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집이나 시리즈로 나오는 책들을 전부 모으고 싶어지게 하는 요소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바로 그 책의 표지 디자인이죠!전집처럼 다양한 책들이 하나의 시리즈로 나와야 하는 것들 중엔 그 디자인으로 유명해진 것들이 대부분이잖아요. 그래서 준비해 봤습니다. 시리즈 도서를 위한 조금 더 특별한 표지 디자인!

바로 한 작가가 내는 시리즈 도서의 표지 그림을, 역시 한 작가의 작품만 사용하여, 그 자체로 특유의 통일성을 갖게 하는 아이디어인데요. 각자의 분야에서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는 두 작가의 만남은 그 자체로 기대되는 일이기도 하고, 또 어떤 것보다 매력적이어야 할 책의 표지에 좋은 그림이 쓰였기 때문에 아름다운 그림을 갖는다는 만족감은 물론, 작가 고유의 화풍이랄지 그림체가 확실하기 때문에 시리즈 전체의 통일성에도 확실히 그 몫을 하게 되지요!

 


 

 

1.밀란 쿤데라X르네 마그리트

Untitled-3

 

거장과 거장의 만남, 언어 예술과 그림 예술을 한꺼번에 소장한다는 만족감을 주는 시리즈 도서의 표지로는 단연 밀란 쿤데라X르네 마그리트 조합이 떠오릅니다! 최고의 현대 소설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밀란 쿤데라의 작품들을 선보이는 ‘밀란 쿤데라 전집’은 소설, 단편집, 희곡, 에세이 등 쿤데라의 작품 15종을 완역하여, 쿤데라의 문학 세계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줍니다. 특히 전권의 표지에 쓰인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과 밀란 쿤데라의 소설의 궁합은 설명할 필요 없이 아름답죠.

마그리트 재단은 도서 등에 대한 마그리트 작품의 2차 가공을 허락하지 않기로 유명하지만, 쿤데라 전집에 대한 사용은 특별히 허가해 주었다고 해요. 또한 쿤데라 역시 마그리트 작품이 사용된 자신의 전집 표지를 보고 “이전에 본 적 없을 정도로 훌륭하고 아름답다”고 격찬했다고 합니다!

2.줌파 라히리X에미 베넷

추곱ㄱ

 

마음산책 출판사에서 나오는 줌파 라히리 소설들. 줌파 라히리가 쓰는 오묘한 인물들의 성격과 그 배경이 어우러져 나타나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공기, 이제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줌파 라히리의 소설 역시 따라 읽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줌파 라히리 소설들의 표지에는 줄곳 에미 베넷의 그림이 쓰이고 있어, 한 작가의 소설을 관통하는 연속성과 통일성을 갖추게 합니다. <이름 뒤에 숨은 사랑>, <그저 좋은 사람>, <축복 받은 집>, <저지대>로 이어지는 소설의 표지는, 단정한 선과 단단한 색이 이루는 정교한 배경 사이에 언뜻 언뜻 작게 비치는 사람들의 슬프고 아픈 모습들, 혹은 쓸쓸한 이미지가 담긴 것 같은 에미 베넷의 아름다운 회화 작품을 감상하기에 적합한 컬렉션이기도 합니다. 그림의 장면은 정말로 줌파 라히리가 소설로 포착해 내는 삶의 이면, 그 진실을 비슷하게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정교한 슬픔에 대하여, 혹은 비참한 진실을 담담하게 말하고 있는 방식으로 말이에요. 미술 작품 그 자체로도 세련되고 아름다운 에미 베넷의 그림에 줌파 라히리의 소설 제목이 앉혀지는 순간, 기묘한 시너지가 이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으실 거예요!

 

3. 원탁X에곤실레

 으펀

 

문학적 즐거움과 영화적 기획을 보기 좋게 크로스오버 시킨 movie+novel 장르 ‘무블’을 개척한 이원태-김탁환 작가의 공동 창작 집단 <원탁>. 원탁의 소설이 시리즈 도서로서 새 옷을 입은 것도 신선하지만, 소설의 내용을 아시는 분들이라면 더 이색적이고 참신한 만남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원탁의 소설 무블 시리즈가 전 세계적 사랑을 받고 있는 에곤 쉴레의 그림을 입었어요!

『조선 마술사』, 『조선 누아르-범죄의 기원』, 그리고 신작『아편전쟁』까지. 따라 읽는 팬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원태-김탁환 작가님은 바로 역사의 틈에서 거부할 수 없이 매력적인 서사를 발견해 내는 분들이죠. 그간의 소설의 배경 역시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과거, 조선이었잖아요. 조선에서 벌어지는 범죄, 추리, 욕망, 배신, 우정, 사랑 등을 역동적이고 생생하게 펼쳐낸 활극과 에곤 쉴레의 그림이 만났다니, 이의 없이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이질적이지만 참신한 것 같기도 하죠! 시리즈 모두 에곤 쉴레의 그림 중에서도 선이 굵고 개성 넘치는 모습의 인물 그림이 들어가 있는데요. 그 자체만으로도 서로 짝이 맞는 소설과 그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원탁의 무블 시리즈는 각기 다른 이야기이지만 사실은 전부 욕망하고, 배신하고, 후회하고, 이 모든 ‘사람의 모습’을 담은 소설이기 때문이죠.

 

4.무라카미 하루키X안자이 미즈마루

 하루키

 

예술가와 예술가, 거장과 거장의 만남을 알려드리려니 역시 대단한 작가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네요+_+. 이번에 소개해 드릴 콤비는 이제 현대의 고전이 된,『노르웨이의 숲』, 『해변의 카프카』 등으로 전 세계 독자들의 폭넓은 사랑과 지지를 받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일러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입니다. 하루키는 소설 팬, 에세이 팬이 나뉘어 있다고 할 정도로 소설과 에세이 두 분야에서 모두 사랑받고 있죠. 그의 소설을 읽으며 느끼는 감동과, 에세이를 읽으며 느끼는 감동은 확연히 장르가 다른 감동 같기도 합니다.

북디자인, 광고, 만화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오랜 지인으로, 하루키가『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 재즈 카페를 운영하며 습작을 하던 무렵부터 알고 지냈다고 해요! 또한 「빵가게 습격」을 비롯한 하루키의 단편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캐릭터 ‘와타나베 노보루’는 다름 아닌 안자이 미즈마루의 본명이라고 하네요. 정말 신기하고 재밌는, 서로의 뮤즈 아닌가요. 두 예술가의 작품을 함께 볼 수 있는 하루키의 에세이 시리즈에는 표지 외에도 유머러스하고 경쾌한 터치의 에세이와 조화를 이루는, 심플하고도 손맛이 살아 있는 안자이 미즈마루의 삽화를 즐기실 수 있어요. (너무너무 귀여워요!)

 

5. 요시모토 바나나X나라 요시토모

 

나라

 

『하드보일드 하드럭』, 『데이지의 인생』, 『아르헨티나 할머니』까지. 요시모토 바나나 소설의 동화적인 색채와 섬세한 문체가 돋보이는 작품들의 표지에 세계적 일러스트레이터 나라 요시토모의 그림이라니, 이들은 원래 서로가 같은 짝인 것처럼 어울립니다. 그중에서 『데이지의 인생』은 사고 현장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소녀가 소꿉친구 달리아와의 우정을 통해 상처를 치유 받고, 달리아의 죽음까지도 성숙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성장의 과정을 담담하고 섬세한 문체로 그려낸 소설인데요, 여기에 요시토모 나라가 표지 그림을 포함한 회화 15점을 그려 분위기를 더합니다.

나라 요시토모 특유의 커다란 눈의 소녀가 눈을 데룩데룩 굴리는 것 같은 말간 표정과 아련한 파스텔톤의 색채는 마치 요시모토 바나나의 이야기와 문장을 그려낸 것처럼 잘 어울리죠.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는 『데이지의 인생』에 대해 “이 소설은 내 안에서도 이색적인 작품인데, 그림에 크게 힘입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라 요시토모 씨의 그림을 언제나 열심히 상상하면서 썼습니다. 같이 썼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나라 씨는 내게 많은 힘을 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정말이지 특별한 소설과 특별한 그림의 만남인 것 같아요!

 


 

어떠셨나요? 이렇게 모아 보니 정말 많죠!

그림과 글의 이런 특별한 만남도 단연 두 작가의 작품 세계가 조화롭게 어울릴지, 혹은 너무나 색다른 매력으로 상상치도 못한 결과를 낼지, 어마어마 고민이 될 것 같아요.

한편으론 이렇게 좋은 글을 쓰는 작가와 이렇게 좋은 그림을 그리는 작가를 만나게 해 주면 어떨까, 나 혼자 콜라보레이션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마구 벅차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누가 뭐래도 두 예술가를 책 표지에서 만나게 하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건, 서로 비슷해서 조화로운 매력을 선보이거나 아예 이질적이고 낯선 것에서 신선한 매력을 자아 내거나, 결국 서로 시너지를 내도록 잘 어울리는 사람들을 만나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겠죠.

특별한 작가를 위한 특별한 디자인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더 획기적인 기획이 많겠지만, 서로 다른 분야의 예술가가 책표지로 인연이 되는 이런 만남, 좀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것 같지 않으세요?

 

 

 

민음사 편집부

김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