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 이웃에게 지불하는 것

 

 

『이달의 이웃비』
지난 주 레터「좋아하는 친구 곁을 떠나기」를 읽고 여러 분들이 글을 공유하고 싶은 누군가를 떠올리신 것 같아요. 이번 글 너무 좋다!! 사서 읽고 싶었다!!” 《한편》 12호 구매 링크는 여기예요.  “너무 좋아서 공유하고 싶은데 친구들 이메일 주소를 몰라 공유할 수가 없었어요ㅠㅠ” 지금까지 발행된 레터는 《한편》의 편지함에서 모두 읽을 수 있답니다. 레터를 소개하고 싶은 친구들에게는 구독 링크를 보내 주세요. 
오늘은 이달 출간된 박지영 소설가의 신작 소설집 『이달의 이웃비』를 함께 읽어 봐요. ‘우정’ 호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손해’예요. 손해 봐서는 안 된다, 손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정서가 팽배한 세상에서 정치평론가 김민하는 ‘이웃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사회학 연구자 추주희는 생존을 위한 자원이 부족한 청소년 팸 안에서는 손해보는 일, 즉 ‘호구’가 되고 ‘호구’ 잡는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고요. 
기꺼이 손해 보려는 마음, 친구니까 넘어가는 마음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돼요. 그런데 ‘이웃’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고민이 깊어집니다. 이웃이란 누구일까요? 소설 「이달의 이웃비」는 ‘이웃에게 지불하는 비용’이라는 의미의 ‘이웃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형은 겁도 없이 벌레를 잘 잡았다. 선애 씨는 늘 형이 벌레를 참 잘 잡는다고 칭찬했다. 형을 칭찬하기 위해 일부러 벌레가 나오는 집만 골라 이사를 다니나 싶을 정도였다. 덕분에 동석도 집에서는 제 손으로 벌레를 잡아 본 적 없었다. 벌레가 보이면 형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면 형은 두꺼운 책을 들고 나타나 용감한 영웅처럼 벌레를 눌러 압사시켰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천천히 책을 들추고 죽은 벌레를 휴지로 집어 버렸다. 그런데 왜 형은 벌레를 바로 잡지 않았지? 뒤늦게 동석은 그런 의문이 들었다. 물론 살아 움직이는 벌레보다 죽은 벌레를 집는 게 더 수월했을 테지만, 그렇다면 사실 형도 벌레를 잡는 게 무섭고 싫었다는 거 아닌가. 하긴 누가 벌레 잡는 걸 좋아서 하겠는가. 어쩔 수 없으니까, 해야 되니까 할 뿐. 그렇다면 형도 실은 벌레가 무서웠던 건 아닌가. 형이 벌레 잡는 용기를 애써 낸 건, 실은 너무너무 겁이 났기 때문이 아닐까. 어느 날 가족들조차 롤케이크에 미안하지만,으로 시작하는 배척의 말을 남기고 자기 곁을 떠날까 봐, 그런 식으로 자신의 쓸모를 증명했던 건 아닌가. 형 나름의 이웃비를 그런 식으로 지불하면서.
다세대주택에 살 때 동석의 가족은 이웃에게 롤케이크를 선물받곤 했다. 이웃이 건네는 롤케이크는 좋은 이웃에게 주는 선물이 아니라 나쁜 이웃에게 주는 작별의 선물이었다. 미안하지만 이사를 가 주면 좋겠다는 포스트잇과 함께였다. 그들은 매정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다만 형과 공간을 공유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을 뿐이었다. 무지에서 비롯된 형의 의도치 않은 격의 없음을 위협이나 폭력으로 느끼는 게 그들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이웃에게는 이웃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302호에 사는 초등학생 딸이 계단에서 마주친 덩치 큰 아이 같은 형의 지나치게 친근한 인사에 울음을 터뜨렸다는 걸, 형이 남들보다 조금 큰 소리로 웃고 큰 소리로 울고 큰 소리로 혼잣말을 하는 것이 얇은 벽을 투과해 이웃들의 휴식을 방해한다는 걸 동석도 알고 있었다. 그들이 몰래 두고 간 롤케이크는 달콤했다. 그것을 먹으며 선애 씨와 새로 이사갈 집을 찾아보는 게 그리 슬프거나 가슴 아프진 않았다. 이웃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동석도 그 이웃들과 같은 마음이었으니까. 가족이 아니었다면 형과 이웃이 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 박지영, 「이달의 이웃비」,
『이달의 이웃비』, 167~168쪽에서
이제 병식에게는 많은 우리와 많은 다정한 이웃이 생겼다. 시민들이란 병식에게 잃어버린 것을 함께 찾아 제자리로 돌려주는 사람들의 이름이었다. 다정한 이웃들. 그럴수록 동석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가 지나치게 사람들의 선의를 믿지 않기를 바랐다. 언제나 큰 위험은 믿는 자에게서 비롯되니까. 예를 들면 동석 같은.
얼마 전에 휴게소에서 화장실에 들렀던 병식이 차를 찾지 못해 두리번거리다가 엉뚱한 차로 다가가 문을 두드린 적이 있었다. 동석은 병식을 자기 차로 데려와 옆자리에 태우며 여러 번 당부했다.
“함부로 모르는 사람 차를 타면 안 돼요. 혹시 히치하이킹 같은 것도 절대 하면 안 되고요.”
“히치, 하이킹이요?”
병식은 히치하이킹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동석은 다만 그를 겁줄 목적으로 언젠가 사람들의 선의를 믿고 히치하이킹만으로 여행하는 실험을 하던 한 여성이 끔찍하게 살해당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니까, 아무 차나 타면 절대 안 돼요. 알았죠?”
“이 차는요?”
“나는 아무나가 아니잖아요.”
“그럼요?”
“나는,”
나는 아무나가 아니면 무엇일까. 동석은 병식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 박지영, 「이달의 이웃비」,
『이달의 이웃비』, 185~186쪽에서
이번 《한편》 12호 ‘우정’을 만들면서,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이들과 나누는(혹은 내가 그들에게 품고 있는) 어떤 감정과 관계의 의미도 우정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계속 떠올랐어요. 우정이라는 단어의 스펙트럼은 어쩌면 사랑보다도 강렬한 집착에서부터 그다지 호감이랄 것도 없지만 그냥저냥 같은 공간에서 서로 존재를 참아 주는 정도까지 모두 포함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꼭 도움이 되어야만 친구가 될 수 있고 이웃이 될 수 있을까요?
동석의 형과 병식은 ‘이웃비’를 지불해야만 자기 자리 하나를 간신히 차지할 수 있거나, 그마저도 쉽지 않지요. 형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동석은 이런 이들의 고통을 가장 잘 아는 한편, 그 자신도 곁에 있기의 고통에 힘들었던 사람입니다. 이번 호에 비인간존재와의 관계에 대한 이론과 실천 사이의 고민을 다룬 김지은 선생님의 글 「비둘기와 뒤얽히는 영역」에서는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된 비둘기와 떼까마귀와 한 도시에서 사는 이야기가 나와요. 떼까마귀가 이웃비를 지불하는 듯한 모습도 포착되는데…… 이 단편 소설과 함께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번 《한편》 정기구독자 선물은 무엇일까요? 두근두근…♥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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