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56편 중 대표작 「귀 없는 토끼에 관한 소수 의견」

 귀 없는 토끼에 관한 소수 의견

                                                     김성대

함구
함구는 조금씩 우리를 달리게 하는지도 모른다
함구는 조금씩 바깥에서 깊어진다
여기는 속 없는 굴속 같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바깥을 모으는
굴은 지상으로 입을 벌리고
토끼는 반시계 방향으로 굴을 오른다
빨간 눈은 데굴데굴, 먼저 굴러가 있다
있는 힘껏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리뛰기
토끼는 자신의 눈을 보면서 달리는 것이다
자신을 함구하는 빨간 눈이 토끼의 공률이다

아버지랠리
공률 제로의 아버지는 서식지를 오염시키지 않는다
청정 지역이 되어 버린 아버지
일제히 눈을 켜고 빨간 눈을 따라간다
뒤에서 보면 무릎을 공회전하고 있다
이 눈을 좀 꺼 줘
자꾸 늘어나는 눈을 끄고 싶다지만
제로에 제로의 공률을 가속해 천문학적 사십 세에 이른다
반시계 방향의 급커브를 꺾어져서야
오래 비워 두었던 눈을 한번 감아 보는 것이다
다시 빨간 눈이 들어오고 있다
아버지는 한밤중에 그 눈을 따라간다

아랍인 투수 느씸
느씸은 공을 쥐지 않고 던진다
긴 손금으로 공에 대해 기도하고
시간 속에 공을 놓는다
공은 한없이 느리지만 시간의 결을 타고
반시계 방향으로 공회전하기 때문에
아무리 정확한 타자라도 맞출 수 없다
공에 대한 기도가 시간을 휘는 것이다
그러나 공을 받을 사람은 없고
느씸은 자신이 던진 공을 노려보느라 눈이 충혈된다
공은 젖어 가고 느씸의 눈은 폭발하고
빨간 눈이 흩어지고 흩어진 눈들이 느씸을 바라보고 있다
그가 던진 공은 눈먼 그만이 받을 수 있다

납굴증
밤의 소리들이 만질 수 없는 귀를 음각한다
귀 가득 무엇이 이리 무거울까
귀가 뜨거워질 때까지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귀는 말라 가고 우는토끼,
몸 안을 반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다
몸을 얻고 나서 몸 밖으로 나오기가 어려워진
이 밤은 누군가의 눈 속 같군
눈알이 염주가 될 때까지
이 밤을 모으고 있는 눈은 누구의 것인지
우는토끼 속의 우는토끼
돌아보는 눈까지 멈추고
한 벌 귀로 남은 밤

미결
이것은 관점의 문제가 아니다
긴 귀,
피가 미치지 않을 만큼 긴 귀가 결론을 뒤집지는 못했다
눈알을 반시계 방향으로 굴리며
관점을 덜어 내고 있는
그들의 정신만큼 안전한 곳은 없다
없는 귀 가득 명료한 결론들
정신은 없는 귀에 순응하는 것이다
귀가 좁아졌기 때문은 아닐까요?
끊임없이 자신을 듣는 귀 안쪽이 비리다
이름이 너무 길거나 붙일 수 없거나
귀의 기억만으로 그들은 자신을 기를 수 있는 것이다
귀가 없다면 계속 지켜봐야겠지만
눈이 없다면 계속 귀 기울여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