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 잃어버린 리추얼을 찾아서

 

 

무익하기에 유용한 것
 한 며칠 봄이 일찍 왔나 싶은 날씨가 이어지더니 갑자기 온도가 뚝 떨어져 온몸이 으스스한 2월 말입니다. 두툼한 코트를 입었다, 다시 롱패딩을 꺼냈다 겨울 변덕 맞추기 번거로운데, 다른 한편으로는 머지 않아 봄이 오겠구나 싶은 기대감이 들어요.
2월 하면 떠오르는 중요한 행사, 바로 졸업식이죠. 코로나 대유행 여파가 남았던 작년보다 올해 여기저기서 졸업식 사진을 더 많이 본 듯해요. 학부 졸업 때 친구들과 제법 요란을 떨었던 저는 대학원에서는 따로 졸업 앨범을 찍거나 식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멀리서 올라오신 부모님께 학위복을 입혀드리며 나름의 의식을 치른 기억이 있어요.
오는 봄 출간을 목표로 만들고 있는 책, 『삶을 위한 리추얼』(가제)의 원고를 볼 때면 이처럼 오래된 (대형) 행사의 기능과 의미를 되짚게 되어요. 그리스 출신의 실험인류학자인 드미트리스 지갈라타스는 ‘전통과 문화라는 말로 전수되는 각종 의례가 오늘날 인류에게 대체 무슨 쓸모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고행에 가까운 전통 의식부터 입학식과 졸업식 같은 일상적인 의례, 스포츠 선수의 징크스와 같은 개인적인 의식을 둘러봅니다. 2~3년 전쯤부터 자기계발 분야에서 나만의 ‘해빗(습관)’ 만들기, 더 나은 나를 위한 ‘리추얼’이라는 키워드가 곧잘 쓰이고 있는데, 저자는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하는 설명을 제공해요.
“[의례와 습관] 둘 다 고정된 반복적 패턴이 뒤따른다는 점에서 정형화된 행동일 수 있지만, 습관은 이런 동작이 세상에 직접적 결과를 낳는 데 만해 의례는 그런 동작이 가진 상징적 의미 그 자체를 위해 수행된다. 우리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 닦는 습관을 들일 때 이 행위의 목표는 그것의 즉각적인 기능에 있다. 말하자면 그 행위는 인과적으로 투명하다. 상징적 솔을 허공에서 흔드는 행동은 우리의 치아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습관은 이런 구정을 하나의 루틴으로 바꾸어 별 생각 없이도 그러한 행동을 규칙적으로 하게 해 준다.
반면 의례는 인과적으로 불투명하다. 의례는 집중하고 주의하기를 명령한다. 의례는 기억에 따라 행해지는 상징적 동작에 의해만 정확하게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리스 정교 결혼식으로 신랑 신부의 들러리는 결혼반지를 교환해 신부와 신랑의 손가락에 기우고 머리에 왕관 씌우기를 세 번 반복한다. 사제는 세 개의 기도문을 일겅야 하고, 부부는 같은 잔에 담긴 포도주를 세 모금 마시고 제단을 세 번 돌아야 한다. (……) 결혼 의식의 상징주의와 겉치레는 우리에게 결혼을 입증하는 것이 서류 작업이 아니라 의례라는 인상을 줄 정도로, 그 행사를 중대하고 기억할 만한 것으로 만드는 주 요인다. 습관은 중요한 과제를 루틴화하고 재미없는 것으로 만들어 우리가 그것을 체계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데 반해 의례는 일정한 것을 특별하게 만들어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불어넣는다.”(『삶을 위한 리추얼』, 1장 중에서)
저는 이 원고를 보며 ‘지금 나에게, 혹은 우리 사회에 무의미하게 계속되는 리추얼이 있나?’라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어요. 입학식, 졸업식 정도를 제외하면 특정 절기나 명절에 하는 놀이 정도일 텐데, 이조차도 긍정적인 효과보다 ‘구식’이라는 프레임으로 멀리하고 있는 것 아닌지…… 이런 의심이 맞는지를 확인하려 여러 참고도서를 살펴보다 문화인류학 도서의 늪에 점점 잠겨 가고 있답니다. 너무 늦지 않게 실물 책으로 선보일 수 있도록 또 소식 전할게요!
- 지난 주 『재난에 맞서는 과학』 저자이자 《한편》 ‘집’ 호 「가장 깨끗한 집 만들기」의 필자 박진영 선생님과의 세미나도 즐겁게 잘 마쳤답니다.
『재난』 책이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피해가 발생한 집, 사무실, 학교 등 건물 내부의 상황을 서술했다면, 박진영 선생님이 주로 연구하는 환경피해 사례는 거리, 행사장, 강당 등 집 바깥의 공간이라는 차이를 짚어 주신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갖가지 생활화학제품으로 나만의 깨끗한 집을 만들더라도 집 바깥의 환경이 깨끗하고 안전하지 않다면 안전의 책임이 언제고 개인(소비자)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 또한 가슴에 콕 박히는 이야기였고요. 목요일 밤 세미나를 함께한 분이 계시다면 후기를 공유해 주세요!
참고문헌에 잠겨 가는 미선 편집자님……. 저는 배삼식 작가님의 신작 희곡집 『토카타』를 만들고 있는데요. (3월 출간 예정!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작품집에 실리는 「마디와 매듭」이 표제작인 「토카타」만큼이나 마음에 들어와요. 동지, 소한, 대한, 입춘, 우수, 경칩…… 24절기에 따라 변하는 산천초목에서 조상들이 어떤 일과 놀이를 했는지 보여 주는 작품인데요. 노래처럼 이어지는 글 속에서 농사일을 시작하고 끝마치면서 조상들이 했던 의례들도 엿볼 수 있답니다.
덕분에 어느 때보다 절기에 큰 관심을 두며 지내는 와중, 『삶을 위한 혁명』을 읽다가 이런 대목을 만나고 말았습니다. “날씨는 예측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기후는 예측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은……?
올해 입춘(立春)은 역대 가장 따뜻했다고 하지요. 더 이상 절기가 날씨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 없을 만큼 불확실한 기후의 시대에 이미 들어와 버렸다고 생각하면 서늘해져요. “모든 생명체의 기반인 자연 순환”이 파괴되고 자연의 시간을 잃어버린 지금 ‘삶을 위한 혁명’의 길을 찾아보고 싶어요.
화제의 영화 「추락의 해부」를 보았어요. 휘몰아치는 부부 싸움과 법정 공방 장면에 힘들어하면서, 역시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걸 어떻게 전달하고 설득하는지이다…… 하고 언제나처럼 소통의 문제로 돌아가 버렸네요.
한편 영화를 본 이후로 머릿속에서 온갖 동물들이 떠나지 않고 있어요. 정확히는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여러 동물들 옆에 놓아 보는 버릇이 생긴 건데요. 산드라의 이 대사 때문에요. “나는 닮은 동물이 떠오르지 않는 사람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요.” 
김겨울 작가, 황윤 감독과 함께하는
‘탐구’ 북토크가 2월 마지막 주 열려요!
- 13호 ‘집’을 읽고 내 집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저는 역시 가족이 있어야만 집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선지 영화 「그래비티」 이야기가 공감갔어요. 가족을 잃었을 때, 같은 하늘 아래에서는 견딜 수 없어 다른 하늘을 두는 우주로 날아간 사람. 그럼에도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되는 지구. 슬픔과 절망은 피한다고 해서 피해지는 것이 아닌거지요. 벌써 다 읽다니 너무 아쉽네요. 다음 한편이 벌써 기다려집니다.
- “상실의 슬픔이 누그러지는 것은 배신이 아니다”라니… 저는 소중한 사람과 어려운 이별을 하고 난 후에 일상 속에서 슬픔이 누그러지는 저를 발견했을 때 생각보다 큰 죄책감을 느꼈왔거든요… 이 문장이 위로가 많이 되네유ㅠㅠ 국밥 백 그릇 먹은 것 마냥 가슴이 땃땃해졌습니다,, 책 꼭 읽어보고 싶네용!!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ㅎㅎ
한강 둥둥 오리떼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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