못했지요……. 특별히 사랑받았던 아이 리아의 이야기는 쉽게 어느 한쪽으로, 간단히 정리되지 않는 복잡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 레터에 반비의 책타래를 인용한 기세를 몰아, 또 하나의 뉴스레터를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출판사 유유에서 발행하며 ‘책의 세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싣는 보름유유’인데요. 지난 주 뉴스레터에 《한편》의 ‘패션과 내면을 보는 편집자’ 님이 출연했다는 소식입니다.

 ‘편집의 기쁨과 슬픔’에 관해 이야기해주세요. 제가 이 질문을 받아서 답한 적이 있는데, 선배 편집자는 이 일을 하며 어떨 때 슬프고 어떨 때 기쁜지 궁금하더라고요.

 

 슬플 때부터 이야기하면… 주 업무인 교정지를 보기 싫을 때 슬프죠. ;;^^;; 일하면서 사람들과 소통이 잘 안 될 때가 가장 슬프고요. 거꾸로 기쁠 때는 회사 동료나 저자와 이야기가 잘 될 때. 특히 오늘 인터뷰를 청해주신 것처럼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는’(『논어』) 경우입니다.

 

제가 학생 때부터 흠모하는 저자가 있었는데요. 그분이 운영하는 카페나 블로그를 구독한 지 10년이 지난 후 출간을 제의하는 메일을 보냈었어요. 그런데 2019년 당시에는 서로 이야기가 잘되지 않았어요. 그러다 이분이 2년쯤 지나 저에게 연락을 한 거예요. 새로 계획하는 저술에 의견을 구하면서 출간 제의까지 먼저 해주셨어요. 이때가 강렬한 기쁨을 느낀 순간 중 하나였죠. 곧 이분의 책이 나온답니다.

하하하, 오늘 뉴스레터 어셈블이네요! ‘한편의 편지’ 구독자 여러분에게만 알려드리는 이 기쁜 이야기의 주인공은 탐구 시리즈 일곱 번째 책인 ‘이동의 위기 탐구’랍니다. 『거대도시 서울 철도』의 저자 전현우가 쓰고 있어요. 올겨울 최고의 기대작!
보름유유 김은우 편집자님은 일의 기쁨과 슬픔을 질문하면서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함께 들려달라고 주문했는데요. 역시 슬픈 일의 실제 사례를 들기는 꺼려졌어요. 강렬한 슬픔을 느낀 순간을 잘 설명하려면 긴 배경 이야기, 등장인물 파악, 감정 공유가 필요하잖아요. 소통이 잘 안된 사건이 왜 분노나 답답함이 아니라 슬픔을 불러일으키는지 이해하려면요.
『리아의 나라』는 바로 그런 소통의 비극이기도 합니다.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을 쓴 의료인류학자 김준혁이 추천사에서 짚고 있는 대로요. “이 책은 사이에 문화의 높다란 장벽이 있어 소통할 방법을 모르던 부모와 의사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한 아이를 소중하게 여길 때 발생하는 비극을 그린다.” 제가 큰 슬픔을 느낀 대목을 인용하면서 마칠게요.
그는 리 부부와 의사들 사이의 간극은 메울 수 없는 것이어서 무엇으로도 결과를 바꾸지 못했으리라 보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리아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무슨 문제든 마주앉아 오래오래 얘기를 하다 보면 안 풀릴 게 없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리 부부의 경우, 우리는 필요하다면 녹초가 되도록 대화를 나눌 용의가 있었지만(그리고 그들을 세계 최고의 통역자가 있는 의과대학에라도 보내주겠다는 심정이었지만) 그래봤자 그들은 자기에 방식이 옳고 우리는 틀렸다고 생각할 거예요.”
댄은 미지근한 코코아를 천천히 저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는 밤샘 대기 근무를 하던 중이었다.
“리아의 케이스로 저는 더 이상 세상을 이상주의적으로 볼 수 없게 됐어요.”

메울 수 ‘없는’ 간극이었다고? 나는 리아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리 부부가 MCMC 의료진과 처음 마주치던 때를 자꾸 떠올리게 되었다. 당시 통역자는 아무도 없었고 리아의 뇌전증은 폐렴으로 오진되었다. 만일 응급실의 전공의들이 ‘동물 병원 의사’가 되는 대신, 몽족이 믿거나 두려워하거나 바라는 걸 알려고 노력해 애초부터 리 부부의 신뢰를 얻어낼 수 있었다면(아니면 적어도 신뢰를 짓밟지 않았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 앤 패디먼, 이한중 옮김,

『리아의 나라』, 426~427쪽에서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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