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 긴 휴가를 앞두고

 

 

삶을 위한 쉼
 오늘 독자 편지를 읽고 눈이 뜨거워졌어요.(레터 끝에서 확인하세요!) 집과 일과 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 주셔서 고맙습니다. 또 한편의 편지를 시작하는 데 힘이 됐어요. 저는 지금 긴 휴가를 앞두고 2주 연속으로 기획 편지를 쓰고 있군요. 휴가 특징. 직전까지 업무하느라 정신없다.
오늘은 휴가를 기획하는 편지를 쓰겠습니다. 이번에 긴 여행을 떠나는데 가방에 넣어 갈 책을 고르고 있어요. 회사에서 하는 기획과 직접 관련이 없어야 한다, 참고 도서로 산 책은 제외한다, 편집자의 일이 떠오르는 책은 뺀다…… 고르고 고르는 가운데 친구가 『새벽과 음악』이라는 책을 선물해 줬어요! 아아 맞아, 나는 음악을 통해 일에서 벗어날 수 있지…….
수요일 아침을 슈베르트의 이 곡으로 열어 보실래요?
지난주에 『삶을 위한 혁명』을 마감하고 연주회에 다녀왔어요. 피아니스트 폴 루이스가 연주하는 슈베르트. 일찍일어나는새로 일찌감치 예매해 둔 거라서 연주회장에 마침내 들어가자니 북받쳤습니다.
음악은 글과는 다르게 다가오잖아요. 이날은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가 눈으로 들어와서 가슴으로 내려가 발끝에서부터 머리로 다시 올라오는 느낌이었어요. 황홀경이었는데, 후기 슈베르트의 특징적인 갑작스러운 단절, 공포 어린 타격, 루이스 자신의 표현대로 열정적인 분노”를 전달한 연주자를 바라보면 몰입이 흩어지는 거예요. 공연을 마친 연주자는 힘들어했고, 같은 곡을 몇백 번 반복하면서 슈베르트의 분노를 공연하느라 지쳐 보였어요. 그가 앵콜도 사인회도 그만두고 쉬어야 한다는 생각과 영원히 연주회장을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함께 드는…… 지친 노동자의 감정이입이 일어났습니다.
폴 루이스를 통해 생생하게 다가오는 슈베르트의 분노, 반복되는 분노를 생각하면서 이언 보스트리지의 책을 꺼내서 읽었어요. 동료들과 오랜만에 하는 낮술낭독회(촬영 아닌)에서 읽었는데 또 술기운 속에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고…… 다시 펼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네요.
“나그네가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병리학의 대상이거나 아웃사이더이기 때문일까? 이것은 내가 <겨울 나그네>를 부를 때마다 반복해서 돌아오는 질문 가운데 하나다. 우리는 그와 동일시해야 할까. 아니면 배척해야 할까? 그는 동정심을 자아내는 인물일까, 혐오감을 주는 인물일까? 통찰을 안겨줄까, 당혹감을 선사할까? 괴팍할까, 정상일까? 이런 당혹스러운 반응들이 <겨울 나그네>를 그토록 매력적으로 만든다.”(347쪽)
이 책을 쓴 성악가는 이렇게 반복해서 돌아오는 질문들과 함께 공연을 한대요. ‘그건 그거야!’라고 정답을 확신하면 해석이 노잼일 될 거라는 건 짐작되는데요. 그럼 나그네 말고 그냥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떤가? 저는 이제 ‘적이냐 친구냐’ 하는 그동안 책 만들면서 반복해 온 질문을 파기해야 할 때라…… 겨울 여행이 기대되네요.
지난주 ‘체제전환운동포럼에 다녀왔어요. 총선을 앞두고 뉴스를 볼 때마다 분노와 답답함이 커지는 와중…… “복잡하게 맞물린 문제들에 대응하는 거대하고 근본적인 전환”의 방법을 찾아서요. 이렇게 여러 분야, 다양한 단체의 활동가들을 한자리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요. 웅장한 규모에 감탄하며 조금은 낯설게 앉아 있다가 새벽 편집자님을 발견하고 반가워했지요!
특히 농업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는데요. 항꾸네 협동조합의 연어 님이 곡성에서 농사를 짓고 살며 겪는 문제들은 도시에서 세입자들이 겪는 ‘집’ 문제와 겹쳐지기도 해요. 도시에 전세사기와 불안정한 주거 문제가 있다면 농촌에는 그곳에 살지도 않고 집을 내놓지도 않는 ‘부재 지주’들과 빈집의 문제가 있습니다. 농업 세션 발표에서 집, 주거권 세션의 발표가 인용되기도 했는데요. 여러 영역을 가로지르는 앞으로의 논의와 활동들이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포럼에 등장한 ‘호미를 들자!’라는 구호를 자꾸 떠올리고 있어요. 많은 도시인들이 그렇듯 농촌, 흙, 먹거리와 크게 멀어져 버린 저는 호미 대신 포크라도 들고 작은 텃밭을 가꿔 볼 상상을 뭉게뭉게 펼치고 있어요.
‘집’과 『재난에 맞서는 과학』을 함께 이야기하는 공개 세미나에 들어오세요!
- 가족간병에 관한 글이 눈에 들어오네요. 누구에게나 닥쳐올 현실이라고 막연하게만 생각했었는데, 막상 현실을 마주할 때가 되니 모두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것 같습니다. 가끔은 아무도 없는 해변에 주저앉아 울부짓고 싶지만, 매일의 일상속에서 무표정으로 일관합니다. 누구에게도 상처주고 싶지 않고, 누구에게도 상처받고 싶지 않습니다. 가끔의 글속에서 공감하고 위로받습니다. 건강하세요.
- 아마도 ‘집’이라는 주제는 이 세상 사는 생명들이 모두 한마디씩 할수 있는, 하고 싶은 얘깃거리인데 ‘한편’에서는 어떤 내용을 담았을까ᆢ 무척 궁금했어요. ‘영이’가 쓴 첫글을 읽고는 역시나! ‘한편’이 가진 폭넓은 시야에 머리를 강타당했어요. ‘집’의 개념에 ‘몸’을 대입했을 때 몸과 불화하는 많은 이들의 근본적인 고통을 내것처럼 느낄수 있더군요. 아아 ᆢ 이래서 ‘한편’같은 인문교양잡지가 필요하구나. 환갑지난 나이지만 눈이 흐릿해질 때까지 계속해서 ‘읽어야’겠구나 생각했어요. 한편 편집자들과 필자님들 이번 호도 감사합니다~~
- 1년간 육아휴직을 끝나고 직장 복귀해 2일차 입니다. 아직 업무가 적어 한편의 편지를 보고 있네요. 편지 내용 중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가 마음에 다가 왔어요. 거창한 무언가를 꿈꾸기 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냈을 때 일에 대한 보람과 자신감이 높아졌던것 같아요. 다시 시작하는 사회생활이 두렵기도 설레기도 하는데 좋은 글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늘 레터를 보고 저의 손을 바라보게 되었어요. 삶에서 노력이란 것이 많이 담기지 않은 저의 손을 보며, 나는 지난 날을 너무나 허비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살아있기에 이 손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현실에 어떤 ‘집’의 모습을 제안할 수 있을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늘 레터도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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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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