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들의 도시』의 작가 데이비드 베니오프는 원래 뉴욕 브루클린의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틈틈이 쓴 첫 번째 소설 『25시』가 호평을 받고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에 의해 영화화되면서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되지요. 자신의 소설을 직접 각색한 영화 「25시」의 성공 이후 그는 「트로이」, 「연을 쫓는 아이」, 「엑스맨의 탄생 : 울버린」 등 세계적인 흥행 대작들의 시나리오 작업을 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답니다. 게다가 2006년에는 소개팅으로 만난 영화배우 아만다 피트와 결혼하고 이듬해엔 예쁜 딸까지 얻었지요. 불특정 다수의 시기와 질투의 대상 엄친아가 여기 할리우드에 또 한 명 있군요. 잠시 사적인 감정은 접어 두고, 올여름 무더위를 날려 줄 그의 영화들을 한번 살펴볼까요?

「25시」(2002)
스파이크 리가 감독하고 에드워드 노튼이 주연을 맡으면서 제작 초반부터 화제를 모았던 영화입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마약을 팔며 부유하게 살아오다가 마약 밀매 혐의로 7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 놓인 몬티. 아일랜드 출신 이민자의 아들인 그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보석 석방되어 일주일간의 자유 시간을 얻지만, 돌아가기 전날 스물네 시간은 끔찍한 긴장과 초조, 불안과 분노, 절망으로 얼룩지고 맙니다. 그가 사랑하는 연인 내추럴이 그를 경찰에 밀고한 장본인일지 모른다는 소문도 그를 괴롭게 하지요.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심정으로 마지막 밤을 보내는 몬티에게 그의 아버지가 충격적인 제안을 한다는데……. 그게 뭘까요? 한번 뒤틀려 버린 방향을 수정하지 못하고 수렁을 향해 관성처럼 지속되는 개인의 삶에 9/11 테러의 상처를 짊어진 뉴욕의 그늘진 운명을 겹쳐 놓은 수작이라고 합니다.

「트로이」(2004)
브래드 피트, 에릭 바나, 올랜도 블룸 등 할리우드 대표 꽃미남들의 불끈 솟아 오른 근육이 여심을 흔들어 놓았던 대작이지요. 처절한 전투가 한창인 고대 그리스의 테살리아. 잔인하고 불운한 사랑에 빠지고 만 비련의 두 주인공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 사랑에 눈 먼 두 남녀는 트로이로 도주하고, 파리스에게 아내를 빼앗긴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는 치욕감에 미케네의 왕이자 자신의 형인 아가멤논에게 복수를 부탁합니다. 이에 아가멤논은 모든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규합해 트로이로부터 헬레네를 되찾기 위한 전쟁을 일으키지요. 전쟁의 명분은 동생의 복수였지만 전쟁을 일으킨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으니, 모든 도시국가들을 통합해 거대한 그리스 제국을 건설하려는 야욕을 채우려는 것이었죠. 영화는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를 영화화한 것이지만 전적으로 『일리아드』에만 의존하지는 않는답니다. 원작의 잔인한 전쟁 묘사에 가려져 있던 휴머니즘을 부각시키기 위해 ‘인간’의 캐릭터에 초점을 맞춘 것이지요. 그래서 호머의 작품에서 수시로 출몰해 사랑과 전쟁의 배후를 조종하던 신들이 영화에서는 싹 걷혔답니다. “올림포스 신전까지 아우르기엔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인간적인 요소를 부각시킨 영화인 만큼 인간 캐릭터를 잘 살려 내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는 게 작가 데이비드 베니오프의 설명이지요. 영화의 스펙터클한 피날레를 장식하는 트로이 성의 함락까지 아우르기 위해 작가는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비롯해 다수의 문학 작품들을 한데 버무렸다고 하네요.

「스테이」(2005)
마크 포스터 감독, 이완 맥그리거, 나오미 왓츠 주연의 이 영화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영화입니다. 매우 혼란스러운 스릴러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정신과 의사 샘은 갑자기 휴가를 떠난 동료 베스의 환자 헨리를 대신 맡게 됩니다. 자동차 방화죄로 병원에 오게 된 헨리는 예지 능력과 기시감을 가지고 있는 미대생이지요. 샘은 자살하겠다고 예고한 후 사라진 헨리를 찾아다니면서 이상한 일들에 부딪히고, 그러면서 자신의 정체성마저 흔들리게 됩니다. 꿈과 현실이 뒤죽박죽이 되고 죽었던 사람이 살아 돌아와 “네가 내 아들이다~!”라고 우기고 다니는 이 영화는 보는 사람에게 무수한 질문들을 던진다고 하는데요, 그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죽음과 죄의식을 깨우쳐야만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니, 더더욱 머리가 아파집니다. 하지만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 몽환적인 독특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볼 만한 영화가 아닐런지. 거기에 이완 맥그리거의 섹시한 패션은 덤으로 즐기세요.

「연을 쫓는 아이」(2007)
모두 아시다시피《뉴욕타임스》 120주 장기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전 세계 34개국, 800만 독자의 사랑을 받은 할레드 호세이니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아미르와 하산이라는 두 소년의 피보다 진한 우정에 관한 이야기지요. 유복한 집에서 태어난 아미르와 하인의 아들 하산. 둘은 신분을 떠나 어릴 때부터 절친한 친구로 지냅니다. 그들이 열두 살 되던 겨울, 연 싸움대회에서 우승해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아미르는 하산의 도움으로 우승을 하게 되고, 하산은 “네가 원하면 천 번이라도 연을 찾아올 수 있다”며 잘린 연을 쫓아 이 거리 저 거리 뛰어다니지요. 하지만 행복했던 이날, 두 소년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비극적 사건이 발생하고 맙니다. 영화화하기 위해 각색 작업을 하던 도중 갑작스럽게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데이비드 베니오프가 많은 부담감을 느꼈다고 고백하기도 했답니다.

「엑스맨 탄생 : 울버린」(2009)
함께 한국을 방문해 팬들에게 훈훈한 미소를 쏘아 대던 미남 배우 휴 잭맨과 다니엘 헤니가 출연한 영화입니다. 어린 시절 눈앞에서 아버지를 잃은 상처,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마저 지키지 못한 과거의 기억은 울버린을 더욱 강하게 만듭니다. 울버린을 포함해 스트라이커 대령의 지휘하에 전 세계에서 선발된 강력한 돌연변이들이 스페셜 팀을 구성하고, 울버린은 인간이 참아낼 수 있는 고통의 한계치를 넘는 지옥 같은 훈련을 통해 ‘웨폰 X’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제 울버린은 복수를 위해 스페셜 팀을 탈퇴하지만, 에이전트 제로가 울버린을 무섭게 추격하는데……. 인간의 파괴 본성과 광기를 다루면서 울버린의 탄생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민음사 편집부 박향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