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 초보 노인 이야기

 

 

노년기 선행 학습
오늘 소개해 드릴 책은 이제 막 노년기에 진입한 60대 저자가 쓴 에세이 『초보 노인입니다』예요. 초고령 사회, 천만 노인의 시대라지만 아직 저에게 노년, 늙음, 돌봄 같은 단어들은 추상적으로만 다가옵니다. 이 책을 쓴 김순옥 작가 역시 아직 ‘노인이 되었다’라는 실감이 없는 채로 실버아파트에서, 그리고 일상의 곳곳에서 나이 듦의 증거들을 마주쳐요.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받고, 거울에 비친 얼굴에서 도드라지는 주름을 발견합니다. 동년배의 부고가 하나둘 들려오고요.
노년의 낯선 세계에 적응해 가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이 듦에는 선행 학습이 필요하고, 노년의 삶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가 그 교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저는 이 책과 함께 제 주변의 ‘초보 노인들’, 특히 엄마를 자주 떠올렸는데요. 여러분들은 누구를 떠올리며 그리고 어떤 상황을 상상하며 이 글을 읽으실지 궁금해요. 얼떨결에 실버아파트에 들어선 순간의 당혹스러움에서 시작하는 『초보 노인입니다』를 함께 읽어 봐요.
실버아파트에 들어선 순간 나 역시 ‘할머니’가 되었고 직원들의 ‘어르신’이 되었다. 직원들은 입주민들을 무조건 아버님, 어머님, 어르신으로 불렀다. 워낙 직원의 수가 많다 보니 하루에도 서너 번 그런 얘길 들었다. ‘내가 왜 네 엄마니?’ 하고 싶지만 어디 그럴 일인가. 내가 아무리 젊었다 한들 이곳에 들어와 있는데.
일종의 문화 충격이 시작되었다.
아파트 단지 어딜 가도 은발의 노인들뿐이었다. 대부분 건강했지만 휠체어나 워커에 의지해서 걷는 분도 꽤 되었다. 부부 중 한 사람의 몸이 불편하면 건강한 배우자가 손을 꼭 잡고 보행을 도와주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띄었다.
공원이나 길에서 그런 부부를 보면 노년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끼는데 여기선 달랐다. 내 눈이 못돼먹었거나 생각이 비뚤어진 탓이겠지만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노인들의 그 불편함이 마치 내 것 같았다.
‘아, 난 무슨 짓을 한 것이야? 도대체?’ 그때 느꼈다. 실버아파트를 그냥, 마구, 준비 없이, 돈에 맞춰 생각 없이 들어오는 게 아니었다는 걸.
일반 아파트와 별 차이 없이 도리어 더 세심하게 지어졌고, 어차피 아파트 생활이란 게 내 공간에서의 개인적인 삶인데 뭐가 문제일까라는 생각은 실버아파트에 대한 나의 몰지각이며 실례였다.
실버아파트는 다른 세계였다. 실버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그냥 노인들이 모여 사는 곳에 산다는 것 이상으로 무엇인가에 대한 예습이 필요한 일이었다.
난 아무런 준비도 생각도 없이 덜컥 실버의 세계로 들어와 버렸다. 그렇게 좌충우돌, 고군분투의 삶은 시작되었다. 매우 조용히.
들어가며에서
며칠 전에 후배 아버지의 부고를 받았다.
예뻐지려고 쌍꺼풀 수술을 했는데 오히려 미워졌다며 남편이 타박한다고 까르륵대던 명랑한 후배였다. 후배의 아버지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가셨다.
“지난 주까지도 거동은 하셨어요. 식사는 안 하셨지만. 음식을 끊으시고는 18일째, 자리에 누우시고는 사흘 만에 가셨어요.”
당신의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걸 아신 아버지는 결심하고 딸을 불러 단호하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나를 죽게 하라.”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화장실만 다니는 삶이니 이제 그만 살아야겠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아니, 아버지,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아무것도 안 드시고 돌아가신다고 하세요?”

“내 말대로 해라. 병원에서 코줄 끼고 천천히 죽고 싶지 않다.”
결국 모든 음식을 끊고 물만 조금씩 드셨는데 그 기간이 18일이었다고 한다. 금식이 길어지면서 통증이 동반될 때는 강력한 진통제를 투여하곤 했는데, 그것이 치료의 전부였다고 했다. 18일 동안 딸과 매일 차분히 하고픈 말씀을 다 나누시고, 다른 가족과도 충분한 이별의 시간을 가지신 후에 조용히 운명하셨다고 했다.
나의 토요일 모임은 30년이 되어 가는 묵은 모임이다. 시작은 30대였고 지금은 모두 60대가 되었다. 시작했을 당시 20대였던 한 명만 빼곤.
그런데 이 모임에서 죽음이 주제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멤버들 나이가 평균 60이 되면서부터 죽음은 좀 더 가깝고 평범해졌다. 그동안 부모나 시부모, 가끔은 친구들의 죽음도 겪었지만 아직 멤버들이나 그들의 배우자가 죽음에 이른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친구와 배우자뿐만 아니라 자신의 죽음까지도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때가 온 것을 우리 모두는 느끼고 있었다.
“죽는 게 사는 것처럼 당연한 거지 뭐. 별날 것 없는.”
느닷없는 잠실댁의 한 마디에 우리는 모두 말없이 웃었다. 아니, 웃고 싶었다.
— 김순옥, 「나를 죽게 하라」,
‘브런치북을 내가 또……’라는 생각도 잠시, 편집자에게 책 소개를 받고 마음이 동했어요. ‘늙음’과 ‘돌봄’은 어느 순간 저의 세계에 들어온 단어거든요. 치매를 앓다 떠난 우리 개, 이제는 초보 노인이 아닌 우리 엄마 덕분이지요. 젊은이들도 우왕좌왕하게 되는 무시무시한 대학병원에서 한시도 제 손을 놓지 못하던 엄마, 늙은 아빠가 더 늙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돌보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 이제 나는 ‘노인의 세계’에 발을 들였구나, 빠져나갈 길은 없구나, 새삼 깨달았습니다. 아마 언젠가 저도 “30년이 되어 가는 묵은 모임”에 출석하는 친구들과 함께 ‘죽음’에 대해 이야길 하고 있겠죠? 사실 벌써 시작된 것 같기도 해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어르신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면 썩 내키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거나 괜찮다고 거절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앉아 가시는 분들도 있고요. 그때마다 ‘피곤하실텐데 왜 앉지 않으시는 걸까? 왜 호의를 거절하시는 걸까? 하고 궁금해했어요.
그런데 하루는 엄마가 이런 말을 했어요. “오늘 지하철에서 처음으로 자리를 양보받았는데, 내가 그렇게 나이 들고 힘들어 보였나? 싶어서 조금 슬펐어.” 그 말을 듣고는 제가 베풀었던 호의 자체가 싫었다기보다 순간 복잡한 마음에 거절하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이 듦은 저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곧 초보 노인이 될 우리 엄마와 아빠가, 그리고 미래의 내가 그려졌어요. 독자분들도 책을 읽으면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 그리고 노인이 된다는 것을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로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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