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주말

 

 

흘러가는 대로 흐르기
 다들 지난 주말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초여름에 가까울 만큼 기온이 오르고 봄꽃 구경도 막바지에 이르다 보니, 항간에 “진짜 집돌이란 이런 날씨에도 밖에 안 나가는 사람” 같은 말이 떠돌더군요.
저는 타고난 집돌이는 아니다만 금요일 퇴근부터 월요일 출근까지 한 발짝도 밖에 안 나가고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은 채 아아주 느린 주말을 보냈어요. 아, 하나 한 일이 있기는 해요. 마침 모 콘텐츠 플랫폼에서 「나루토」 완결 10주년 기념으로 전권 대여권을 증정하기에 72시간에 걸쳐 정주행을 완수했지요. 3시간 동안 열 권 보고 2시간 누워 있고, 2시간 밥 차려먹고 또 다음 진도 나가고…….
스스로 신기했던 건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한 주말 그 다음 날 월요일 특유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원래 같으면 전날 오후부터 급속도로 우울해지고 내일 아침 처리해야 할 일을 떠올리며 잠을 설쳤을 텐데 말이에요.
이유가 뭔고 하니, 도시를 떠나 농사일을 하며 자신만의 일-쉼 패턴을 찾아가는 분들과 좋은 이야기를 나눈 영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음 호 ‘쉼’에서 다룰 키워드 중 하나인 ‘기르기’와 관련한 대담을 참관하면서, 임금노동이 아닌 자급자족하는 삶의 구체적인 모습을 참고할 기회가 있었거든요.
‘귀농’, ‘주말 농장’, ‘도시 텃밭’ 하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저의 경우 제 자신의 것과 너무나 다른 라이프스타일에 약간은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데요. ‘텃밭 가꾸기라는 취미는 쉬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일 아닌가?’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어 ‘아니, 가계에 도움되는 일이라 좋은 건가?’, ‘평소에 그렇게 일을 하고도 일이 좋다고?’로 이어지는 데에서 끝나고 마는데… 화폐가 아닌 삶에 필요한 것을 직접 생산하고 교환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러한 평소의 생각을 다른 각도로 궁리해 볼 수 있었어요(대담 전문은 곧 출간될 《한편》에서 보실 수 있답니다!).
물론 한 번의 대화만으로 도시의 임금노동자(=나)가 일 생각, 자기계발 생각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묘책을 얻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얼마만큼 생산할 것인가, 한정적인 조건에 얼마나 나를 쥐어짤 것인가는 내 마음가짐에 달렸다는 생각을 해 보았지요. 성인이 되고서야 비로소 본 「나루토」 완결권은 어딘가 허무한 면도 있었지만, 그 허무한 시간도 그대로 흘려 보내기로 했습니다. 
특별한 ‘쉼’ 호를 위한 티징 이미지.
발간 전 한 달 동안 미리 보내드릴 소식 기대해 주세요.
아아, 그러고 보니 최근 끝까지 본 콘텐츠가 또 하나 있습니다. 웨이브 오리지널 예능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친구의 출연 소식을 듣고 언젠가 챙겨 봐야지, 봐야지 하던 프로인데, 입소문이 조금씩 붙으며 편집부 동료들까지 다들 보고 추천하는 거예요.
논쟁적인 주제 때문에 금방 피곤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잠시, 제작진의 촘촘한 설계에 감탄하며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까?’를 자주 묻게 되었어요. 너무 생존에만 치중하지 않고 나와 다른 배경,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을 한 번 더 헤아릴 수 있는, 또 스스로의 성향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흥미로운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한 출연자와 PD의 비하인드 콘텐츠를 보니 최근의 소소한 입소문을 두고 ‘장안의 화제, 그러나 장안에서만 화제’라고 표현하던데요. 처음부터 켜켜이 쌓인 맥락이 중요해 소위 ‘쇼츠화’ 시키기 어려운 콘텐츠라는 점에서 논픽션 책과도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답니다……(하하)
프로그램에서 제 나름으로 떠올린 한 가지 질문은 다음 《한편》의 꼭지로도 다루려 해요. 이 또한 곧!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를 재밌게 보고 추천한 동료, 저예요! 사상 검증 테스트도 해 보고요. (제 점수는요…….) 같이 본 친구와의 대토론이 대싸움으로 이어지는 바람에 결국 인신 공격해서 미안하다…… 사과한 일도 있네요. 예능 속 작은 사회를 한국 사회와 비교하면서 닮은 점과 다른 점을 찾아보는 것도, 예능이 현실 정치와 겹쳐지는 걸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책갈피! 대만 소설가 궈창성의 소설 『피아노 조율사』를 재미있게 읽었어요. 친구에게 무턱대고 추천하고서 정작 “왜 좋았어?”라는 물음에는 “여백이 많아서…….”라고 답하고 말았는데요. 피아노의 (불협) 화음과 관계들이 겹쳐지는 이런 대목을 접어 두었네요. 
“일곱 살 아이와 스물네 살 추 선생님. 열일곱 살 소년과 서른네 살 피아니스트. 마흔세 살 중년과 예순 살 린쌍. 
똑같은 차이를 두고 윤회하듯 반복되었다.
피아노의 두 건반이 똑같은 거리로 다른 음정 속에 있으면서 완전히 판이한 진동과 공명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았다.
육십과 팔십의 공진이 쓸쓸함과 절망감을 자아낸다면 그건 오랫동안 조율하지 않은 탓일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간격 중 무엇이 피타고라스의 절대적 협화 음정에 가까울까?
누군가는 늘 상처받는다.”
- 반가웠습니다. 제목에 통영이 들어가 있어 보자마자 메일을 클릭할 수 밖에 없었어요. 거기다 한편 메일을 클릭하자마자 익숙한 음악당 사진이 보여 내적 친밀감이 상승했답니다. 저도 동네마실처럼(?) 음악제를 다녀왔기에 더 반가웠습니다!
P. S. 통영국제음악제도 민음사 책이랑 콜라보 해 주세요!
왜 일기의 시대인가… 저도 급 궁금해졌습니다.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마음 말고 타인의 일기책을 읽는 마음은 뭘까. 스마트폰과 SNS로 인해 글, 사진, 영상 등 자기 기록이 범람하는 시대에 가장 느리고 아날로그적인 일기의 미학이란… ‘밖으로 열리면서도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일’ 문장을 등불 삼아 앞으로 생각을 정리해 보고 싶어요(민음사의 새로운 일기 시리즈를 읽으며!).
-이럴수가 아부의 책갈피라니! 너무 반가워서 내적함성 질렀어요. 요즘 채널예스에서 화진 편집자님이 연재하셨던 ‘김화진의 선택 일기’ 칼럼 정주행 중인데 매일과 영원 출간 당시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어서 ‘한 번 읽어볼까’ 싶던 참이었거든요. 아부의 고민과 혼란에 공감하는 마음으로 일기시대부터 읽어 볼게요!
- 요즘 명상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일기와 명상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는 것, 그치만 그걸 한번에 알아듣기란 어려운 것…
대저토마토 두 박스째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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