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 당신에게 집이란?

 

 

집의 안팎을 구성하는 것
지난 주 무사히 마감을 끝낸 편집부는 연달아 행사 몇몇을 치르고…… 일월 최강 한파를 온몸으로 맞으며 실물 잡지를 기다리고 있어요. 보도자료를 준비하며, 출간 후 세미나를 상상하며 다시 꺼내 읽은 이번 호 발간사는 거듭 볼수록 더욱 좋네요.
이번 키워드 ‘집’을 제안한 한솔 편집자는 “엄마가 되고 나서”부터 집과 존재에 관한 많은 것이 순식간에 변했다고 고백해요. 글 일부를 여러분께 전해 봅니다.
엄마가 되고 나서는 혼란이 내 기본 상태다. (짧은 순간 벅차게 느끼는) 엄청난 고양감과 행복, (하루의 대다수)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자기 부정과 죄책감 사이에서 몸도 정신도 쪼개진다.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어. 네가 아이 봐주는 날이잖아. 하지만 아침에 애들을 두고 나가는 게 힘들어.’ 우리는 언제나 말이 두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배웠다. 두 번째 문장은 첫 번째 문장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일관성이 있다. 우리가 양가성을 더욱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제인 라자르, 『분노와 애정』)
무슨 일이 있어도 저녁 일찍 아이 옆에서 잠들어야 하는 중력과 새벽 알람에 총 맞은 것처럼 집을 나서기. 나도 아는 것을 찾으려 자꾸 문장을 뒤진다. “저처럼 우울한 엄마들이 진짜 있나 궁금해서 왔어요.”(수미, 『우울한 엄마들의 살롱』) 하지만 읽으면 무엇이 달라지나? 다른 엄마들과는 진짜 통하는지? 비혼인 친구, 아이가 없는 동료들, 그리고 아이가 있는 남자들에게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아주 사적인, 집에서 일어난 이 엄청난 일들을 못 참고 터뜨리듯 말한다. 난 친구와 동료들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는 걸까? 그런데 이런 얘기를 집 밖에 해도 될까? 모든 걸 엎지른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홀로 난망함과 수치심에 빠진다.
클라우디아 골딘이 2023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을 때 『커리어 그리고 가정』(2022)을 읽고 동료 맹미선 편집자와 함께 『가부장 자본주의』 북토크를 했다. 두 책을 같이 읽으니 여성의 일터와 집 사이에서의 분투가 단순명료하게 설명되었다. 그렇다면 일하는 엄마인 나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나? 지방의 남성은 외벌이 남편과 전업주부 아내로 구성된 오래된 가족을 꿈꾸고(천현우, 「지방 총각들도 가정을 꿈꾼다」, 《조선일보》), 중산층 맞벌이 부부는 저임금 국가 출신 가사노동자를 적극 도입하는 것만이 해법이라고 경험담을 들려준다.(김현철, 『경제학이 필요한 순간』) 이 사이에 내 갈 길이 있을까?

《한편》 13호 ‘집’이라는 주제는 이런 의심과 주저함에서 시작했다. 집은 어떤 공간인가?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나? 너무나도 다른 경험 속에서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 ‘집’ 이야기를 꺼내 놓을수록 오히려 한 쪽은 더욱 입을 다물게 될지도 모른다. 서로 연결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더라도 공통분모를 찾기 위해 아주 작은 단위에서 거하는 장소, 쉽사리 떠날 수 없는 장소인 몸으로부터 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 이한솔, 「집 안팎을 흐르는 바람」,
《한편》 13호 ‘집’ 중에서
여러분에게 집은 어떤 곳인가요? 마음이 편한 곳? 가족이 있는 곳? 내가 원하는 집의 모습은 또 어떻고요? ‘집은 모두의 고민거리’라는 데서 기세 좋게 이번 호를 시작했지만 당신이 사는 집이 누구 소유인지, 누구와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관념 속의 집은 어떤 상인지 등 따질수록 저마다의 관점이 달라 난감했어요.
챙길 식구와 멀리 떨어져 사는 제가 이번 키워드를 주로 ‘공간’의 문제로 접근했다면, 아이를 낳은 후 집의 의미가 재구성되고 실제로 멀리 이사도 간(!) 한솔 편집자는 실질적인 (돌봄) 노동, 가족과의 관계 등 집의 내부를 이루는 것을 오래 고민해 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읽으면 무엇이 달라지나? 다른 엄마들과는 진짜 통하는지? 비혼인 친구, 아이가 없는 동료들, 그리고 아이가 있는 남자들에게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문장에는 덩달아 마음이 아파오면서도, 우리가 집 안의 이야기를 구태여 꺼내는 이유를 자문하게 되어요. 연결은 쉽지 않으나 공통분모를 찾기 위해 분투한 ‘집’ 호입니다.
한편 집이라는 키워드와 관련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콘텐츠도 소개해 봅니다.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 중인 와난 작가의 《집이 없어》인데요. “집을 버리고 뛰쳐나간 고해준, 집 없이 텐트 생활하는 문제아 백은영”, 갈 곳 없는 두 주인공이 학교의 낡은 기숙사에서 동거하며 펼쳐지는 휴먼 드라마랍니다.
와난 작가 특유의 입체적인 캐릭터와 캐릭터 간 관계를 쌓아가는 조마조마한 연출을 오랫동안 좋아해왔는데, 이번 작품은 특히 ‘누가 나의 가족인가?’를 자주 고민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추천하고 싶어요. 마침 꼭 일 년 전 나온 에피소드가 주인공 중 한 명인 ‘백은영의 집’이고 지금은 ‘고해준의 집’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네요.
아아, 발간사가 위대한 탄생을 이룰 때 산모를 도울 수 있어서 뿌듯했습죠. 한편 편집자들은 네 달에 한번 하나의 주제를 제시해서 마감까지 이끌어간 과정을 발간사에 쓰는데요. 이 일은 너무 어렵고 또 저자에게 늘 요구했던 것(“자기 이야기를 써주세요” “실제로 있었던 사례를 들어주세요”)이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잖아요. 그 시간을 2021년의 ‘일’ 호에 이어서 3년 만에 한솔 편집자님과 하고 있으니 어떻게 ‘일’에서 더듬었던 모든 문제가 심화되어서 우리 앞에 주어져 있는지…… 왜 이렇게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게 수치스러운지…… 먼저 쓴 사람들의 책에 결국 기댔죠. ‘우정’ 호에서 ‘비우정의 우정’을 말했던 이연숙 평론가의 첫 책 서문처럼요.
“수치심은 “상상된 타인의 시각” 혹은 이상적인 초자아의 ‘시선’을 의식할 때 발생한다. 이로써 수치심을 느끼는 주체가 사실은 끈질기게 ‘타인’이라는 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표시한다. 다시 말해 수치심을 느끼는 주체는 항상 말하고 싶어하는 주체다. 말하고 싶어하기에 침묵할 수밖에 없는 주체다. 피부 아래의 내장에서부터 숨겨놓은, 세계와 연결되려는 열망을 뺨을 붉히고 말을 더듬는, 다분히 생리적인 반응으로 노출할 수밖에 없는 그런 주체다.”(7쪽)
수치심 얘기를 한 김에 마감 음악도 띄워요. ‘집’ 호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들였던 영이 「내 영역」을 마지막 편집하면서 오랜만에 스매싱 펌킨스를 들으며 아득함에 빠졌는데 이 노래 제목이 그냥 셰임.입니다. “Love is drunk all the time”이라는 가사가 중독자를 건드리고, 제가 발간사를 썼던 한편 ‘중독’ 호로부터는 또 얼마나 문제들이 심화되었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이런…….
  이번주 금요일(1/26) <이미지란 무엇인가>,
<재난에 맞서는 과학> 첫 북토크가 열려요!
- 이번 편지에는 꼭 답장을 하고 싶은 맘이 들었어요. 창간호부터 한편을 구독하고 있고, 뉴스레터도 처음부터 지금까지 받고 있어요. 그런데 뉴스레터에 한번도 답을 해봐야겠다고 마음 먹은적이 없는데요. 제 글을 다른 분께 보여드리는게 부끄럽더라구요^^; 그러다가 새해가 되고 이렇게 좋은 글을 모아서 출판하시고 뉴스레터를 매주 보내주시는 편집자님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앞으도로 좋은 글 재밌는 글 잘 읽겠습니다! 화이팅!
- 한편 13호에 실릴 ‘내 영역’을 읽으면 저를 반성하게 되는 거 같아요.. 평소에 나와 다른 부분이나 영역에 열린 사람이라고 약간의 자부 아닌 자부심을 느끼고 살고 있었던 거 같아요. 예를 들면 작게는 취향, 넓게는 인종이나 문화라던가…. 그건 단순히 적개심이 사라진 것뿐이지 내가 완전히 내 마음을 넓히고 받아들인 것이 맞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집이라는 공간이 단순히 사는 공간 뿐만 아니라 다른식으로도 생각을 넓힐 수 있을꺼 같네요!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항상 감사드려요~
- 한 권의 잡지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료들을 보고 읽으시는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시는지 그렇게 만들어지는 잡지는 얼마나 귀한지 느낄 수 있는 편지였습니다. 집 근처의 ‘독산동’부터 멀리 떨어진 ‘후쿠시마’까지 다양한 집과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그리고 문과 벽으로 닫힌 공간이 아닌 더 넓은, 확장된 집을 가질 수 있도록 스스로도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 편집자 님들이 추천해 주시는 책이나 글들과 같은 읽을 거리가 있는 게 너무 좋았어요.
- 미리 공개된 목차가 흥미롭네요. 하루빨리 받아볼 수 있길 기대합니다.
- 우와 다음 호가 ‘집’이라니. 기사 하나를 추천합니다.
평소보다 많은 답신에 어깨춤을 추는 편집자입니다. “이번 편지에는 꼭 답장을 하고 싶은 맘이 들었어요.”라는 어느 독자 분의 용기부터 소개 자료에 대한 깊은 감상, 수줍은 팬심 고백(!)과 지난 피드백에 대한 석연치 않은 마음 전달, 편지의 의미를 확대하는 기사 추천까지. 하나하나의 마음 덕에 여러분과 편지를 주고받는 시간이 더더욱 소중하게 다가온 일주일이었어요. 그럼 다음 주에 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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