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 논픽션 전집_입체북

 

 

우리 시대 대표적인 석학과 예술가 들의 독서 취향을 소개하는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가 100회 기념으로 최다 추천 도서 목록을 발표한 적이 있다. 보르헤스의 『픽션들』이 총 3,686권의 책들 중 TOP 30을 차지했는데, 그 이후로도 ‘지식인’들의 애독서로 꾸준히 추천되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전쟁과 평화』와 함께 꼭 읽어야 하는 픽션으로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 이런 정도라면 상당히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것 같은데, 꼭 그렇지도 않다. 시청률보다 화제성이 더 큰 드라마, 막상 끼어들려고 하면 간단한 복선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마니아 드라마처럼 때로 그 정교함이 이해를 방해하는 존재들이 있다.

이렇듯 보르헤스에 ‘입덕’하기 원했던 독자들도 복잡한 표식과 풍부한 상징에 겁을 먹고 완독을 포기했을지 모른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다.

 

그(비오이)는 그 구절을 다음과 같이 기억했다. ‘성교와 거울은 혐오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백과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고 했다. “(중략) 거울과 부권(父權)은 가증스러운 것이다. 그것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증식시키고, 분명하기 그런 사실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중에서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는 『픽션들』에 수록된 열일곱 편의 소설 중 첫 번째 작품이다. ‘내가 우크바르를 발견한 것은 거울 하나와 어느 백과사전을 연관시킨 덕분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에서, 앞뒤 문맥만으로 ‘거울’의 다층적인 상징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이에 대해 보르헤스 논픽션 전집 3권 『말하는 보르헤스』의 『7일 밤』 중 「악몽」은 보르헤스가 왜 그토록 꿈과 악몽 혹은 거울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들려준다. 그에게 거울은 곧 미로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악몽은 거울입니다. 거울과 미로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두 개의 거울을 마주보게만 해도 미로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나는 벨그라노 지역에 있는 도라 데 알베아르의 집에서 원형의 방을 본 일이 있습니다. 그 방의 벽과 문은 온통 거울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그 방에 들어서는 사람은 정말로 무한한 미로의 한가운데에 서게 됩니다.
―보르헤스 논픽션 전집 3권 『말하는 보르헤스』 중에서

한편 ‘보르헤스 논픽션 전집’은 픽션에 해석을 제공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동안 익숙하게 보았던 작품도 보르헤스의 계보 안에서 낯설게 비추기 때문인데, 1935년 작 「알모타심으로의 접근」이 그것이다. 이 작품은 단편소설집 『픽션들』에도 수록되어 있지만, 보르헤스 논픽션 전집 2권 『영원성의 역사』 중 『두 편의 글』에도 수록되어 있다.

 

그 낭하의 끝에는 문과 수많은 구슬을 꿰어 만든 싸구려 발이 있었는데, 그 너머로 빛이 보였다.  ―「알모타심으로의 접근」 중에서

어떻게 한 작품이 픽션이며 동시에 논픽션일 수 있을까? 1920~30년대에 에세이로 구체화되던 보르헤스의 철학적 사유가 『영원성의 역사』를 집필한 이후 소설 형식으로 완전히 옮겨 가게 되는데, 이 책이 곧 그 전환기를 예고하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을 읽고 보면, 「알모타심으로의 접근」은 철학적 사유와 문학적 형식이 결합된 보르헤스 특유의 ‘에세이적 소설’의 출발을 알리는 중요한 좌표임을 알 수 있다.

한 권의 책이 한 문장으로 소비되는, ‘다이제스트’ 열풍 속에서 오히려 한 권의 책을 이해하기위해 더 두꺼운 다른 책을 보라는 이야기는 비효율적인 제안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가고 있는 길보다 더 자세한 지도를 쥐어 주는 역설이기 때문이다.

이 논픽션 전집의 원제 ‘OBRAS COMPLETAS’는 말 그대로 ‘전집’이라는 뜻이다. 지름길뿐만 아니라 에움길까지, 끝내 어느 곳으로도 확장되지 않은 막다른 골목까지 보르헤스 사유의 모든 여정이 담겼다. 당신이 보았던 모든 픽션 속 장애물이 사실은 보르헤스의 미학적 토대 위에 세워진 눈부신 랜드마크였음을 이 오래된 지도가 말해 줄 것이다.

 

 

 

문학1팀 박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