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대│귀 없는 토끼에 관한 소수 의견 외 55편

1972년 강원 인제에서 태어났다.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창작과비평》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돌아오는 길에서야 그것을 마주쳤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예감처럼. 하루 권장량을 다 살아 본 적이 없는데. 조금씩 멀어지는 세계에서. 그것을 오기한 흔적. 조금씩 다르게 불러 보는 감영(減影)법. 너무 많이는 이야기하지 않기 위해서. 겨울이 먼저 와 있는 그것은 하나의 장소. 이야기는 장소만 바뀌었을 뿐인지.
텅 빈 심야 극장. 무감각한 유원지. 이물스러운 서울의 끝방. 여관의 빈 서랍 같은 거기에서. 조금은 너의 목소리가 섞였지. 미정형의 얼굴. 너에게서 네가 아닌 것. 다음 말이 궁금하지 않을 때. 단번에 알아본다면 숨지 못할 테니까.
열쇠를 돌리면 방은 고요해지고. 경험 속에서는 발견하지 못하는. 그것은 현장음이 없다. 무엇을 향하지 않는 감정선. 하나로 연결해 보면 개연성이 없는. 장소를 지우는 행위. 여행은 존재하지 않았지.
모호함 속에 감추어진 4시의 알람. 재채기처럼 떠돌고 있는. 알람들. 알람들. 그것을 음률로 듣는다면 일어날 수 없겠지. 나의 윤곽을 드러내는 오후의 느린 해부. 그것은 어느 하나 온 것 같지 않은데. 너의 잔영이 들리고 나서 나는 다시 시작되었다. 슬라이드처럼 한 컷 한 컷 망설이는 얼굴로. 너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