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 작은 집에서 손님 맞기

 

 

식사를 줄까 말까
 지난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친구의 집에 전보다 자주 가게 되었어요. 밖에서 여럿이 만나기 어려우니 소규모로 아예 각자 집에서 만나게 된 것이죠. 물론 우리집에도 전보다 더 많이 손님을 초대하게 되었고요. 나 혼자서는 머그컵 하나, 그릇 하나, 수저 한 벌이면 충분한 살림인데,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집에 손님을 맞이하자니 왜 이렇게 뭘 새로 사야할 것 같은지…… 저는 첫 집들이 때 너무 긴장한 나머지 간이의자를 여섯 개나 새로 샀는데, 이사할 때마다 버리지도 못하고 큰 마음의 짐이자 물리적 짐으로 이고 다니고 있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 호숫가의 숲속에 작은 통나무집을 짓고 손수 밭을 일구고 자연을 만끽하며 살았는데요. 손님이 꽤나 끊이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집도 작고, 의자도 세 개밖에 없고, 대접할 음식도 없을 때, 어떻게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요?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나도 남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면 언제든 흡혈귀처럼 달라붙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원래 은둔자가 아니지만 업무상 술집에 가게 되는 경우 가장 끈질긴 단골손님보다 더 오래 버티고 앉아 있을지도 모른다.
내 집에는 의자가 세 개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또 하나는 우정을 위한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한 것이다. 예기치 않게 많은 손님이 찾아왔을 때 내놓을 의자가 세 개뿐이지만 대개는 앉지 않고 서서 방을 효율적으로 잘 이용했다. 작은 집인데 얼마나 많은 남녀가 들어올 수 있는지 놀랍다. 나는 스물다섯에서 서른 명이나 되는 영혼을 그들의 육체와 함께 한꺼번에 내 지붕 밑에 들였는데, 너무 비좁아서 답답함을 느끼며 헤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중략)
내가 작은 집에서 이따금 겪었던 불편한 점 한 가지는 손님과 무언가 심오한 생각을 심오한 단어를 써서 말할 때 둘 사이에 충분한 거리를 두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이 예정된 항구에 도달하려면 항해를 위한 시동을 걸고 한두 바퀴 돌아볼 공간이 있어야 한다. 생각이라는 탄환은 좌우상하의 흔들림을 극복하고 마지막으로 안정된 궤도에 진입해야 비로소 듣는 사람의 귀에 도달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탄환은 듣는 사람의 머리 측면을 스치고 지나가게 된다. 우리가 쓰는 문장도 중간중간 벌려서 단락을 지을 공간이 필요하다. 국가와 마찬가지로 개인 간에도 적당히 넓고 자연스러운 경계선은 물론 공간이 넉넉한 중립 지대가 있어야 한다. 나는 호수를 사이에 두고 친구와 대화한 적이 있는데 유쾌하면서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내 집에서는 둘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 보니 서로 말소리를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었다. 상대방에게 잘 들리도록 낮은 목소리로 말할 수 없었던 탓이다. 고요한 수면에 돌멩이 두 개를 아주 가깝게 던질 경우 서로의 파동을 깨는 이치와 같다.
단순히 커다란 목소리로 수다스럽게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뺨과 턱이 맞닿을 만큼 바짝 붙어 있어 상대방의 호흡을 느껴도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신중하고 사려 깊게 말하는 사람은 동물적인 열기와 습기가 완전히 증발하도록 어느 정도 거리를 두려고 한다. 우리가 직접 말로 표현하지 않거나 표현할 수 없는 저마다의 생각을 주고받음으로써 친밀한 교제를 하고 싶다면 침묵해야 할 뿐 아니라 되도록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신체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말이란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한 것 같다. 하지만 고함치듯 큰 소리로 외쳐도 전달되지 않는 미묘한 것들이 많다. 대화가 점점 고상하고 장엄한 어조를 띠기 시작하면 우리는 의자를 조금씩 뒤로 밀다가 서로 맞은편 구석에 닿아 결국에는 더 이상 물러설 공간이 없었다.
아무래도 내 ‘가장 좋은’ 방이자 언제든 손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응접실은 집 뒤의 소나무 숲이었다. 그곳의 카펫에는 햇빛도 거의 닿지 않았다. 나는 여름철 귀한 손님이 찾아올 때마다 귀중한 자연의 도우미가 바닥을 쓸고 가구의 먼지를 털고 사물들을 말끔히 정돈해 놓은 그곳으로 데려갔다.
손님이 한 사람일 경우에는 이따금 소박한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우리는 푸딩 반죽을 젓거나 잿더미 속에서 빵이 점점 부풀며 익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느라 대화가 끊기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손님이 스무 명쯤 몰려와서 내 집을 가득 채울 때는 두 사람이 먹을 만큼 빵이 있어도 먹는 습관을 아예 잊어버린 것처럼 식사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자연스레 절식을 실천했다. 손님 접대의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단히 적절하고 사려 깊은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경우 종종 회복이 필요한 육체적 생명의 소모와 쇠약이 기적적으로 늦추어지고, 그리하여 생생한 활력이 자리를 굳게 지키는 듯했다. 이런 식이라면 스무 명은 물론이고 1000명도 거뜬히 대접할 것 같았다. 집에 있는 나를 찾아왔다가 내 태도에 실망하거나 배고픈 상태로 돌아갔다면 적어도 내가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다는 것만은 믿어 주기 바란다.
많은 주부들이 공감하기 어렵겠지만 낡은 관습 대신 새롭고 더 좋은 관습을 다지는 일은 의외로 쉽다. 손님에게 내놓는 식사에 당신 평판을 맡길 필요는 없다. 내가 누군가의 집을 방문하는 걸 케르베로스만큼이나 효과적으로 막는 것이 있다면 바로 과시하듯 음식을 줄줄이 내놓는 접대 방식이다. 내게는 그런 행동이 다시는 자기를 괴롭히지 말아 달라는 집주인의 정중하면서도 우회적인 암시로 읽힌다. 앞으로 그런 집에는 두 번 다시 찾아가지 않을 작정이다. 어느 날 나를 찾아온 손님이 명함 대신 놓고 간 노란 호두나무 잎에 적힌 스펜서의 시 한 구절을 내 집의 모토로 삼은 것을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곳에 이르러 그들은 아담한 집을 채운다.
환대라곤 전혀 없는 곳이므로 애써 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휴식이 진수성찬이고, 모든 것이 그들의 뜻대로다.
가장 고귀한 정신에 최고의 만족이 따른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정회성 옮김,
『월든』, 206~210쪽에서
『월든』의 짧은 소개글만 봤을 때는 소로가 숲에서 마냥 고독하고 금욕적으로 산 줄 알았어요.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나도 남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면 언제든 흡혈귀처럼 달라붙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는 제가 소로라는 사람을 얼마나 오랫동안 오해하고 있었는지를 알려 주는 문장입니다.
저도 코로나 기간 동안 때때로 저의 작은 집에 친구들을 초대하고는 했어요. 구색보다 환대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 머리로는 잘 알고 있으면서도, 고양이 편집자님의 첫 집들이처럼 손님 맞이용 세간을 잘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한동안 긴장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더욱 기대하며 펼쳐 본 소로의 묘책은……. 공간이나 식사보다 대화의 조건을 오래 이야기하는 데에서 좋은 참고가 됩니다. 돌이켜 보면 친구들과의 만남에 가장 중요했던 건 좋은 식기나 맛있는 음식이 아닌 서로 릴랙스한 상태에서 나누는 수다였어요. “신중하고 사려 깊게 말하는 사람은 동물적인 열기와 습기가 완전히 증발하도록 어느 정도 거리를 두려고” 한다는 데 동의하면서, ‘과시하듯 음식을 줄줄이 내놓는’ 접대보다 나의 작은 집뿐 아니라 나만의 ‘소나무 숲’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그런 손님맞이를 상상해 봅니다.
손님이 아무 부담 없이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환대 없음’이 가장 큰 환대라는 것이 재미있어요. 저는 요즘 육아를 하느라, 경기도 외곽으로 이사를 가서, 그리고 복직을 해서…… 이런저런 이유로 예전보다 친구를 많이 만나지 못하고 있어요. 이럴 때일수록 가끔 겪는 만남, 의외의 마주침이 더욱 귀하고 또 사무치곤 합니다. 소로 역시 숲속에서 사는 동안 실제 만나는 사람은 적었지만 ‘가장 고운’ 이들을 만났다고 하네요. 고독이 있어야 연결을 더욱 절절하게 느끼는 이치인 듯해요.
사람이 어디에 살든 손님은 있게 마련이다. 숲속에 사는 동안 나는 인생의 어느 시기보다 더 많은 손님을 맞았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 좀 있었다는 뜻이다. 나는 다른 어느 곳보다 좋은 숲이라는 환경에서 몇몇 사람을 만났다. 그러나 사소한 일로 만나러 오는 사람의 수는 전보다 적었다. 이를테면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만으로 방문객이 추려진 셈이었다. 나는 교제라는 이름의 강물이 흘러드는 드넓은 고독의 바다 한가운데로 물러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내 주위에는 필요한 친구들, 그러니까 대체로 가장 고운 침전물만 쌓였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정회성 옮김,
『월든』, 212쪽에서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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