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 내가 사는 곳

 

 

마감이 코앞 ☺
 화요일 오후, 편집부는 한창 13호 ‘집’ 마감 중이랍니다. 오늘 진짜진짜 마감이에요…… ‘집’ 목차를 공개해요!
앞표지의 ‘집’처럼 흘러내리는 바코드와 함께 영역, 쪽방, 둥지…… 집을 부르는 이름들이 눈에 들어와요. 짓기, 만들기, 귀향 같은 집을 둘러싼 동사들도요. 한편 이슬람 사원이라는 구체적인 건축물과 후쿠시마라는 고유명도 보이는데요. 저는 이번에 「후쿠시마의 주민들」을 써 주신 인류학자 오은정 선생님과의 대화 중에 ‘후쿠시마는 한국의 강원도 같은 곳’이라는 설명을 들었어요. 그 말을 들은 뒤로 ‘후쿠시마’라는 지명을 듣고 원전사고뿐 아니라 산나물과 숲을 함께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마침 지난 주말 강원도 삼척에 가서 취나물과 더덕구이, 감자전을 먹었거든요. “주변의 텃밭과 논 그리고 숲이 내어주는 것들로 꾸리는 삶”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된 후쿠시마 주민들의 이야기를 ‘집’에서 확인해 주세요.
마감하며 펼쳐 본 그림책을 기획편지에서 소개해 드려요. ‘집’ 호의 발제자인 한솔 편집자님에게 빌려 본 『나의 독산동』입니다. 독산동에 사는 초등학생 은이를 혼란에 빠뜨린 시험 문제를 함께 보시겠어요…?
이렇게 은이는 자기 동네가 살기 나쁘다는 걸 처음 알게 됩니다. 비록 시험 문제는 틀렸지만 은이에게 동네는 좋은 곳이에요. 이웃해 있는 공장은 일하고 있는 엄마, 아빠를 만날 수 있는 곳, 아이스크림을 얻어먹고 잘못 만들어진 인형들을 받을 수 있는 곳이거든요. ‘공장이 있으면 시끄러워 살기가 나쁘다’라는 교과서 내용보다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친구들과 부모님을 만나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인형을 만들어 내는 은이의 동네 탐험이 훨씬 즐거워 보여요.
집은 나의 좁은 방인 동시에 동네, 국가, 우주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것, 문과 벽으로 닫힌 공간인 것 같지만 사실 사람과 물질들이 오가는 열린 공간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중인데요. 은이가 친구들과 함께 동네를 탐험하듯 집 안팎에서 무엇을 만나 어떻게 함께 집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 생각해 보고 있어요.
하하. 마감을 하기 위해서 많은 책을 병렬독서 했죠. 그중에서도 좋았던 책이 신혜란, 『누가 도시를 통치하는가』였어요. ’누가 도시를 통치하느냐니. 시장이겠지…….’ 이 책을 읽으면 서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죠.(누가 도시를 통치하는가의 정답은 책 뒤표지의 충격적인 디자인이 보여 주니까 이미지를 클릭해 보세요!)
저는 특히 회사에서 일할 때나 다른 모임, 단체에서 뭔가 할 때나 ‘거버넌스’(협치)라는 게 무엇이며 도대체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 건지 항상 고민인데, 이 책의 ‘스타벅스 비유’에서 알아냈어요. “정신없는 스타벅스에 앉아서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태를 생각하면 된다. 협치에 참여하고 장소 만들기에 한몫하고 싶다면 많은 다른 존재와 소음을 견디면서 자기 일을 하는 어정쩡한 상태를 받아들여야 한다.”(205쪽) 아아, 어정쩡한 상태가 근본이라고? 아아…… 신혜란 지리학과 교수는 20년에 걸쳐 광주시에서 이루어진 ‘장소 만들기’를 탐구했으니, 광주에 관한 또 하나의 책을 만들고 있는 세영 편집자님이 당연히 생각났구요.
또 하나, 재미있는 콘텐츠를 소개해야 할 텐데…… ‘집’ 호 발간사를 쓰느라 매진 중(심지어 이 편지를 쓰는 지금까지도)인 한솔 편집자님이 권해 준 또 하나의 그림책이 있어요. 존 버닝햄의 흐늘흐늘한 동물 그림이 무척 귀엽고 저는 제목이 참 마음에 들어요.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언젠가 KTX에서 실제로 발화해 보고 싶은 대사인…….
오늘 진짜진짜 마감인 《한편》 ‘집’은 깨진 술병, 피와 상처, 혐오 현수막, 모욕적인 언사 등으로 점철되어 있고 그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 그 자체인데요. 제가 몰입하고 있는 나와 타자들, 적과 친구라는 주제가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에서는 너무나 빠르고 신나게 반복되고 있어요. 올타임 스테디셀러인 이 그림책은 다들 찾아서 봐 주시고, 레터에서는 역시 ‘집’에 관한 뜨거운 새 글을 조금 보여 드려야겠군요. 
“개체가 집단으로 영역을 확장시키는 사회화 과정은 내 집 밖의 타인을 향한 적개심을 사라지게 하지 않는다. ‘나’ 아닌 외부를 향한 공격성이 ‘우리’가 아닌 타자를 향한 배타성으로 전환되는 과정일 뿐이다. 자신의 영역 안으로 이물질을 들이는 데에 무던한 이는 이물질 자체에 무던한 것이 아니다. 그저 자아 영역을 확장하고 그것과 자기 자신 사이에 이물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대상이 비교적 많을 뿐이다. 이들도 ‘우리’ 바깥의 존재에게는 ‘너는 우리의 일부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데에 거리낌 없을 뿐 아니라 당당하기까지 하다. 어울려 산다는 말 앞에는 어디까지나, 언제까지나, 항상 ‘자기끼리만’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 너무 당연해서 구태여 입 밖으로 꺼낼 필요조차 못 느끼기 때문이다.”
―영이, 「내 영역」,
《한편》 13호 ‘집’ 중에서
  『글 쓰는 여자들의 특별한 친구』 X ‘우정’ 북토크
신청은 여기에서
- 담엔 한편 ‘집’에 대한 글이 더 실리길 바랍니다.
- 저는 소위 말하는 MZ세대이고, 잡지란 것을 처음 마주하게 되었는데요. 처음 구독하는 잡지인데 잡지를 기획하고 담당하는 편집자님의 생각을 엿볼 수 있어서 정말 좋네요! 잡지는 늘 딱딱하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졌는데, 이번 편지를 받고 올해 그리고 제 인생의 첫 잡지 구독을 《한편》으로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 호가 정말 기대돼서 참을 수가 없네요!
삼척항에서 만난 집 지킴이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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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용기러브
    2024.1.18 11:41 오전

    [나의 독산동]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글이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