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유머로 가득한 이별

 

 

귄터 그라스는 대체
놀러다니기 좋은 계절입니다.(지금은 사무실) 이응준 산문집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를 띄워 보낸 레터에 반응이 도착했어요. 《한편》 사람들의 마음을 너무너무.. 좋아지게 해준 글 전문은 이렇습니다. 
방금 오늘자 레터를 읽고 너무너무.. 마음이 좋아져서 글을 적습니다. 퇴사하고 이직 준비 중인데 준비과정 중에 문득 제 빈곤함을 거울처럼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내 쓸모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게 되기도 하고요.. 그런 순간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마다 지치기도 하고 울적해지기도 하고 그랬는데, 레터 초반부에 적어주신 ‘사라지지 않을 권리’ 속 내용이 너무 좋은 거 있죠? 바로 캡쳐해서 갤러리에 저장해뒀어요. 두고두고 꺼내보려고요. 책도 구매해서 밤에 조명 켜놓고 진득하게 읽어보겠습니다! 아직은 사라지지 않을 권리와 이렇게 누군가 저에게 전해주는 책 속 말들이 늘 저를 살아가게 해요. 고맙습니다.”
이직을 준비한다는 사연처럼 가을은 이별도 많은 계절인데요. 《한편》 ‘우정’ 호를 마감하고 찾은 환기미술관에서 죽은 친구를 그리는 화가의 일기들을 읽었습니다. 화가 김환기가 만년에 한국을 떠나 뉴욕에 머물며 쓴 기록이에요. 
“화제(畫題)란 보는 사람이 붙이는 것. 아무 생각 없이 그린다. 생각한다면 친구를, 그것도 죽어 버린 친구를. 또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 알 수 없는 친구들 생각뿐이다. 서러운 생각으로 그리지만 결과는 아름다운 명랑한 그림이 되기를 바란다.”(1972년 9월 14일)
먼 미국에서 친구들 생각뿐인 화가는 “아름다운 명랑한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데, 이때 명랑이란 어떤 느낌이려나요? ‘유머로 가득한 이별’이라는 부제를 단 귄터 그라스의 유고집을 같이 읽어 봐요.
혼잣말
잘게 씹어 으깨어진 단어들만 가지고
나는 그에게, 그는 나에게 귀를 기울인다.
바로 나 자신인 그는 뜯어말리고,
제안하고, 속이고,
울고 웃는다.
그는 기분이 나빠도 좋은 척,
나를 전염시켜 우리는 함께
명랑함 속으로 빠져든다.
그 명랑함을 위해선 다른 무엇도 아닌
오로지 한 줌의 코담배만이 필요하다.
그는 침묵하고 나는 그에게 말한다.
우리에겐 둘 다 죽은 친구들이 있고,
생생하게 살아 있는 많은 적들이 있다.
나는 내 적과 친구들을 헤아리고,
그는 그의 적과 친구들을 헤아린다.
이제 우리는 여성들의 목록을 작성한다.
단 한 번, 여러 차례, 여러 달
침대에서, 카펫 위에서, 선 채로
사랑을 나누고 싶었던 여성들.
문자 그대로 마음은 그렇게 먹었지만,
실제로는 침묵하고 말았지.
지금 우리는 서로 다투고 욕하는 중이다.
그가 더 이상 확신하지 못하고, 그의 목록에
셋이다, 다섯이다 우기기 때문이다.
그러고 난 후에 종종 그렇듯
이제 우리는 슬프다.
이제 그는 내가 되려고 하고, 나는 그가 되려고 한다.
다시는 미워하지 않을 친구가 되려고 한다.
우리는 거듭해서 맹세한다.
마지막까지 서로 이야기 나누고,
가끔은 농담도 하기로.
우린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이 같다.
바로 그것만이,
가구도 없는 무(無) 속에서 일어나는 일만이
영원히 푸르른 질문으로 남는 법이라고.
— 귄터 그라스, 장희창 옮김,
운문처럼 쓰인 글에 귄터 그라스가 연필로 그린 그림으로 이루어진 이 유고집을 슬슬 넘겨 보면 이런 구절도 보이는데요. “나는 친구들과 적들의 수를 헤아리는 페이스북도 하지 않아.”(「무기력 」) 과연 SNS를 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나 봐요. 무려 “사랑을 나누고 싶었던 여성들”(‘나눈’ 아님)의 목록까지 작성한 뒤에 화자는 또 다른 나와 화해하기에 이르는데…….
이렇게 옛친구들을 생각하고, 자기 자신과 악수하는 사람을 어디에서 많이 봤다 했더니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쉽게 씌어진 시」였네요. 노년의 작가와 청년의 시인은 유머의 유무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중년의 저로서는 노년의 유머란 죽음 앞에서, 우울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필요한 것 아닌가 짐작할 뿐인데…… 옮긴이의 말을 참고해 봅시다.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한 역사의 반복 앞에서 지치지 않기는 힘들다. 귄터 그라스는 역사라는 것은 막힌 변기와도 같아서 씻어 내리려고 물을 붓고 또 부어도 똥물만 차오른다며 통탄한다. 그도 때때로 우울증에 시달린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그 어떤 마음의 상태에 짓눌린다. 교회도 종교도 더 이상 영혼의 안식처는 아니다. 어둠 속으로 치솟은 교회 건물은 아무리 봐도 의미도 목적도 없다. 『양철북』에는 꼬마 오스카가 아기 예수에게 양철북을 두드릴 북채를 쥐여주어도 두드리지 않자, 아기 예수의 뺨을 때리며 모독하는 장면이 나온다. 행동하지 않는 예수는 당연히 예수가 아니다.
「진보의 정체성」이라는 연설문에서 그라스는 그 우울증을 이렇게 진단한다. “우울증이라 불리는 그것은 마음을 어둡게 하지만, 또한 통찰력을 주는 것이어서 심연을 밝게 비추어 주기도 한다. 우울증 없이는 예술도 없을 것이다. 우울은 늪지대와 같은 것으로 나는 그 위에서 발 디딜 곳을 찾고 있다. 우울은 유머의 밑그림 같은 것이다…….” 우울증 없이는 예술도 없을 것이다! 촌철살인의 이 한 마디는 그라스의 삶과 예술관을 요약하는 발언이다. 그에게 예술 행위와 유머는 거의 동의어다. 유머의 달인인 마크 트웨인은 유머 자체의 핵심은 즐거움이 아니라 슬픔이다, 라고 설파한 적이 있다.
귄터 그라스가 저세상으로 간 다음 해인 2016년, 그의 아내 우테 그라스와 슈타이들 출판사의 사장을 비롯한 친지들이 모여 유고집 출간 기념회를 가졌는데, 그들이 내건 모토는 ‘유머로 가득한 이별’이었다. 유고집의 제목은 ‘유한함에 관하여’이지만, 그는 이웃과 독자들에게 싱글벙글 유머의 인간으로 더 진하게 남았던 것이다. 현실 모순에 저항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담대한 영혼. 그에게 저항과 유머, 도덕적 책임감과 창작 활동은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는 하나의 연속 동작이었다.
— 장희창, 「옮긴이의 말」,
귄터 그라스, 장희창 옮김,
『유한함에 관하여』에 실린 연필 그림이 편안한데, 오래 들여다본 것들을 그린 듯 다정하고 아득한 느낌도 드네요. 진한 연필선이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얼마전 책장에 거꾸로 서 있던 한 책을 바로 꽂으면서 한번 들춰 보았는데요. 죽음에 대한 그 책에는, 자신에 대한 고통스러운 불만족이 계속되는 이유는 그것이 현실의 한계에 대한 감각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라는 대목이 있었어요. 저의 경험을 비추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끊임없는 자기비판은 역시 너무 괴롭단 생각이 들어요. 한편 자아는 허상이라는, 동료가 소개해 준 또 다른 책의 주장도 떠오르네요…….
그 이유가 허상이든 아니든, 괴로움을 견디는 또 다른 유일한 방법이 명랑함과 유머가 아닐까 싶은데요. 아무래도 저에겐 유머를 구사하는 내공이 부족한 듯싶은데…… 아무튼 해골과 틀니를 나란히 놓는 귄터 그라스의 아래 시에서는 웃음이 났어요.
그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도록
부드러운 연필심이 내게 충고한다.
흰 엘크 두개골 ― 먼지를 뒤집어쓴 생일 선물이다. ― 옆에 
틀니를 놓아두라고.
그래야 네 행으로 된 시 한 편이 생각난다면서. 
— 귄터 그라스, 장희창 옮김,
《한편》 공개 세미나(링크)에서 동물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동물과 인간동물의 우정 나누는 방법을 함께 이야기해요!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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