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 그 여자의 사연이 궁금하다

 

 

플랫폼에 못 오르는 사람들
‘플랫폼’ 호 출간 이후 레터에서 이동과 연결에 관해 생각하게 하는 글들을 자주 만나셨죠. 오늘은 이주민의 목소리를 기록한 단편의 한 대목을 소개해 드리고자 해요. 올해에도 이주민, 특히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억압이 가시화된 사건이 꾸준히 일어나고 있는데요, 최근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 및 변경을 제한하는 법 개정안이 논란이 되기도 했지요. 적어도 한국에서만큼은 마음껏 편하게 이동하며 살아온 저는 뒤늦게서야 이동의 자유, 이동권이라는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존재들을 하나하나 알아 가는 2023년을 보내고 있어요.
소설가 조해진의 첫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에 수록된 「인터뷰」에는 서울의 한 주방 가구점에서 혼자 살고 있는 ‘고려인’ 나탈리아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나탈리아는 고려인 3세로 한국 남성과 결혼하면서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 왔어요. 그런 그는 왜 집이 아닌 가게에서, 진열된 가구를 전시하는 쇼윈도로 둘러싸인, “아름답고 화려”한 서울을 그저 창밖으로만 볼 수 있는 공간에서 살게 되었을까요?
‘연단(플랫폼)’에 올라 자신의 이야기와 의견을 공적으로 말할 수 있는 자격은 일부에게만 허락됩니다. 사회로부터 배척되는 소수자들은 그 연단에 오를 기회를 좀체 부여받지 못하고요. 그러나 이 소설은 독자를 인터뷰어의 자리로 불러들여, 익숙하면서도 낯선 결혼 이주 여성의 이야기를 듣게 해요. 그렇게 도착한 이야기를 같이 읽어 볼까요?
모스크바 대학에서 투르게네프로 학위논문을 받은 후 타슈켄트의 유명 사립 고등학교에서 러시아 문학 교사까지 했던 당신이 어떻게 그 모든 것을 버리고 한국에 오게 된 거죠? 왜, 그 주방 가구점에서, 왜, 혼자 살고 있는 거죠?
나탈리아 쪼이가 웃는다. 대답 없이 웃기만 하는 나탈리아의 얼굴은, 그러나 몹시 추워 보인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두꺼운 니트와 솜을 넣은 바지를 입은 채였고 심지어 파란색 코트까지 껴입고 있다.
난방이 안 되니까요. 가스가 끊겼거든요. 전화도 발신은 중지된 상태.
제대로 된 침구 하나 없는 곳에서, 게다가 난방도 안 되는 곳에서, 그러니까 왜 벌써 두 달째 혼자 살고 있냐고요, 왜?
다그쳐 묻자, 그제야 나탈리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충혈된 눈으로 쇼윈도 밖을 건너다본다. 그녀 역시 수도 없이 묻고 또 물어 왔다. 왜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일까. 물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이 추운 부엌에 갇혀 왜 스물아홉의 겨울을 견디고 있는 걸까. 무엇보다 참기 힘든 건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블라인드나 셔터가 없는 쇼윈도는 하루 24시간 내내 투명하게 빛났고 무수한 사람들이 서슴없이, 일방적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지나갔다.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유리문을 안쪽에서 잠가 놓은 채 지낸다. 간간이 손님들이 찾아와 이것저것 물을 때마다 그녀는 치욕감을 느꼈다.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갖지 못했기에 스스로 열등한 존재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치욕감. 그건, 우즈베키스탄에서 감당해야 했던 치욕감과 또 다른 질감의 감정이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도?
그래요. 그곳에서도.
언어의 문제?
그래요. 언어가 문제였지요. 바로 우즈베크어, 우즈베크 민족의 언어.
그게 무슨 말이죠? 자세히 말해 봐요.
사실 우리는 자라면서 오직 러시아어만을 배웠어요. 그때는 우리의 공식적인 언어가 러시아어였으니까요.
그런데요?
러시아에 유학을 갔다 와서 학교에 취직할 때까지만 해도 문제는 드러나지 않았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정부로부터 명령이 내려왔어요. 모든 공문서를 러시아어가 아닌 우즈베크어로 보고하라는 명령. 혼란이 시작됐죠.
그랬군요.
분명, 탄압이었어요. 하루아침에 무수히 많은 소수민족 노동자들이 해고됐지요. 특히 다른 소수민족에 비해 사회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고 있던 고려인들이 타깃이 됐어요. 정부는 사소한 문제들을 어떻게든 잡아내서 고위층에 진출했거나 사업으로 많은 돈을 벌고 있던 고려인들을 잡아들였어요.
— 조해진, 「인터뷰」,
— 그럼, 언니는 이제 한국 사람이 되는 거야?
그 순간 우즈베키스탄을 떠나기 전 공항에서 그렇게 묻던 여동생, 율리아—그 애 이름이죠. 그 애는 타슈켄트에 있는 사립 학원에서 한국어 강사를 하고 있어요. 내가 러시아문학을 공부할 때 그 앤 한국어를 공부한 거죠. 현명한 아이에요.—의 목소리가 초라한 분식집 안으로 조심스럽게 인서트된다. 가족 중에선 율리아가 유일하게 그녀를 배웅했었다. 힘들게 유학까지 다녀온 딸이 기껏, 열 살이나 많은 장사치와 결혼하기 위해 고향을 등진다는 것을 그녀의 부모님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떠나겠다는 맏딸을 잡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미래가 없는 우즈베키스탄, 버티고 또 버텨 봤자 모스크바 대학에서 받은 학위 증명서 따위는 그저 휴지로나 사용해야 하는 곳,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하루의 피곤을 위로받기보다는 또 다른 내일의 불명확함을 걱정해야 하는 나라.
나탈리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율리아는 짐 가방을 들고 있던 조를 올려다보며 떠듬떠듬 한국말로 말했다.
— 한국 남자들이 한국 여자들한테 얼마나 잘해 주는지 알아요. 한국 드라마를 매일 보니까요. 봐요. 이제 우리 언니도 한국 여자야. 그러니 우리 언니를 한국 남자들이 한국 여자들을 대하는 만큼, 그만큼만 아껴 주세요. 형부에게 바라는 건 그게 다예요.
그 말을 들은 조는 대답 한마디 없이 급하게 돌아서서 화장실로 달려갔다. 10여 분 후, 다시 돌아온 조의 눈가가 붉었다. 그의 눈머리에 흥건히 남아 있던, 채 닦여지지 않은 몇 방울의 눈물을 율리아 역시 충혈된 눈으로 올려다봤었다.
—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
그래서, 나탈리아는 천천히, 한 음절 한 음절 힘을 주어 그렇게 말한다. 그녀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한국어였다. 하지만 나탈리아의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한 남자와 주방 쪽의 여자들은 고개만 갸우뚱할 뿐, 선뜻 그녀의 말에 동의를 해 주지 않는다.
— 나! 는!
이번엔, 목에 푸른 심줄을 돋우며 온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르는 나탈리아. 꽉 쥔 주먹, 경련하는 입가, 핏줄이 엉켜 흔들리는 눈동자. 그건, 분노라는 감정의 성실한 비주얼.
— 나! 는!
외침은 이어지고,
— 한, 국, 사, 람, 입, 니, 다, 아!
드디어 완성되는, 그녀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완벽한 한국어 문장. 우즈베키스탄을 떠나오는 비행기 안에서 손톱을 물어뜯으며 주문처럼 외우고 또 외웠던 할머니와 할머니의 할머니들의 언어, 하지만 아무것도 보상해 줄 수 없는 무력한 절규.
— 조해진, 「인터뷰」,
발췌해 주신 부분에 세 번이나 등장하는 ‘치욕감’이라는 단어, 나탈리아가 한국에서만 느낀 감정에 대해서 오래 생각했어요.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갖지 못했기에 스스로 열등한 존재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치욕감.’ 그건 우즈베키스탄에서 소통해 왔던 언어를 갑자기 빼앗겼을 때에 느꼈던 ‘분노에 가까운 치욕감’과는 다르다는 소설 속 대목이 인상 깊어요. 명백히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자책할 수밖에 없는 상황,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더 큰 비난과 조롱으로 다가오거나 오해되는 경우들도 상상되었고요. 환대한다는 것에는 단순히 ‘한국 사람’이라는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넘어서 차분하게 듣는 일, 모든 것이 낯설 이에게 섬세하게 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레터를 읽으면서 지난 주 레터 「초보 노인 이야기」에 대한 반응도 다시 살펴보았어요. 지난 레터에 무려 평소보다 두세 배 많은(!) 피드백이 들어왔는데요.  아차! 하는 생각, 더 현실적인 감각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느껴져요. “예전보다 눈에 보이는 노인혐오가 늘어났다 생각해 왔으나 무뎌진 제 자신에게 다시 아차!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편지였습니다. 오늘 퇴근길 오랜만에 서점에 들르겠습니다.” “나이듦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아직 멀게 느껴지지만 어떤 할머니가 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자주 하는 편인데, 그보다 더 현실적인 감각을 마주하게 된 것 같습니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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