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 편지는 지상의 기쁨

 

 

편지에는 거짓말을 쓰기 어려워
\얼마 전 친구의 생일이라 오랜만에 편지를 썼어요. 그러다 문득 생각했죠. ‘편지에는 진짜가 아닌 말을 쓰기 어렵구나……’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친구들에게 지금보다 훨씬 자주 편지를 썼는데, 요즘은 생일처럼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야 편지를 써야겠단 생각이 잘 들지 않네요. 마음의 여유 문제일까요? 
여러분은 편지 쓰길 좋아하세요? “마음 울적한 날엔 거리를 걸어보고…… 밤새도록 그리움에 편질 쓰고파”라는 노래도 있는데요. 여기 수많은 시와 편지를 썼던 시인이 있습니다. 1886년 5월, 미국 매사추세츠 애머스트에서 에밀리 디킨슨이 세상을 떠난 후 시인의 여동생 비니는 그의 방 벚나무 수납장 속에서 한 무더기의 편지와 어마어마한 양의 공책, 자투리 메모 등을 발견합니다. “그 속에는 1000편에 가까운 시가 아직 터지지 않은 화약처럼 고이 잠들어” 있었고, 고인의 유언은 모두 태워달라는 것이었어요.
받은 편지는 모두 태웠지만, 시는 그럴 수 없었죠. 여동생의 결단으로 사후 출간된 최초의 시집 두 권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시집의 편집자는 곧 그의 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열쇠가 그가 남긴 편지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비니의 도움을 받아 그는 에밀리와 생전 서신을 주고받은 이들을 수소문해 에밀리가 보냈던 편지를 모아 서간집을 냈습니다.
평생 독신으로 외부와의 접촉을 꺼리고 애머스트의 집에서 은둔하다시피 살았던 시인의 생에서 편지 쓰기는 그가 외부 세계와 접촉했던 필수적 수단이자 빼놓을 수 없는 하루 일과였습니다. 누군가와 만나지 않고도 우정을 주고받고 서로 변화하는 것은 가능할까요? 에밀리 디킨슨은 이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아래 편지에서는 위대한 시인이라도 처음 남에게 자기 작품을 보여 주고 피드백을 받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네요!
제게는 재판정이 없어요
(1862년 6월 7일)
벗에게,
선생님의 편지가 저를 취하게 하지는 않았어요. 저는 예전에 럼을 맛본 적이 있거든요 — 그래도 저는 선생님의 의견만큼 심오한 기쁨을 느껴 본 적이 거의 없답니다. 제가 감사하다고 말하려 하면, 제 눈물이 제 혀를 방해할 것 같아요 —
제 가정교사는 돌아가시면서 제가 시인이 될 때까지 살아있고 싶다고 말씀하셨답니다. 하지만 그때 — 죽음은 제가 통달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혼돈이었어요 —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 과수원에 갑작스레 쏟아지는 빛이나 바람의 새로운 질감이 제 관심을 흩뜨려 놓기 시작했어요 — 여기서, 저는 경련이 일어나는 걸 느꼈어요 — 시가 그것을 완화해 주죠 —
선생님의 두 번째 편지는 저를 놀라게 했어요. 그리고 잠깐 동안은, 짜릿했어요 —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죠. 선생님의 첫 번째 편지가 — 수치심을 준 건 아니었어요, 진실은 —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 선생님의 공정함에 감사를 드렸어요 — 하지만 제 방랑을 진정시켜 줄 종소리를 울려 주지는 못했어요 — 아마도 연고가 더 나았을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저를 피 흘리게 만드셨으니까요, 처음에는.
저에게 “출판”을 미룰 것을 제안하셨을 때 저는 미소 지었어요 — 그건 원래 제 머릿속에서 낯선 단어였으니까요, 지느러미에게 창공이라는 단어가 그러하듯 —
만약 명성이 제 것이 된다면, 저는 그것에서 도망치지 못하겠죠 — 만약 명성이 제 것이 되지 못한다면, 저는 그것을 좇으며 긴 세월을 견뎌 내야 하겠죠 — 그리고 그동안 — 제 강아지는 저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겠죠 — 맨발의 계급이 더 나아요 —
제 걸음걸이가 “발작적”이라고 생각하시죠 — 저는 위험에 처해 있어요 — 선생님 —
제가 “통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죠 — 제게는 재판정이 없어요.
선생님께서 제게 필요하다고 하신 그 “친구”가 되어 주실 시간이 선생님께는 있나요? 저는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아요 — 선생님의 책상을 가득 채우는 일은 없을 거예요 — 통로를 망가뜨리는 생쥐들처럼 시끄럽게 하지도 않을 거예요 —
제 작업물을 선생님께 가져다드린다면 — 선생님을 성가시게 할 정도로 자주는 아닐 거예요 — 그리고 제가 분명하게 표현했는지 여쭤볼 수 있다면 — 그것이 통제해 주겠지요, 저를 —
선원은 북쪽을 볼 수 없어요 — 하지만 그는 나침반이 볼 수 있다는 걸 알죠 —
“어둠 속에서 당신이 내게 뻗은 손”에, 저는 제 손을 밀어넣고, 돌아섭니다 — 지금 제게는 민족이 없어요 —
마치 내가 흔한 도움을 요구했다는 듯,
내 머뭇거리는 손에
어느 낯선 이가 왕국을 밀어 넣었네,
그리고 나는, 어리둥절해서, 서 있었지 —
마치 내가 동양(東洋)을 요구했다는 듯
아침이 그것을 나에게 가져다주었네 —
그것은 그 보라색의 암맥을 들어 올려,
새벽으로 나를 산산이 부숴 버리겠지!
그럼에도, 히긴슨 씨, 제 지도자가 되어 주시겠어요?
당신의 벗
E. 디킨슨 —

  

— 에밀리 디킨슨, 박서영 옮김, 「제게는 재판정이 없어요」,
위의 편지는 에밀리 디킨슨이 당시 중견 문인이었던 T. W. 히긴슨에게 보낸 것입니다. 문인이자 진보적 사상가로 여러 활동을 하던 그는 지역 신문에 젊은 작가들을 위한 충고와 격려를 담은 「젊은 기고자에게 쓰는 편지(Letter to a Young Contributor)」를 게재합니다. 평소 자신의 시적 재능에 대해 전문 지식을 가진 문인의 객관적 평가와 충고를 받고 싶어 했던 서른두 살의 디킨슨은 이 글에 큰 자극을 받아 그에게 네 편의 시를 담은 편지를 보내는데요, 이 첫걸음은 영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들 중 하나로 손꼽힌다고 하네요.
히긴슨은 디킨슨과 생전에 딱 두 번 만났지만, 25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해요. 히긴슨은 디킨슨의 시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전달하며 계속 시를 쓰도록 격려했고, 이는 디킨슨이 시인으로서의 소명을 자각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시인의 사후 출간 시집을 공동 편집하기도 하지요. 이건…… 편집자와 저자의 우정이기도 하네요.
편지는 불멸입니다
(1896년 6월)
벗에게
편지는 제게 언제나 불멸처럼 느껴져요. 그것은 육체를 가진 친구 없이 마음만 홀로 있으니까요. 우리의 대화 속에서 느껴지는 태도와 억양 덕분에, 혼자 걸으며 드는 생각에도 유령과 같은 힘이 깃드는 것 같아요 — 선생님의 큰 친절에 감사를 표하고 싶지만 제가 감당할 수 없는 단어들을 도용하려는 노력은 결코 하지 않을게요.
선생님이 애머스트에 오신다면, 저는 성공한 사람이 될 거예요. 비록 감사하는 마음은 가진 게 없는 이의 보잘것없는 재산에 불과하지만. 선생님이 진실을 말해 주실 거라 믿어요. 고귀한 자들이 그렇게 하듯이. 하지만 선생님의 편지는 언제나 저를 놀라게 하죠. 제 인생은 그동안 너무나 단순했고 무언가를 곤란하게 하는 일에 인색했어요.
“천사들에게 보인” 것은 제 책임이 아니에요.
그토록 아름다운 장소에서 허구를 지어내지 않기는 어렵지만, 그러한 시험으로써 혹독하게 바로잡는 건 누구에게나 허용되어 있지요.
제가 어린 소녀였을 때, 그 뛰어난 구절(「마태복음」 6장 13절. 주기도문 가운데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습니다.”라는 구절이다.)을 듣고는 ‘권세’를 선호했던 것이 기억나요. 그때는 ‘왕국’이나 ‘영광’이 포함된 말인지도 몰랐지요.
제가 홀로 기거하는 것을 눈치채셨겠지요 — 이민자에게는, 자신의 국가가 아닌 다른 국가는 의미가 없어요. 저를 만나는 것에 대해서 친절하게 말씀해 주셨지요. 편하실 때 먼 애머스트까지 와 주신다면 저는 너무나 기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제 아버지의 영토 너머 그 어떤 집이나 마을로는 가지 않아요.
우리의 위대한 행동들에 대해 우리는 무지하지요 —
선생님께서 제 목숨을 구해 주셨다는 사실을 선생님은 모르고 계세요. 그 이후로 직접 만나 뵙고 감사를 표시하는 것이 얼마 되지 않는 제 간청 중 하나였어요. 제 꽃에 “그렇게 해 줄래요.”라고 묻는 아이, 그가 말해요 — “그렇게 해 줄래요.” — 제가 원하는 걸 이렇게 요청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을 모릅니다.
제가 하는 말들을 양해해 주시겠지요? 저를 가르쳐 준 다른 이가 없었으니.
디킨슨.
— 에밀리 디킨슨, 박서영 옮김, 「편지는 불멸입니다」,
신시아 닉슨이 에밀리 디킨슨으로 분한 영화 「조용한 열정」
아아 — 디킨슨의 부드럽고 나직한 편지에 마음이 녹아내려요 — 히긴슨이 ‘당신에게는 글을 읽어 줄 친구가 필요합니다’라고 했겠죠. 그에 회신하면서 “선생님께서 제게 필요하다고 하신 그 “친구”가 되어 주실 시간이 선생님께는 있나요?”라고 하다니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어요?  “제 걸음걸이가 “발작적”이라고 생각하시죠 — 저는 위험에 처해 있어요 — 선생님 —”이라고 이처럼 간절하게 부르는데 말이에요?
노란고양이 편집자님이 ‘편지에는 진짜가 아닌 말을 쓰기 어렵구나’라고 했는데, 가끔 지난 편지들을 볼 때 비슷한 생각을 해요. 친구들이 보내온 편지들은 어떻게 이렇게 진짜 시인 같을까? 내가 보낸 편지도 뭔가 열에 들떠 있었겠지만, 거기에 친구들은 평소에 보여 준 적 없는 서정적인 이야기를 쓰고 있단 말이죠. 초등학교 때 그렇게 친하지 않던 한 친구가 그림엽서를 그려 줬는데, 얼마나 아름다운지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우리의 위대한 행동들에 대해 우리는 무지하지요 —”
참, 정기구독자 여러분에게 보내 드린 이번 ‘우정’ 부록인 편지지를 다들 사용하셨어요?(이 링크를 클릭해서 지금 정기구독 하시면 바로 받으실 수 있어요!) 이제 11월이 왔는데, 멀리 있는 친구에게 편지 한 통씩 써 보면 어떤가요. 그리고 《한편》에도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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