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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수사물, 혹은 스릴러 장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 장면이 있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속에 등장하는 장면이자, 이제는 관용구처럼 되어 버린 대사로 유명한 바로 그 장면. 한 남성이 젊은 여성에게 뭘 물으려 다가가자 여성은 그 남자가 자신을 추행하려는 줄 알고 도망친다. 남자는 계속해서 여성에게 다가가고, 지나가던 다른 남자가 그 장면을 보고 진짜로 성추행하는 거라 착각해 남자에게 돌려차기를 날려 버린다. “야이 X,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냐?”라는 외침과 함께.

『크로우 걸』을 작업하기 얼마 전 어느 날 TV를 돌리다 다시 보게 된 그 영화는, 보는 내내 묘한 찜찜함을 자극했다. 개봉한 지 십 년이 훨씬 넘은 영화고 영화 속에서 흐르는 시대는 ‘쌍팔년도’인 탓도 있을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관점이 달라진 탓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 영화 전체에서 이토록 진하게 마초적 숨결이 뿜어 나오는 걸 개봉 당시에는 왜 크게 못 느꼈던 걸까 스스로 되물을 정도였다. 가장 문제는 영화 속의 정상적인 남성들이 폭력에 희생된 피해자를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정의의 용사 같지만 그들 안에도 역시 폭력성이 내재돼 있다는 것이었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범인을 잡는 사람도 남자 일색인 세계에서 정작 여성은 피해자 혹은 목소리를 잃은 객체, 주변인일 뿐이었다.

그런데 비슷하게 연쇄 강간 살인 소재를, 그것도 근친상간이나 아동 성매매 같은 더욱 흉악한 소재까지 다루는 북유럽 스릴러 『크로우 걸』은 불쾌함보다는 통쾌함이 더 컸다. 단순히 주인공이 여성으로 바뀌어서만은 아니었다. 범죄의 수법이 약해서 그런 것 아니냐고? 읽어 보면 알겠지만, 가해자 집단이 행하는 범죄의 악랄함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그것보다, 이 소설은 여성으로서 느끼는 일상이 여성의 목소리로 들리는, 그녀들이 숨 쉬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그려지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형사 반장 예아네테가 직장에서 성과를 주도하면서도 남성 경찰 국장에게 간단한 말 한마디로 무시당할 때, 경찰 후배들이 자신을 ‘예아네테’가 아닌 남성형 이름인 ‘얀’이라고 부를 때, 남편 오케가 가정생활에 무책임한 모습을 보일 때 등, 여성으로서 맞닥뜨리는 답답한 상황이 이 소설 속에선 과장되지 않고 솔직히 묘사된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크로우 걸』은 페미니즘 스릴러다.

어쨌든 소설로만 보면 ‘강간의 왕국’이라는 오명은 한국이 아니라 복지 국가 스웨덴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끔찍한 범죄, 혹은 남성들의 폭력에 대항하는 여성들의 대응은 소설 속에서 세 가지다. 남성에 대한 복수 범죄, 남성을 배제한 동성애, 그리고 남성에게 받은 상처를 다른 인격에게 투사하여 스스로를 보호하는 다중 인격. 셋 모두 소설 속에서 과잉되거나 위축된 자아들이 벌이는 서사의 재미로 읽어 보자. 뜨거운 여름밤, 『크로우 걸』은 단순히 화려한 액션과 통쾌한 복수, 그 이상의 ‘여성으로서 느끼는’ 통쾌함까지 줄 것이다.

 민음사 편집부 허주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