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 이야기의 이야기의 이야기

 

 

여러 번 도착하는 이야기 『그림 동화』
 에밀리 디킨슨의 서간집 『결핍으로 달콤하게』를 소개한 지난 주 레터에 이어, 이번 주에도 다정한 편지로 시작하는 책 한 권을 소개해 드려요. ‘이야기의 이야기의 이야기’로 불리는 그림 형제의 『그림 동화』예요. 이야기는 빌헬름 그림이 독일의 소설가이자 삽화가인 베티나 폰 아르님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하고 있어요.
베티나 폰 아르님*에게
빌헬름 그림
사랑하는 베티나, 이 책이 또다시 댁으로 갑니다, 날아갔던 비둘기가 고향을 다시 찾다 거기서 평화롭게 햇볕을 쬐듯이. 이십오 년 전 아르님**이 먼저 그대를 위해 초록 장정에 금색 글씨를 넣어 크리스마스 선물들 사이에 이 책을 놓아두었지요. 아르님이 그걸 그토록 귀히 여긴 것이 저희는 기뻤습니다. 그가 저희 형제에게 그보다 더 아름다운 감사의 말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
‘자제분들은 다 커서 이제 동화를 필요로 하지 않겠지요. 스스로 다시 읽을 계기가 생기긴 어렵겠지요. 그렇지만 그대 마음의 결코 메마르지 않는 젊음이 저희가 보내는 변함없는 우정과 사랑의 선물을 기꺼이 받아 주실 겁니다.’
이런 말을 곁들여 제가 삼 년 전 괴팅겐에서 이 책을 보내 드렸는데 오늘 제 고향에서 처음인 듯 이 책을 다시 보냅니다. 괴팅겐, 제 서재 밖 겨우 몇 지붕 건너서 뻗어 있는 보리수나무가 보입니다. 하이네가 집 뒷마당에 심은 것이 대학교의 명성과 더불어 자랐습니다. 그 잎들은 제가 1838년 10월 3일 집을 떠날 때 노랗게 물들어 떨어지려 했습니다.
언제 봄 치장하는 그 보리수를 다시 보겠나 했지요. 그러고는 몇 주일 더 그곳에 머물러야 해서 친구 집에서 지냈습니다. 제가 좋아하게 된 사람들, 변함없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요. 떠날 때 제 마차는 한 행렬로 인해 멈추었습니다. 관을 뒤따르는 대학교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두워서야 이곳에 도착해 팔 년 전 혹한 속에서 떠났던 바로 그 집으로 들어섰습니다. 사랑하는 베티나, 당신이 제 식구들 곁에 앉아 아픈 제 아내를 간호하고 있는 것을 보고 제가 얼마나 놀랐던지. 저희의 조용한 생활이 깨어진 그 숙명적인 시기부터 당신은 변함없는 따뜻함으로 우리 운명에 관심을 가지셨고, 그 관심은 지금 제 방 안으로 비쳐 드는 푸른 하늘의 온기처럼 자선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제 방에서는 아침이면 해가 다시 뜨고 산을 넘어 갈 길 가는 것이 다 보입니다. 그 아래로 강물이 반짝이며 흘러가고요. 오렌지와 보리수 향기가 공원에서 밀려 올라오고, 저는 사랑과 미움 가운데에서 스스로가 젊은이처럼 생생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이 동화들에 다시 열중하기 위해 이보다 나은 시간을 소망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1813년 저희 형제자매들이 러시아군의 숙영으로 비좁게 몰려 살고 군인들이 옆방에서 시끄럽게 굴던 때에도 저는 둘째 권을 쓰고 있었습니다. 당시 해방의 감정을 준 건 봄의 입김이었습니다. 그것이 가슴을 넓혀 주고 모든 근심을 지워 주었지요.
이번에는, 사랑하는 베티나, 여느 때는 먼 곳에서 부치던 책을 직접 그대 손에 놓아 드릴 수 있군요. 사람들이 저희를 위해 성벽 바깥에 집 한 채를 찾아 주었습니다. 숲가에 새 도시가 생겨나고, 나무들의 보호를 받고, 초록 풀밭과 장미 언덕과 휘늘어져 얽힌 꽃들로 에워싸인 곳입니다. 요란한 소음은 아직 거기까지 닿진 않고요. 지난해 뜨거운 여름에 아침 일찍 참나무 그늘 속을 이리저리 거닐 때, 또 식혀 주는 바람이 중병의 압박에서 힘 있게 저를 풀어 줄 때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그대가 얼마나 선하게 그 가운데서도 저희를 돌보았는지. 제가 그대에게 드리는 것은 여기 티어가르텐 공원에서 가꾸는 화려한 온실 식물 중 하나가 아닙니다. 그리스 신상이 미소 지으며 내려다보고 서 있는 깊은 물속에서 나온 황금 물고기도 아닙니다. 그러나 늘 다시 신선하게 땅에서 솟아 나오는 이 티 없는 꽃들을 제가 어찌 그대에게 또다시 드리지 못하겠습니까? 저는 보았습니다. 그대가 소박한 한 송이 꽃 앞에서 가만히 멈추어 첫 젊음의 흥겨움으로 그 꽃을 들여다보던 모습을.
1843년 봄, 베를린
야코프 그림, 빌헬름 그림, 전영애 옮김,
*베티나 폰 아르님(Bettina von Arnim, 1785~1859)은 독일의 소설가이자 삽화가다. 소외된 이들을 대변하는 작품을 썼다.
**아힘 폰 아르님(Ludwig Achim von Arnim, 1781~1831)은 독일 낭만주의 문학에 공헌한 시인이자 소설가다. 아르님이 그림 형제에게 민담 수집을 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편지의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이 이야기들은 이십오 년 전, 삼 년 전, 그리고 1848년 봄에 다시 한번 편지의 수신인에게 가닿았던가 봐요. ‘아이들과 가정의 동화’라는 이름의 이야기들을 읽기에는 이제 자녀들도 너무 커 버렸지만, “그대 마음의 결코 메마르지 않은 젊음이 변함없는 우정과 사랑의 선물을 기꺼이 받아” 줄 거라고 말하고 있네요. 어떤 이야기들은 도착할 때마다 반갑고 또 낯설기도 하지요.
노랗고 반짝거리는 표지를 만져 보다가 책을 펼쳤을 때 이런 이야기를 만났어요. 돌림노래를 함께 부르는 느낌으로 즐겁게 따라 읽다가, 끔찍하게 쓸고 달리는 모양은 어떤 걸까 떠올려 보다가, 결말에 이르러서는 이야기가 이야기를, 술이 술을 부르는 동료들과의 길고 긴 술자리가 떠오르고야 말았어요.
30
작은 이와 작은 벼룩
작은 이와 작은 벼룩이 한집에 함께 살며 계란 껍질에 맥주를 만들었다. 그러다 이가 그만 술통에 빠져 타 버렸다. 그걸 보고 벼룩이 크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때 작은 문이 말했다. “왜 소릴 지르니, 벼룩아?” “이가 타 버렸어.”
그러자 작은 문이 덜그덕거리기 시작했다. 구석에 있던 작은 빗자루가 말했다. “왜 덜그덕거리니, 작은 문아?” “나더러 덜그덕거리지 말라는 거야?
작은 이는 타 죽고
작은 벼룩은 우는데.”
그래서 작은 빗자루는 끔찍하게 비질을 시작했다. 그러자 작은 손수레가 지나가다가 말했다. “왜 쓸고 있니, 빗자루야?” “나더러 쓸지 말라는 거야?
작은 이는 타 죽고
작은 벼룩은 울고
작은 문은 덜그덕거리는데.”
그래서 작은 손수레는 “그럼 나는 달릴 거야.” 하며 끔찍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손수레 곁을 지나던 작은 거름 더미가 말했다. “왜 달리고 있니, 작은 손수레야?” “나더러 달리지 말라는 거야?

작은 이는 타 죽고

작은 벼룩은 울고

작은 문은 덜그덕거리고

작은 빗자루는 쓰는데.”

그래서 거름 더미는 “그럼 나는 끔찍하게 타겠어.” 하며 환한 불로 활활 타기 시작했다. 거기 거름 더미 곁에 서 있었던 작은 나무가 말했다. “왜 타니, 작은 거름 더미야?” “나더러 타지 말라는 거야?
작은 이는 타 죽고
작은 벼룩은 울고
작은 문은 덜그덕거리고
작은 빗자루는 쓸고
작은 손수레는 달리는데.”
그래서 작은 나무는 “그럼 나는 몸을 털어야겠어.” 하며 몸을 흔들기 시작하니 잎이 모조리 떨어져 버렸다. 물동이를 들고 다가오던 소녀가 그걸 보고 말했다. “왜 몸을 터니, 작은 나무야?” “나더러 몸을 털지 말라는 거야?
작은 이는 타 죽고
작은 벼룩은 울고
작은 문은 덜그덕거리고
작은 빗자루는 쓸고
작은 손수레는 달리고
작은 거름 더미는 불타는데.”
그래서 소녀는 “그럼 나는 내 물동이를 깨 버려야겠어.” 하며 물동이를 깨뜨렸다. 그러자 물이 솟는 작은 샘이 말했다. “왜 네 물동이를 깨뜨리니, 소녀야?” “나더러
내 물동이를 깨뜨리지 말라는 거야?
작은 이는 타 죽고
작은 벼룩은 울고
작은 문은 덜그덕거리고
작은 빗자루는 쓸고
작은 손수레는 달리고
작은 거름 더미는 불타고
작은 나무는 몸을 터는데.”
“에이.” 하고 작은 샘이 말했다. “그럼 나는 흐르기 시작해야겠어.” 하고는 맹렬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물에 모두 빠져 죽었다. 소녀, 작은 나무, 작은 거름 더미, 작은 손수레, 작은 빗자루, 작은 문, 작은 벼룩, 작은 이 모두 함께.
야코프 그림, 빌헬름 그림, 전영애 옮김,
아니 편집자님 이런 동화를 띄우다니…… 이건 마치 이야기에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싸우기 시작하는 술자리…… 대낮이더라도 앞으로 책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야기하다가 침묵으로 빠져드는 우리네 점심 시간…… 죽음 충동 그 자체네요. 
“왜 덜그덕거리니, 작은 문아?” “나더러 덜그덕거리지 말라는 거야?” 이 반복되는 주고받기 너무 좋아요. 으레 하는 말에 공격적으로 대꾸하기, 원래 질문이 공격적인 만큼…… 인용하신 빌헬름 그림의 다감한 편지와 본문 동화의 온도 차이도 웃긴데요. 빌헬름 그림이 바라보는 보리수나무를 심은 장본인. 하이네의 글이 생각나요! 죽음 충동을 발견한 프로이트가 『문화 속의 불쾌』에서 인용하는 하이네는 이런 작가죠.
“위대한 작가라면 엄격하게 금기시한 심리적 진실들을 적어도 문학에서 익살스럽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하인리히 하이네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아주 안온한 심정이다. 내 소망들이란 집이라면 이엉이 덮인 초라한 오두막이라도 좋고, 좋은 침대와 맛있는 음식이 있고, 신선한 우유와 버터를 먹을 수 있고, 창가에는 꽃이 피고, 현관 앞에는 아름다운 나무가 몇 그루 서 있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이 나를 아주 만족스럽게 살게 하고자 한다면, 예닐곱 명쯤 되는 내 적들이 그 나무에 매달리게 하여 그것을 보는 즐거움을 나에게 주면 좋겠다. 그들이 죽기 전에 나는 자비로운 마음을 작동해, 그들이 내 일생 동안 내게 저지른 잘못을 모두 용서할 것이다. 사람은 자기 원수를 용서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교수형을 당하기 전에 그 일을 해서는 안 된다.’(하이네, 『생각과 경구』)”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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