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꽃잎들』 이런 거 쓰면 잡혀가는 거 아냐?

새롭게 떠오른 노벨 문학상 단골 후보, 응구기 와 시옹오. 혹자는 작가 이름이 마치 아기 옹알이 같다고도, 혹자는 작가가 ‘응구기’와 ‘시옹오’ 두 사람이냐고 묻기도 할 정도로 한국 독자에겐 낯선 작가다. 이런 농담을 뒤로하고 작가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알게 된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을 정도로 험하고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잘 알려지지 않은 제3세계 출신의 한 멋진 인물이 베일 속에서 드러날 것이다.

영국 식민지였던 시절 케냐에서 태어나 영국식 이름 ‘제임스 응구기’로 자란 소년, 응구기 와 시옹오는 학창 시절을 뒤숭숭한 정치 상황 속에서 보낸 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소설 『울지 마라, 아이야』를 발표해 반향을 얻었는데, 그 작품은 영어로 쓰여 발표된 ‘최초의’ 동아프리카 출신 작가의 책으로 기록되었다. 식민 지배하의 케냐의 문제와 독립 투쟁의 현장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작품 활동으로 주목받은 그는 케냐 독재 정권의 ‘제거 대상’이 되어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채 영국과 미국을 떠도는 삶을 살게 된다. 나라의 수장이 암살 음모를 꾸몄다니, 대체 어느 정도인 것일까? 『피의 꽃잎들』에 나오는 몇몇 구절들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가난한 게 죄인가? 부자가 아니면, 모두 죄인이란 말인가?

어떻게 해서 음식과 부를 생산한 사람들의 75퍼센트는 가난하고, 인구 중 생산에 가담하지 않는 소수 집단은 부자인가? 역사는 결국 행동과 노동으로 자연을 바꿔 놓은 사람들에 관한 것이어야 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쓸모 있는 일을 전혀 하지 않는 이, 빈대, 진드기 같은 기생충들은 잘살고, 스물네 시간 동안 일을 하는 사람들은 굶주리고 입을 옷도 없단 말인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열린 길은 모두 하나로 통하네. 일방통행이지. 더 심한 가난과 불행으로 이어지지. 가난은 죄네. 그런데 생각해 보게. 가난이라는 죄에 대해 책임을 지는 건 가난한 사람들일세. 그래서 그들은 그것 때문에 처벌을 받고 지옥으로 보내지네.

나는 여러 번 생각을 해 봤어요. 우리 민중이…… 우리가 케냐를 세웠어요. 1895년 이전에 우리의 농업을 붕괴시킨 것은 아랍 노예 상인들이었어요. 1895년 이후에는 유럽 식민주의자들이었어요. 처음에는 우리의 땅을 훔쳤고 그다음에는 우리의 노동을 훔쳤어요. 그다음에는 소와 염소 같은 우리의 부를 훔쳤어요. 그다음에는 세금을 통해 우리의 자본을 훔쳤어요……. 우리는 케냐를 세웠어요. 그런데 우리가 땀으로 세운 케냐에서 우리가 받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런 구절들이 가득 담긴 작품 『피의 꽃잎들』을 읽다 보면, 한편으로 통쾌해지면서 몸속에 흐르는 피가 뜨거워진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변하지 않는 현실, 부조리와 불합리로 가득 찬 사회……. 낯선 아프리카 땅의 민속적 가락 가운데 울려 퍼지는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의 목소리는 국경과 문화를 떠나 인간 존재 자체가 겪는 삶의 고단함과 맞닿아 있다.(노벨 문학상 후보에 꾸준히 오르내리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한 나라에 독재자나 식민 지배자가 나타나면 무엇보다 민중들의 문화와 역사와 언어를 통제하는 데 힘을 기울인다는 것은 역사가 가르쳐 준 어두운 진리다. 식민 지배 국가의 언어인 영어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응구기는 이후 자신의 부족 언어인 기쿠유어와 케냐의 공용어인 스와힐리어로 글을 쓰기로 결심했고, 제임스라는 영어식 이름마저 민족의 자부심을 담아 ‘응구기 와 시옹오’로 바꾼다. 불꽃처럼 뜨거운 글만큼이나 확고하고 결단력 있는 행동이다. 시국이 뒤숭숭한 가운데 독서의 계절 가을이 지나고 있다. 노벨 문학상 시즌에 맞춰 출간된 『피의 꽃잎들』이 그 안에 간직한 열혈 에너지로 독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를 바란다.

민음사 편집부 허주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