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출근, 산책: 어두움과 비』 ‘엄지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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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문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될까? 일본 대중문학을 ‘집대성’한 나오키는 대중소설과 예술소설의 차이를 문체에서 찾았다. 이야기하듯 쓰인 명확하고 일반적인 문장이 대중소설에 적합하다면 예술소설의 문장은 개성적이고 독특해야 하며, 따라서 대중소설과 예술소설의 분기점은 소재가 아닌 문장에 있다. 따라서 대중소설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문체가 없는 문장을 쓸 것. 『나오키의 대중문학 강의』에 나오는 말이다.

한국 소설은 전 세계에서 한국어 문장을 가장 잘 다루는 사람, 즉 ‘작가’들이 벌이는 각축장이다. 언어를 ‘독점’하고 있는 데서 오는 자국의 문장 경쟁은 문학의 성과와 떼려야 뗄 수 없다. 한국의 인구 대비 시집 판매량이 이토록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한국 시가 성취한 전위의 갱신이 이처럼 높은 것 역시 문장에 대한 한국인들의 애호와 노력이 만든 필연적 결과가 아닐까? 대중소설과 예술소설을 막론하고 문체가 좋아야 좋은 소설이라는 것은 소설에 대한 우리의 오래된 생각이다. 유난히 문체가 비대해지고 서사가 위축된 소설이 많은 시기를 지나면서 소설 독자가 줄어든 측면도 있지만, 소설의 문체는 여전히 한국 사람들이 한국 소설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몇 가지 중 하나인 것이다.

『주말, 출근, 산책: 어두움과 비』는 ‘엄지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문체가 독특한 소설이다. 그 문체의 결을 살펴보는 것도 “인물, 사건, 배경 없는” 김엄지 소설을 읽는 방법일 수 있겠다. 

“E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가 아닌 다른 것이 곧 내릴 것 같았다. 그러나 E는 비 아닌 무엇을 상상할 수 없었다.”(110쪽)
소위 ‘엄지체’는 의미 있는 것을 없는 것으로, 무의미한 것을 의미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런 것을 ‘힘’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인생이 언제나 의미와의 싸움 안에서 전진과 퇴보를 반복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품고 있는 비에 대한 모든 생각을 촉발시키는 위의 문장은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를 흐려 관습적 의미에 기대고 있던 기우뚱한 생각들을 곧추세워 주는 엄지체의 매력을 보여 준다. 

“해가 뜬다면, E는 이불을 널고 싶었다. 해가 뜬다면 E는 할 일이 매우 많은 사람이 될 것이었다. E는 해가 뜬 후에 자신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궁금했다.” (110쪽)
‘엄지체’는 또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데 특화돼 있는데, 너무 익숙해서 따로 떠올려 볼 필요도 없을 것 같은 생각을 마디마디 분절해 나열하고 있는 저 문장들은 생각지도 못한 데서 가족을 만났을 때처럼 낯선 기분을 가져다준다. 낯선 것이 다 문학적인 것은 아니지만 문학적인 글은 대개 낯설다. 그것이 독자들을 충격과 성찰로 이끌기 때문이다. 충격과 성찰이야말로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자극을 촉발하는 스파크, 문학의 매력일 테다. 마치 김엄지 소설의 문장들처럼.

                                                                                                                                                                              민음사 편집부 박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