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의 시’ 155권. 분명 시집이다. 그런데 제목이 좀 수상하다. ‘소설을 쓰자.’ 2000년대 중반 한국 시단을 뜨겁게 달군 미래파 논쟁의 한가운데 있었던 시인 김언이 4년 만에 이런 엉뚱한 제목의 시집을 들고 돌아왔다.
원래 이 시집의 제목은 ‘입에 담긴 사람들’이었다. 『숨쉬는 무덤』, 『거인』 등 김언의 이전 시집의 제목들과 일맥상통하는, 그다운 제목이라 생각했다. 시집 작업이 한창 진행되던 어느 날, 그가 전화를 걸어왔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차창에 시집 제목이 순간적으로 떠올랐어요. 바꿀게요. ‘소설을 쓰자’로.” 그렇게 ‘입에 담긴 사람들’의 운명은 ‘소설을 쓰자’로 바뀌었다.
일찍이 시인 김수영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소설을 쓰는 마음으로 시를 쓰고 있다.”(「시여, 침을 뱉어라」) 그런데 김언은 한걸음 더 나아가, 아예 ‘소설을 쓰자’라고 외친다. 시의 장르적 한계를 돌파하고, 시도 소설도 아니지만, 시이기도 소설이기도 한 어떤 새로운 장르에 도달할 수 있는 도발적인 모험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는 ‘소설 같은 시’가 아닌, ‘소설로서의 시’인 것이다. 
시의 근본주의자가 새삼스럽게 ‘소설을 쓰자’라고 외치는 이유는 바로, 그가 실제로 소설을 쓰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다른 시’를 쓰겠다는 뜻이다. 『소설을 쓰자』는 소설처럼 흥미로운 언어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며, 우리가 흔히 시에서 기대하는 아름다움과는 다른 매혹을 선사한다.

제목 얘기를 하다 보니, 또 다른 제목, 바로 그의 이름도 흥미롭다. 시인 정재학은 김언을 일컬어 “뼛속까지 모던한 시인”이라 했지만, 그의 본명은 ‘모던’하다기보다는 ‘무던’하다 할 수 있는 ‘김영식’이다. 왜 필명이 ‘김언’이냐는 질문에 그는 예의 그 무던한 말투로 “별 뜻 없이 지었고, 사람들이 자연스레 ‘言’이라 생각하기에 그냥 내버려 두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 후로 이름 때문인지 이상하게 말에 집착하는 시가 많아졌다고 한다.
그는 별 뜻 없다고 주장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언(言)’이라 지을 만큼, 세계를 바꾸는 일은 언어를 바꾸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는 시의 근본주의자다운 세계관이 한 편의 시로 완성되고 또 완성되어 모인 것이 바로 이번 시집이다.
그는 말을 할 때 늘 입을 가리는 버릇이 있다. 그저 수줍음이 많은 사람, 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명령이라고 말하자 그는 망령처럼 일어서서 나갔다. 누군가의 입에서.”라는 그의 시구절을 읽고 보니 그가 유령처럼 느껴진다. 그의 입에 담긴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 나와 그의 문장을, 하나의 사건을 이룰 것이다.

 

책의 넋두리

 “한국 문학의 사려 깊은 연인”으로 불리며 최근 가장 인기 있는 해설가로 꼽히는 평론가 신형철. “김현의 재림”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따뜻하고 유려한 그의 해설을 받으려는 시인, 소설가가 줄을 섰다. 반면 그는 편집자가 가장 기피하는 평론가이기도 하다.   
『소설을 쓰자』는 원래 2009년 ‘민음의 시’ 첫 책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김언 시인이 신형철의 해설을 받고 싶다고 했을 때, 어느 정도 이번 사태를 예감은 했었다. 신형철의 해설은 원고 마감일로부터 정확히 10개월(청탁서를 보낸 날짜로 치면 무려 18개월) 만에 몸을 푼(!) 셈이다. 편집자로서의 그간의 속앓이는 말해서 무엇하리. 그러나 정작 이 시집의 주인인 김언은 단 한 번도 독촉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기다리고 기다려 주었다. 체념한 편집자와 속 넓은 시인 때문에 신형철은 엉뚱하게도 주변의 시인과 평론가들에게서 독촉을 받아 왔다고 토로한다. 심지어 교통사고로 병상 투혼 중인 오은 시인은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문병을 온 신형철에게 “김언 시집 해설은 다 썼느냐”고 물었을 정도라고.
그러나 대한민국의 모든 편집자와 작가가 공감하겠지만, 일단 그의 해설이 들어오는 순간 그간의 고생은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린다. 이번 시집의 해설에서도 신형철은 아무도 감히 말하지 못했던 가장 어려운 시를 가장 쉽게 말해 준다. 누구도 소통 불가능했던 시와 자유롭게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집의 출간이 이토록 늦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해명 글을 실을까 하는 깜찍한(!) 생각까지 했다는 신형철. 그렇게 우리는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도 누구에게 해설을 맡기고 싶냐고 물어보면 작가들은 십중팔구 “신형철”을 외친다. 그러면 나는 말한다. 1년은 기다릴 각오를 해야 한다고. 김언 시인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들이 “그래도 신형철!”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민음사 편집부 김소연]

김언
출간일 2009년 7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