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 행복할 때 진짜 사랑과 우정을 만나기 어렵다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
 “하지만 아직은 사라지지 않고자 하는 것들이 있다. 어떤 이의 인생도 그러하고 우리의 인생 또한 그러할지 모른다. 우리가 그러한 뜻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에게는 그러한 권리가 있다고 믿고 싶다. 그래야 사랑도 우정도 문학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사라지지 않을 권리가 오늘도 나로 하여금 뭔가를 쓰게 하고 이 책을 다시금 여기 있게 하였다. 내용과는 상관없이, 이 책의 작은 히스토리가, 시련과 한계와 절망 속에서도 새로운 싸움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용기가 된다면 좋겠다.”(이응준, 「사라지지 않을 권리」)
오늘은 위에 인용한 대목에서 힘을 얻어, 작가 이응준의 산문집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를 소개해요. 자주 “묘한 슬픔을 안겨” 주고 종종 푸른 유머가 깃든, 무엇보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쓰인 글들 가운데, 글을 쓰려는 열망이나 기록하는 일의 의미에 대해 곰곰 곱씹게 하는 한 편을 같이 읽고 싶어요. 글쓰기와 기록에 대한 욕망의 바탕에 있는 우정과 사랑에 관해서도 생각해 보면서요.
“우리는 행복할 때 진짜 사랑과 우정을 만나기 어렵다. 삶의 아이러니고, 이것이 바로 우리 각자가 불행을 경험하고 이겨내 볼 만한 이유다.” “사실상 인생은 시나 소설이 아니라고. 인생은 순간순간 한 편의 수필(隨筆)이다.” 등등 책을 읽다 보면 기억에 남는, 단단한 성찰이 담긴 문장들이 아주 많은데요. 풍요롭고도 서늘한 10월에 읽기에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봄에는 얼어붙은 땅이 녹아 생긴 진창이 몽고말들의 발목을 부러뜨리는 지뢰와 다를 바 없을 터였다. 물론 움직이는 생명체들을 죽음의 고체로 둔갑시켜 버리는 혹한이 문제였지만 평소 순록이 사는 대초원의 영하 50도에서도 적응해 온 몽골기마병들은 몽고말들과 한 몸이 되어 자고 깨며 전진했다. 그들은 자연과 싸우지 않고 자연 속으로 스며들어가는 법을 알고 있는 전사들이었다. 그들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자연신(自然神)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적에게 그들은 악마였다.
몽골군대는 항복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총공세로 함락해 전 주민을 몰살하고 온 도시를 파괴했다. 특히 도서관은 반드시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그들이 야만의 궁극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은 기록을 말살당한 인간은 인간 이하가 되고 만다는 진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적을 짐승으로 전락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폭력의 참상은 우리들의 실존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나는 몸과 마음이 약해지면 몽골기마병을 상상하고 내 마음에 그것을 둔다. 이는 애처롭긴 해도 내 사악한 명상으로서 투명한 평화를 불러일으킨다. 이것을 기도라고 불러도 좋을까. 과거의 어느 날부터 나의 모든 기도는 묵언기도이다. 이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는 기도를 잃지는 않았다.
아무도 책이란 것을 읽지 않고 아무나 작가가 될 수 있는 것만 같은 그런 세상이지만, 내가 쓴 내 책이라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내게 있어 누구에게도 검열받거나 지배당하지 않는 소중하고도 강인한 세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만약, 내가 처음 작가가 되었던 스무 살 그 무렵에 철없이 밝게만 생각했던 것처럼 아직도 이 시대가 문학과 문학인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 주는 세상이었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지독하게 무언가를 기록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런 세상이었다면 나는 이러한 사상과 표현의 정리 과정 없이 그냥 막 바로 시나 소설이나 희곡이나 시나리오나 에세이나 칼럼 등을 써 갈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나는 무슨 열병에 걸려 미쳐 버리기라도 한 사람마냥 펜을 손에서 놓지 못한 채 이 외로운 글들을 고집스럽게 적어 내려갔다. 이 책은 희한한 책이고 ‘성찰하는 괴물의 책’이다. 그리고 이 책에도 장르가 있다면 필경 그것은 다름 아닌 ‘작가’일 것이다. 나는 그저 한낱 이야기꾼이 되고 싶어서 소설가가 된 게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이 세계와 인간을 진단하고 예언하는 작가이고 싶으며, 그 한참 이전에 나는 세상의 사랑과 기쁨도 인간의 아픔과 슬픔처럼 노래하는 시인이다. 나는 대여섯 가지의 예술장르들을 섭렵하면서 그중 글쓰기로서 존재하는 거의 모든 것들은 다 하고 있다. 이것은 표면적으로는 내가 한국문단이라는 관료주의적 감옥에서 나 스스로를 탈출시켜 살아오면서 스스로를 지키고 확장하고 발전시켜 나가다가 온갖 범주들을 수렴한 탓도 있으려니와, 나라는 인간의 성향과 원자로(原子爐) 자체가 원래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게 되는 사람들 가운데 반드시 작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글을 쓰려는 욕망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나는 어쩌면 이 책이 꽤 도움을 줄 수도 있으리라고 믿는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문학은 궁극적으로 문학을 실행하는 태도와 자세 말고는 감히 누가 누군가에게 지도할 수 있는 게 아니며, 무도(武道)와는 달리, 제자가 스승을 닮아 버리면 그 스승과 제자는 함께 망해 버리는 까닭이다. 문학은 처음부터 끝까지 독창성이다. 앞으로 내가 죽는 그날까지 권수를 늘려 가며 계속해서 써내려 갈 이 글들의 소망은 바로 그러한 태도가 완강하고 그러한 자세가 바르다.
고로 이 책은 나의 문학공장이자 내 인간과 세계에 관한 고뇌와 모든 글들의 전생(前生)이고 그것 그대로 나의 전쟁이자 본론이며 수사학이다. 내게 있어 ‘기록하는 인간’이라는 것은 ‘살아 있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더라도 내게는 분명 그러하다. 나는 기록하는 인간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신앙한다. 요즘 나는 슬픈 꿈을 자주 꾼다. 나는 이 세상이 마치 몽골군대 같다. 푸른 늑대와 흰 사슴의 후예들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게 나의 모든 기록들을 불살라 버리려 든다. 그런데 또한 나는 어딘가를 침공하는 몽골전사처럼 몽고말들 틈에 웅크리고 혹한을 견디며 진격한다. 나는 나를 포위하고 있는 자연을 적으로 삼지 않고 자연, 즉 나의 고난 속으로 차라리 스며들면서 얼어붙은 거대한 강물 위를 대초원처럼 달려간다.
몽골군대의 파괴에 저항하는 기록자와 제 삶의 고난들에 대한 정복자로서의 이중적인 존재인 작가. 그 연옥 같은 정체성. 인생이 가도 가도 끝없는 문제해결의 과정이라더니, 어느덧 이제 나는 부모형제 일가친척 하나 없는 완전한 고아가 되었다. 이제 내 곁에는 정말 아무도 없다. 이것은 상징이라든가 비유가 아닌 순수해서 끔찍한 리얼리티다. 그러나,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정과 사랑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고, 나는 나의 희망을 나의 고통 위에 기록해 나갈 것이다. 이 책은 희한한 책이자 ‘성찰하는 괴물’의 책이며 ‘작가’라는 장르를 가진 책이기 때문이다.
— 이응준, 「전사(戰士)로서의 작가, 작가로서의 전사」,
책의 제목이나 표지의 느낌은 쓸쓸하고 서늘한데, 인용문은 한껏 고독한 가운데 푸른 불꽃이 튀고 있네요. 가을바람을 맞으며 이제사 처음으로 내 마음에서 길어 나온 글을 써 보려는 저는 저자의 ‘정면 승부’에 바로 압도당하는 기분이에요.
평소 친구와 입말의 형태로 수없이 많은 문장을 나누고, 일을 위한 문서이든 신변잡기든 적지 않은 이야기를 쓰고 있지만 “내 인간과 세계에 관한 고뇌”를 붙들며 남기는 기록을 쓸 때는 자세를 고쳐 앉게 됩니다. 나의 가장 고약한 부분과 지독하게 마주서야 하는 때이니까요…….
『호루라기』 출간 기념 북토크에서 이응준 작가와 나눈 질답을 여러분께도 공유하고 싶어요. 우정과 사랑을 고민하려면 상대가 필요한데, 인간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조언해 주실 수 있는지 여쭈었지요. 여러 말들이 흘러갔지만 제게 남은 한 문장은 뜻밖에 이것이었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늠름한 싸움이 필요하다!”
누군가와 마냥 어울려 놀고 싶은 눈부신 가을 한때에, 이 고독한 글을 읽으며 눈앞의 풍요를 뒤집어 다시 생각합니다. “이제 내 곁에는 정말 아무도 없”는 상태가 되어 우정과 사랑을 고민할 때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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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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