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치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 클로즈업의 행복, 롱숏의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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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있는 운영 계획, 탄탄한 자본 유치 방안 등 필수적인 비즈니스 요건은 모두 결여된 사업 아이템이 내게 하나 있으니 바로 북바(bookbar)다. 지난 오륙 년간 출판계에 몸담은 결과, 책의 물성을 예찬하거나 그것의 존재 가치를 찬양하기보다는 책은 그저 인쇄된 종이의 묶음이요, 이마저도 한 쪽짜리로도 충분히 제 기능을 다한다는 식의 가치관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신간을 구입하면 광고 문안으로 도배된 띠지는 냅다 벗기는 것으로 독서를 시작하며, 읽던 중에 두서없이 떠오른 잡생각들을 판면 바깥 자투리 공간에 아무 죄의식 없이 끼적이기 일쑤인 데다, 이따금 접지나 인쇄가 잘못된 책을 만나면 반품하기보다는 가련한 희소품이라는 생각에 애정을 더욱 쏟는, 이른바 비뚤어진 ‘애서광’이, 나는 되었다. 그리하여 부담 없이 책을 읽으며 맥주를 들이켤 만한 책점을 차리고 나서, 음료 조금 흘린다고 얼굴색 바꾸지는 않는 주인장 행세를 해야겠다면서, 우선은 상호명만 하나 지어 두었다. 해피니스 해픈스(happiness happens). 꽤 근사한 문장 아닌가? 행복은 발생할 수밖에 없고, 자연히 일어나는 것은 모두 행복에 다름 아니라니!(실제 라틴계 어원을 따져 보면 두 단어의 뿌리가 같다고 한다.)

물론 이 음성학적으로도 문법적으로도 균형 잡힌 문장이 새삼 즐겁게 다가온다는 것은, 어느샌가 행복이란 놈이 ‘사치품’에 가까워진 고단한 현실의 반증인 것도 같다. 자연스레 발생한다는 행복을 만끽하기 위해 우리는 부자연적인 노동을 감내하고, 격무의 시름에서 해방되고자 규칙적으로 분에 넘치는 소비를 하고 있잖은가. 카페인보다는 여유가 탐나서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는 등의 변태적인 취미도 누린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구태여 입밖에 꺼내어 봤자 피로할 뿐인 21세기 라이프스타일의 지긋지긋한 악순환을 ‘구태여’ 한 번 더 도마 위에 올린 책이 바로 『명치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다. 이지원의 이 산문집에는 행복을 손에 넣으려는 을과 행복에 가치를 매겨 파는 갑, 손에 넣은 행복을 내다 버리기 위해 다시 폐기물 스티커를 사 붙이는 병과 행복을 손에 넣으려는 갑을병의 틈바구니에서 명치를 가격당하는 정이 오손도손(1인당 생활 면적이 좁으므로) 이웃하며 살고 있다. 찰리 채플린의 저 유명한 잠언 “인생은 클로즈업으로 보면 비극, 롱숏으로 보면 희극.”이란 문장을 가슴에 품고 자란 청계천 키드들은, 아니 그들의 후배 격인 우리는 여기저기 손 내밀며 장사하기 바쁜 힐러들의 흉산(胸算)을 넉넉히 알면서도, 잠자코 힐링당한다. 클로즈업으로 보자면 알록달록 향기로운 우리네 사치 생활이 영락없는 비극으로 판명 날까 봐 도심에서 벗어나기 겁내는 건 비단 몇 사람의 일은 아닐 터다.

 민음사 편집부 김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