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공식 전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스티브 잡스」가 드디어 10월 9일 미국 뉴욕과 LA에서 개봉했습니다. 쟁쟁한 연출진과 배우들이 참여해 제작 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는데요, 영화화의 중심에는 에미상과 아카데미상, 골든 글로브상을 휩쓴 천재 각본가 에런 소킨(Aaron Sorkin)이 있습니다. 영화 속 잡스를 만나기 전에, 소킨의 대표작을 복습해 볼까요? :)

 

진실을 감당할 수 있는가, 「어 퓨 굿 맨」(1992)

관타나모 미 해군 기지에서 발생한 폭행 사망 사건을 풀어 나가는 법정 영화입니다. 사건을 파헤쳐 나가는 똑똑하지만 다소 껄렁한 신참 법무장교를 톰 크루즈가, 사건을 은폐하려는 권위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해병대 지휘관을 잭 니콜슨이, 도덕적이고 열정이 있지만 실전 경험이 부족한 해군 수사관이자 변호사 역할을 데미 무어가 맡았습니다.(당시에도 그랬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보니 더 초호화 캐스팅이네요)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르고 흥행에도 성공하면서 에런 소킨을 일약 일류 작가로 발돋움시킨 작품이지요.

1990년대 초반입니다...1990년대 초반..  「탑건」 이후 청춘 스타로 인기를 구가하던 톰 크루즈는 이 영화에서 안정적인 연기력을 선보입니다.(그가 해군 정복을 입는 건 지금으로 치면 강동원이 사제복을 입는 것과 비슷할까요?)

1990년대 초반입니다…1990년대 초반…「탑건」 이후 청춘 스타로 인기를 구가하던 톰 크루즈는 이 영화에서 안정적인 연기력을 선보입니다.(그가 해군 정복을 입는 건 지금으로 치면 강동원이 사제복을 입는 것과 비슷할까요?)

 

소킨은 원래 연극계에 몸담고 있었고, 이 이야기도 희곡으로 먼저 집필했습니다. 관타나모 기지에서 비슷한 사건을 경험한 동생과의 통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지요. 영화화로 이어지면서 「어 퓨 굿 맨」은 소킨의 브로드웨이 데뷔작이자 영화 데뷔작이 됩니다. ‘대사로 액션을 만든다’는 평답게 별다른 몸동작이나 카메라워크 없이도 강한 긴장감을 조성해 내는 그의 필력은 마지막 법정 장면에서 두드러집니다. 증인석을 사이에 두고 톰 크루즈와 잭 니콜슨이 주고받는 대화는 명예와 진실, 복종과 신념 사이의 대결이 빛나는 명장면입니다. “넌 진실을 감당할 수 없어!”라는 잭 니콜슨의 일갈은 ‘영화사상 최고의 명대사’ 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단골로 등장하지요.

 

“You can't handle the truth!” 잭 니콜슨의 소름 돋는 연기

“You can’t handle the truth!”
잭 니콜슨의 소름 돋는 연기

 

정치 드라마의 클래식, 「웨스트 윙」(1996~2006)

‘웨스트 윙’이란 미국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진이 있는 백악관의 서쪽 별관을 가리킵니다. 이 드라마는 웨스트 윙의 사람들, 즉 미국 대통령과 그를 보좌하는 참모진의 활약을 그린 드라마입니다. 4년 연속 에미상 ‘최우수 TV 드라마 시리즈상’을 수상한 명실상부 정치 드라마의 고전이죠. 소킨의 군더더기 없는 탄탄한 각본을 바탕으로, 크고 작은 위기와 극복을 반복하며 정치 현장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긴장감 있게 그려 내 7시즌이나 제작되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간간이 등장하는 낯익은 이곳은 미국 대통령 집무실 오벌 오피스(Oval Office)

영화나 드라마에서 간간이 등장하는 낯익은 이곳은 미국 대통령 집무실 오벌 오피스(Oval Office)

 

정치 드라마 하면 왠지 고리타분하거나 아니면 권모술수가 판치는 이야기일 것 같은데요. 「웨스트 윙」은 입법 과정뿐 아니라 의회나 정당과의 알력, 언론과의 관계 등을 매우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의료 개혁, 공교육, 사형제, 동성애, 총기 규제 등 민감한 정치적 이슈를 다루면서도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깊이 있게 그려 내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드라마는 가상의 민주당 대통령 바틀릿이 집권하고 있는 설정이지만, 민주당 공화당 할 것 없이 자신의 신념에 따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나, 오바마 캠프에서도 관심 있게 시청했다고 하죠. 정의롭고 현명하며 헌신적인 리더와 참모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드라마입니다.

 

드라마 「웨스트 윙」의 등장인물들. 바틀릿 대통령(맨 앞 가운데) 역할은 찰리 신의 아버지이기도 한 마틴 신이 맡았습니다.

드라마 「웨스트 윙」의 등장인물들.
바틀릿 대통령(맨 앞 가운데) 역할은 찰리 신의 아버지이기도 한 마틴 신이 맡았습니다.

 

SNS 혁명의 꿈과 허상, 「소셜 네트워크」(2010)

지난 8월 말, 페이스북 하루 이용자 수가 10억 명을 돌파했다고 하죠. 5년 전에 나온 이 영화의 포스터에 적힌 카피가 “적 몇 명쯤 만들지 않고서는 5억 명의 친구를 얻을 수 없다.”였으니 성장세가 무서울 정도입니다. 「소셜 네트워크」는 이 페이스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이야기만 놓고 보면 IT 괴짜의 시시콜콜한 창업 이야기인데, 에런 소킨과 감독 데이비드 핀처는 괴팍하면서 독선적인 마크 저커버그의 ‘너드’ 캐릭터와 그로 인한 인간관계 문제에 초점을 맞춥니다. ‘관계’와 ‘소통’을 위한 SNS 도구인 페이스북, 그러나 페이스북으로 성공할수록 실제 친구를 잃어 가는 아이러니한 저커버그의 모습은 단순한 ‘IT 성공 신화’와는 궤를 달리하죠. 특히 저커버그가 휘말린 소송과 맞물려 액자식으로 구성한 연출과 편집은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어 내는 어떤 경지를 보여 줍니다. 이 영화로 소킨은 골든 글로브 각본상,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죠.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포스터.  이 영화가 개봉하기 전 저커버그가 갑자기 공립학교에 1억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나섰다는 믿거나말거나 카더라말더라 통신..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포스터.
이 영화가 개봉하기 전 저커버그가 갑자기 공립학교에 1억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나섰다는 믿거나말거나 카더라말더라 통신..

 

판을 바라보는 혁신적인 시선, 「머니볼」(2011)

이번에는 메이저리그 야구장으로 향합니다. 소킨이 공동 각본으로 참여한 「머니볼」은 오클랜드 애슬래틱스의 단장 빌리 빈(Billy Beane)의 구단 운영을 소재로 합니다. 빈이 단장을 맡았던 해의 오클랜드는 주축 선수들이 빠져나간 위기의 시즌이었는데요, 이때 빈은 철저히 통계와 데이터 중심의 분석을 동원해 잘나가는 비싼 선수들 대신, 저평가되어 있지만 팀에 기여할 수 있는 선수들을 데려와 팀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갑니다.

 

저비용 고효율 구단 운영의 상징일까요? 작은 팀들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일까요? 어쨌든 머니볼 전략은 2000년대 초 구단 재정이 넉넉지 않은 ‘스몰마켓’ 팀들에게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해 주었습니다.

저비용 고효율 구단 운영의 상징일까요? 작은 팀들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일까요? 어쨌든 머니볼 전략은 2000년대 초 구단 재정이 넉넉지 않은 ‘스몰마켓’ 팀들에게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해 주었습니다.

 

메이저리그를 사랑하는 야구팬들에게는 반드시 감상해야 하는 작품으로 꼽히며, 경기보다는 구단 운영이 이야기의 중심이기 때문에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드라마가 펼쳐집니다. 독특하게도 이 영화의 원작이 된 『머니볼』은 소설이 아닌 논픽션(경영) 도서입니다. 소킨은 「소셜 네트워크」 각본을 집필할 때도 저커버그의 소송 기록을 이 잡듯이 뒤졌다고 하는데요, 현실 사건에서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뽑아내는 그의 기량은 점점 더 원숙해지는 듯합니다. 이렇게 「소셜 네트워크」와 「머니볼」을 통해, 소킨은 동시대 인물의 전기 영화에서 탁월한 성취를 보여 주었습니다.

 

And One More Thing, 「스티브 잡스」(2015)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에런 소킨을 두고 “성공의 그늘을 다루거나, 실패 속에서도 반짝이는 빛을 그릴 때” 뛰어난 역량을 보여 준다고 했는데요, 실존 인물 중에 스티브 잡스만큼 이 서술에 어울리는 인물이 또 있을까요? 2012년 소킨이 『스티브 잡스』 전기의 영화화를 맡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영화팬들은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드디어 영화가 공개되었습니다.

 

영화 「스티브 잡스」 포스터.  애플의 제품들처럼, 『스티브 잡스』 전기처럼 심플함이 돋보이네요!

영화 「스티브 잡스」 포스터.
애플의 제품들처럼, 『스티브 잡스』 전기처럼 심플함이 돋보이네요!

 

소킨은 이번에도 허를 찌르는 구성을 보여 줍니다. 고향인 연극계에 대한 향수일까요? 소킨은 공식 전기에 나온 팩트를 바탕으로 하되, 일대기식 구성을 과감히 버리고 1984년 매킨토시, 1988년 넥스트 큐브, 1998년 아이맥 발표를 앞둔 잡스의 모습을 3막으로 구성해 러닝타임과 거의 같은 실시간의 드라마를 구현해 냈습니다. 이에 부응하듯 잡스 역의 마이클 패스벤더도 대단한 호연을 보였다고 하죠.

 

「스티브 잡스」와 「맥베스」로 올해 오스카의 강력 후보로 떠오른 마이클 패스벤더

「스티브 잡스」와 「맥베스」로 올해 오스카의 강력 후보로 떠오른 마이클 패스벤더

 

소킨은 각본 집필을 위해 『스티브 잡스』 전기를 여러 차례 읽으면서, 잡스라는 인물과 그의 삶을 가장 극적으로 압축해서 보여 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수없이 고민했다고 합니다. 디테일한 인물 설정과 에피소드들은 잡스가 직접 참여한 『스티브 잡스』 전기에 큰 빚을 지고 있지요. 저자 월터 아이작슨은 잡스를 미화하지 않고 공과 과, 장점과 단점을 고루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서술로 잡스의 복잡한 내면을 잘 드러냈습니다. 영화에서는 잡스를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해지네요. 한국에서는 2016년 1월 개봉합니다.

 

*** 잡스의 사망 4주기를 맞아 그의 유일한 공식 전기 『스티브 잡스』가 가독성과 휴대성을 높인 보급판을 선보입니다. 잡스의 미소가 빛나는 새로운 표지로 갈아입은 이번 보급판은 방대한 분량 덕에 휴대가 쉽지 않았던 기존 판형의 단점을 보완해, 내용은 모두 유지하되 작고 가벼운 페이퍼백으로 제작했습니다. 한 손에 들어오는 크기(113×183)에 기존 하드커버판의 절반에 불과한 무게로 언제 어디서나 잡스의 인생 이야기를 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잡스가 눈감은 순간과 그 이후의 장례식을 기록한 후기는 맹렬하고 열정적인 삶을 살다 간 잡스의 인생에 마지막 감동을 더합니다.***

* 영화 <스티브 잡스> 예고편 보러가기 : https://www.youtube.com/watch?v=9XEh7arNSms

스티브잡스_입체북

민음사 편집부 김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