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것들의 낮』 당신과 나의 어색한 명장면

유계영 시인을 처음 봤을 때, 어쩐지 없는 표정에 약간은 주눅이 들었다. 우리는 대부분은 어색하면 그저 웃기 마련인데, 그렇게 해서 어색함을 무마하기 마련인데, 유계영 시인은 ‘지금 제가 어색합니다.’ 같은 말을 표정에서부터 보이고 있었다. 시인들이 많은 자리였고 취한 사람, 취한 척 하는 사람, 취하고 싶은 사람이 여기저기서 서로의 담배 연기를 공중에 흩뿌리고 있던 자리였다(실내 금연이 전면 시행되기 몇 해 전이었다).

어쩐지 기갈이 나서 자리를 떴다. 유계영 시인은 여전히 표정이 없는 얼굴로 앉아 있었다. 담배 연기 사이로 시인들의 얼굴이 흐리고 자욱한 시간,

창백한 밤이었다.

 

그 후 몇 번의 만남이 있었고 첫 시집의 편집까지 맡게 되었다. 어색함이 다소 걷혀지고서야 깨달았다. 아, 시인은 진짜로 어색했구나. 어색하면서 왜 어색한지, 어색함은 무엇인지 그때 우리는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생각이 많았던 것이구나. 유계영의 첫 시집에는 모든 어색함에 대한 경외와 두려움과 친근함이 담겨 있다.

 

원고를 다 읽고 짐짓 호기롭게 회사 근처에서 미팅을 청했다. 단둘이 만나니 어색함은 신사동(민음사 사옥 소재지) 하늘을 푹푹 찔렀다. 우리는 그때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던가. 나는 얼추 직장인답게 웃었고, 유계영 시인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회적 관계망에 필요한 미소를 탑재하게 된 듯 보였다. 그 미소에 세상의 온갖 것이 다 있으리라. 이 시집의 제목 『온갖 것의 낮』을 온갖 것의 낯으로 읽어도 괜찮을 성 싶은 이유는, 유계영 시인의 표정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이든 다 있는 느낌. 시집을 읽고 나서야 확신했다. 우리의 표정에는 무엇이든 다 있다. 감추지 못하는 그것(샴, 뒤통수, 휠체어) 같은 것이 우리의 진짜 얼굴이며, 어색해하는 얼굴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색하면 어떠한가. 우리는 어색해하는 우리의 모습을 더욱 사랑할 의무가 있다. 가령 아래의 시처럼.

 

오늘은 나의 날

 

내가 너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결국 너의 바깥에 장롱처럼 버려질 것이라는 예감은

2인용 식탁처럼 물끄러미 불행해질 것이라는 예감은

 

모두 틀렸다

 

입안에 총구를 물고 방아쇠를 당겨 봐

바람 맛이 난다고 했다

하필 내가 가진 총 속에만 가득했던 총알을

너는 모르고 나는 알았다

 

너와 나의 단면에 대하여

생크림 케이크처럼 근사한 협화음을 감추었을 것이라는 믿음이

너에게는 없고 나에게는 있었다

 

누구의 생일인지 기억나지 않는 모호한 축하를

반씩 나누는 나의 샴, 나의 뒤통수, 나의 휠체어

 

살았다고 감동하는 모든 순간

죽지 않았다고 말하는 모든 유감이여

생일상 아래 흔들거리는 왼발 오른발이여

 

내게 선물한 총과 칼과 너를

나는 끝까지 좋은 것이라 부르겠다

오늘은 나의 날이다

 

아까도 시인과 카카*톡 메시지를 주고받는데, 나는 왜인지 또 어색해서 : )과 ^^과 ㅠㅠ를 섞어 보냈다. 시인은 나에게 모바일 회사에서 제공하는 캐릭터의 표정을 보냈다. 어라, 온갖 것의 낯이 거기에 다 있는 게 아닌가. 우리의 모든 낮은 온갖 낯을 주고받으며 지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중 가장 아름다운 낯은 시인의 말대로, “다 할 수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우린 더 친해져야지. 『온갖 것들의 낮』을 읽고 나면 이 시인과 친해지고 싶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의 얼굴과 더 나아가 존재와 친밀하게 악수를 하게 될 것이다.

예쁜 색을 두르고 나온 시집을 다 읽고 거울을 보러 자리를 뜬다. 약간의 어색함 후에 긴 친밀감으로, 입술의 위치를 가늠한다. 지금은 우리의 온갖 얼굴이 자세히 다 보이는 시간,

환한 낮이다.

민음사 편집부 서효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