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스시 전집』의 작가, 판타지의 어머니 어슐러 K. 르귄

Q. 어스시 전집이 드디어 6권 『또 다른 바람』이 출간되며 완간되었습니다. 어스시 전집을 처음 접하게 된 한국 독자에게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A. 어스시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어스시의 마법사』에서 시작한 게드의 이야기가 그와 그의 친구들, 그리고 적들과 함께 오랜 세월을 거쳐 드디어 마지막 여섯 번째 권 『또 다른 바람』에 이르렀습니다. 어스시 이야기 여섯 권은 제가 30년이 넘게 쓴 책입니다. 모두 즐겁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Q. 어스시 전집은 다른 판타지 소설, 예를 들어 『반지의 제왕』이나 『나니아 연대기』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의 소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린왕자』처럼 읽을 때마다 작품에 녹아든 저자의 생각을 새삼 이해하고 감탄하곤 합니다. 어스시 전집을 처음 집필하게 된 동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A. 어스시 이야기의 첫째 권을 쓸 때 맨 처음 떠올린 생각은 ‘위대한 마법사가 어린 소년이었을 적의 이야기를 써보자’ 하는 것이었어요. 당시(1968년)에는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쓰지 않았거든요. 그 시절의 마법사는 하나같이 하얀 수염을 기른 노인이었지요. 전 이렇게 자문해 보았어요. ‘그 사람들은 어떤 수업을 거쳐 마법사가 되었을까? 마법사 학교라도 다녔을까?’ 그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어떤 책을 써야 할지 알겠더군요. 사실 여러 권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첫째 권을 다 쓰고 보니 자꾸만 생각이 나더군요. 어스시의 수많은 섬들, 카르그 4대도…… ‘그곳에는 누가 살았을까? 어스시의 어느 여인 이야기를 써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지요. 그래서 둘째 권인 『아투안의 무덤』을 썼고…… 이야기가 자라나면서 한 권 또 한 권 쓰게 되었어요.(셋째 권*(『머나먼 바닷가』)*과 넷째 권*(『테하누』)*을 쓰는 사이에 제 인생은 17년이나 흘러가 버렸더군요…… 하지만 어스시의 시간은 조금도 흐르지 않았어요! 어때요, 이거야 말로 진짜 마법 아닌가요?)

Q. 어스시 전집에서 게드는 아주 특별한 인물이죠. 게드라는 캐릭터를 창조할 때 특별히 신경쓴 부분이 있다면 얘기해 주세요.
A. 첫째 권을 쓰기 시작할 당시에는 게드에 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어요. 강한 힘을 지녔으나 무지하고 완고한, 그래서 위험한 사람이라는 것만 알았지요.
게드가 나이를 먹을수록 그의 의지는 더욱 강고해졌고, 저는 그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허락할 수밖에 없었어요. 왜냐하면, 어스시 이야기가 어떻게 풀릴지 아는 사람은 바로 게드였거든요.(저는 몰랐는데 말이에요!)

Q. 그렇다면 어스시 전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이 이다면요? 역시 게드인가요?
A. 그럼요, 게드가 가장 마음에 들지요. 하지만 어스시에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게드 말고도 여럿 있답니다. 테나는 제가 무척이나 아끼는 사람이에요. 여섯째 권 『또 다른 바람』에 나오는 세세락 공주는 제게 놀라움이자 기쁨이었어요. 제 말을 안 듣는 점이 게드 하고 똑같았거든요! 하지만 공주 덕분에 웃기도 했어요.(제 손녀들 중 한 명하고 조금 닮았어요.)

Q. ‘어스시(Earthsea)’라는 이름은 그 말 그대로 대지와 바다라는 뜻인데요, 만들 때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고 만든 것인지요?
A. 그저 드넓은 바다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섬들을 가리키기에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바다에 떠 있는 조그마한 땅 조각들이라는 뜻으로 말이지요.

Q. 게드의 스승인 오지언이 다른 마법사들처럼 비구름을 마법으로 쫓지 않고 그냥 맞고 있는 걸 한심해 하는 어린 게드의 모습을 보면 노자의 무위자연이 떠오르는데요, 다른 책에서도 가끔 동양 사상에 대해 선생님의 관심이 드러나곤 한다. 동양 사상이 실제로 어스시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인가요?
A. 제 작품은 모두 노자의 글에서 영감을 받아 쓴 것들이에요. 노자의 사상과 정신은 제가 소녀였을 적부터 저의 길잡이였지요.
『도덕경(道德經)』을 영어로 옮겨 발표한 적도 있어요.(그 책은 머지않아 미국의 샴발라 프레스 출판사에서 다시 출판할 예정이에요.) 중국어를 하지는 못하지만 단어 대 단어로 직역을 하는 등 여러 번역 방식을 동원했고, 고대 중국 문헌을 읽을 수 있는 학자이자 시인인 지인과 힘을 모아 작업했어요.

Q. 어스시 전집은 여러 차례 영상화가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원작자의 작품이 영상으로 새롭게 만들어지는 건 작가에게 꽤 독특한 경험일 거 같아요. 최근 할리우드가 SF나 판타지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영상화를 시도하는 경우가 부쩍 늘어나고 있는데요, 이런 현상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혹시 들을 수 있을까요? 또한 긍정적이라면 개인 작품 중 영상화된 걸 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작품이 있는지요?
A. 아쉽게도 할리우드와 일본에서 ‘어스시’라는 이름으로 만든 영화들은 책에 담긴 이야기를 전하지 않았고, 등장인물의 성격까지 바꿨어요. 게다가 영화에 나오는 무책임하고 무의미한 폭력은 경악스럽고 화가 날 정도이더군요.
저는 영화를 하나의 매체로서 무척 좋아하고, 영화 극본도 두 편 써본 적이 있어요. 하지만 영화 제작자들에게 이런 식으로 배신당하고 보니 앞으로는 제 글을 영화로 만들도록 허락할 때 아주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Q. 『테하누』가 1990년에 출판되고 11년만에 단편집인 『어스시의 이야기들』과 『또 다른 바람』이 출간되었습니다. 제목으로 추측해 보건데 『테하누』를 쓸 당시만 해도 원래 『또 다른 바람』은 계획에 없던 작품 같은데요, 『또 다른 바람』을 구상하게 된 계기나 동기를 알고 싶어요.
A. 전에는 『테하누』가 어스시 이야기의 마지막 책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 생각이 틀렸더군요! 몇 해가 지나고 나서 어스시의 여러 섬과 사람들이 또다시 떠오르기 시작했고, 이야기를 어떻게 계속해야 할지 깨닫게 되었지요. 못 다한 시작(『어스시의 이야기』)과 진정한 끝(『또 다른 바람』)을 함께 찾아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Q. 오랜 세월 어스시 전집을 완성하면서 작품의 세계관이나 주제 면에서 작가 본인이 생각하기에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는지, 그렇다면 그것이 어떤 점인지, 그것에 영향을 미친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A. 어스시 전집 여섯 권에서 어스시는 모두 똑같은 세계예요. 오직 등장인물들만이 성장하고, 살아가고, 더 많이 배워가지요…… 어느 영국 시인이 말했듯이, 그들은 “슬픔을 알아가면서 현명해지는” 거예요.
하지만 어스시 이야기의 마지막 책은 기쁨을 주었어요. 저한테는요.

Q. 마지막으로 한국 독자들과는 그동안 인터뷰나 팬레터를 통해 몇 차례 교감을 나눈 적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인터뷰가 가장 최신 인터뷰가 될 테니, 한국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근황과 집필 중인 작품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새 책 『라비니아』는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쓴 걸작 서사시 『아이네이스』를 읽다가 쓰기로 마음먹었어요. 주인공 라비니아는 『아이네이스』에 나오는 인물로서, 영웅 아이네이아스와 결혼할 운명을 타고난 젊은 왕녀이지요. 『아이네이스』에는 라비니아가 한 말이 한마디도 나오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어요. 『아이네이스』의 이야기를 ‘그녀 자신’이 본 대로 얘기해 준 거예요. 그래서 저는 자리에 앉아 그녀한테 들은 얘기를 쓸 수밖에 없었어요. 정말로 즐거운 경험이었지요.
저는 오는 10월에 여든 살 생일을 맞게 되었어요. 갈수록 조금씩 게을러지는 기분이 들어요. 소설은 안 쓰고 시만 쓰는 것 같거든요. 하지만 앞일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법! 노자는 이렇게 말했지요.

“조금만 갖고,
적게 원하라.
규칙을 잊어라.
근심을 버려라.”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도는 늘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이루지 못하는 바가 없다.”

친애하는 한국 독자 여러분, 부디 규칙을 잊고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은 이루어질 테니까요.

어슐러 K. 르귄

<번역: 장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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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경 원문 참조

조금만 갖고 적게 원하라 -> 소사과욕(少私寡慾), 『도덕경』 제19장
규칙을 잊어라, 근심을 버려라 -> 절학무우(絶學無憂), 『도덕경』 제20장
도는 늘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이루지 못하는 바가 없다 -> 도상무위이무불위(道常無爲而無不爲), 『도덕경』 제 37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