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재난 앞의 리더십

 

 

위기는 반복된다, 다른 모습으로
계속된 비로 우중충한 기분이 도통 낫지 않는 요즘입니다. 무거운 마음은 침수 피해로 인한 비보 때문이 클 듯해요. 지난 주말 집중적으로 쏟아진 비로 충북 청주시 오송읍과 경북 예천군 지역에 인명 피해가 다수 발생했습니다. 이번 폭우로 인한 사망·실종자는 17일 기준 50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작년(2022년) 가을 태풍 힌남노가 휩쓸고 간 피해 현장을 직접 보았던 저는 일 년이 채 안 되어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 너무나 씁쓸할 뿐입니다. 최근 이상 기후가 잦아진 것도 사실이지만, 그동안 구축해 온 안전망으로 조금이나마 피해를 줄일 수는 없었을지 때늦은 질문이 고개를 들어요. 무력감에 빠지기 전 미국의 재난 대응 전문가가 쓴 위험 관리 지침서 『악마는 잠들지 않는다』의 한 부분을 읽어 봅니다. 비록 재해 대응의 일선에 있지는 않지만 한 명의 시민으로 얻어갈 메시지가 없을까 하면서요.
재난은 일반적으로 예측 가능하다. 악마가 올 것이다. 그러나 재난 이후에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유일한 상수는 재난이 발발했다는 것이다. 다들 화가 나 있다. 누군가는 겁에 질렸고, 누군가는 충격을 받았고, 누군가는 분노했다. 아무리 위험하거나 피해가 크더라도, 가정은 말할 것도 없고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의 리더가 이러한 상황에 닥치면 방어적이 되거나 앞을 똑바로 보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은 상황의 정보를 알지 못하는 반대론자 및 비전문가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가끔은, 아주 가끔은 잡음(noise) 속에 지혜가 있다. 그리고 리더는 잡음을 듣고, 귀 기울이고, 흡수하고,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하지만 먼저 잡음을 포착해야 한다.
다행히도 이를 수행할 기본 구조가 이미 마련되어 있다. 다국적 기업의 경우 실시간 정보를 제공하는 직원이 현장에 배치되어 있다. 정부는 현장에 초동 대응 인력 또는 법 집행기관을 배치할 것이다. 데이터베이스나 슬랙(Slack)과 같은 웹 서비스는 실시간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자주 사용된다. 그러나 재난 상황에서 좋은 정보와 나쁜 정보를 가리기란 까다롭다. 재난은 잡음이 너무 많아서 처리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생생한 정보를 얻는 방법은? 그냥 TV를 켜면 되지 않을까? 가끔은 그게 효과가 있다. 트위터는? 그럴 수도 있다. 이러한 플랫폼을 무시하지 마라. 다만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민간인 GOBI)이 아마도 항상 주목을 받고 가장 많은 팔로워를 보유하겠지만 그 사람이 지식이 많은지는 종종 불분명하다. 수백만 명의 팔로워와 소통하기 위해 단편적 정보나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트위터의 허풍쟁이들(보수적인 텔레비전 해설자 피어스 모건(Piers Morgan)은 재난 관리자가 아니다.)은 재해 시 이용할 만한 가이드가 아니다. 볼륨은 종종 좋은 지표가 되지 못한다. 그리고 정보 수집 및 의사소통 메커니즘이 사전에 육성되지 않으면 큰일, 정말 큰 일을 놓칠 수 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발생한 뉴올리언스의 제방 붕괴를 예로 들 수 있다.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관통한 후 도시가 최악의 상황은 면한 것처럼 보였던 조용한 기간이 있었다. 카트리나는 상륙할 당시만 해도 파괴적인 카테고리 5가 아니라 카테고리 3 허리케인이었기 때문이다. 안정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물방울들은 홍수가 되었다.

백악관과 국토안보부 장관 마이클 처토프(Michael Chertoff)가 제방 붕괴 및 범람에 대해 통보받기까지 열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러나 실제로 뉴올리언스에 있었던 사람이면 미리는 아니더라도 그때쯤은 상황을 알았을 것이다. 이러한 시간 차이는 연방 정부가 재난 후 인식을 위해 자체 자원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고, 어떻게든 그 명백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현장에 없었다는 사실로 설명된다. 케이블 뉴스 발표에 최악의 타이밍일 수도 있는 상황에서, 처토프는 뉴스 피드가 범람을 보여 주는 동안에도 제방이 무너진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처토프는 자신만의 인식 시스템, 즉 국가 운영 센터(National Operations Center)로 알려진 연방 인식 기구를 통해 제방 붕괴를 통보받지 못했다.) 뉴올리언스 주민들은 말 그대로 옥상에서 도시가 침수되고 있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처토프가 현장에 있는 연방 팀으로부터 받은 정보는 너무 느리고, 너무 높은 상급자의 보고였고,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에서 너무 떨어져 있었다. 대응 시간이 중요하다. 그 정도의 지연은 생명을 앗아 간다. 모든 것이 잘되고 있다는 연방 정부의 주장은 대중에게 그대로 머물러도 된다는 잘못된 확신을 주었다. 잡음은 연방 정부에 물이 차오르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귀 기울이지 않았다.
— 줄리엣 카이엠, 김효석·이승배·류종기 옮김,
‘대응은 다양해야 한다’, ‘당장의 피해를 줄여라’, ‘과거를 답습하지 마라’ 등 반복되는 재난에 대처하는 교훈을 전하는 카이엠은 이러한 대응 원칙이 우리가 가진 관리 능력과 리더십 기술을 구체화하는 것과 관계된다고 말해요. 각 사회 시스템이 이전의 재난 상황에서 성공했든지 실패했든지와 무관하게, 또 개개인이 어떤 역할을 맡는지와 관계없이 말이에요.
특히 위기 대응 리더십과 관련해서는 리더 스스로 근시안이나 낙관주의, 타성, 단순화 등의 편향에 빠질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상상은 누구에게나 부담이 가는 일이지만, 적어도 이런 마음을 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 나쁜 일, 재앙 수준의 나쁜 일은 일어날 수 있고, 나는 그렇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자. 재난은 발생할 것이고 그것이 일어날 때, 나는 재난이 일어나지 않을거라 침착한 척하지 않고 상황을 더 낫게 만들거나 적어도 더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한 책임이 있다.’ (82~83쪽)
재난에 대응하는 좋은 리더십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아는 것”에서 출발하겠습니다. 일인 가정에서든 사업장의 관리자든, 그보다 더한 책임을 가진 사람이든 말이에요.
우리는 과거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힌트를 줄 수 있지만, 재난이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대한 정확한 윤곽은 각본을 따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역사는 관련성이 있지만 효과적인 결과 관리에 장애물로 작용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우리는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한 개념에 얽매여 한때 충분히 좋았다는 이유로 대응 노력이 적절하다고 간주한다. 지난번의 재난을 처리하기에 대응이 충분했다고 해서 다음 재난에 대비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군사적으로 비유하면 마지막 전쟁을 준비하는 장군과 같다. 역사는 길을 안내하고 드러낼 수 있지만 구속할 수도 있다. 사회와 제도는 다음 위기를 대비하는 것보다 지난 위기에 훨씬 잘 적응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최근 사건의 고통과 피해가 리더와 시민들의 마음에 생생할 때 중대한 위기의 여파로 시스템이 구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9・11의 여파로 미국은 전체 국토 안보 기구를 재구성하고, 더 많은 자원을 할당하고 대테러 노력에 관심을 기울이기 위한 새로운 법을 통과시켰고, 명확한 목표나 목적 없이 여러 번의 영원한 전쟁에 돌입했다. 그 이후로 과도하게 많은 자원이 테러 대응 노력에 투입되었다. 이는 중요하긴 하지만 종종 취약한 공중 보건 인프라, 기후 위기 노출, 자연재해의 빈도 증가, 광범위한 허위 정보, 국내 테러 등에 점점 더 취약해지는 양극화된 시민사회와 같은 최근에 밝혀진 수많은 다른 안보 취약성에서 주의를 분산시켰다. 국가의 위기 지향은 지난번 위기에 대한 기억에 완고히 초점을 맞춘 경우가 많다.
반복되는 재난 관리 시스템은 예측 가능한 과거의 반복을 기대하기보다는 완전히 예상치 못한 새로운 사건에 적응해야 한다. 즉 어떤 시스템의 재난 이후 대응 역량은 그 사례와 관련된 한순간의 반영이며 정보, 증거 또는 직감에 기초하여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게 수정되어야 한다.
역사는 어떤 면에서는 매몰 비용이다. 그것은 과거에 대해 분별을 흐리게 하는 근시안적 단견을 만들어 낸다. 전 국가정보장 제임스 클래퍼는 그 위험성을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면,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라고 묘사했다. 재난이 반복되는 변화의 시기에 우리는 결코 자신할 수 없다. 자신감은 리더에게는 좋은 속성일 수 있지만 위기 관리자에게는 그렇지 않다. 자신감은 나태함, 즉 ‘까짓것 할 수 있어’라는 감각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지만 다음에는 다른 춤을 준비해야 한다.
— 줄리엣 카이엠, 김효석·이승배·류종기 옮김,
다음의 재난에는 이전과는 다른 대응이 필요하다고 명확하게 말하는 데에서 좀 놀랐어요. 계속되는 재난에는 앞선 재난과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고, 같은 경고를 놓쳐서 문제가 반복된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하지만 위기 관리자들에게 바로 그 순간의 판단력, 그것도 빠른 판단력이 필요하다는 대목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어요. “대응 시간이 중요하다. 그 정도의 지연은 생명을 앗아간다.”
저는 가능한 위기를 만들지 말자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편인데, 그럼에도 예측할 수 없는 혹은 예측한들 별수 없는 위기는 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마다 배움이 있었지만 다음의 위기는 또 다른 대응을 요구했고요. 위기가 다가온다는 것을 아는 자세를 갖추기란 쉽지 않겠지만, ‘일상화된 재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재난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편 이 책에 언급된, ‘좀비 영화와 다른 종말론적 유형의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이 팬데믹에 더 잘 대비하고 있다고 느낀다’는 연구 결과가 재미있어요. 회복 탄력성을 기르기 위해 영화와 문학작품들의 상상력에 기대야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덮어 두었던 책을 다시 펼쳐야겠어요.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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