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별안간 떠나고 싶을 때

 

 

『베네치아에서 죽다』
어느 새 7월이에요. 1년의 절반이 훌쩍 지났음에 놀라며, 저는 ‘뭘 했다고 벌써 7월……’과 ‘하지만 계속 뭔가 하긴 했는데……’ 사이에서 어리둥절한 채 있답니다. 다들 어떤 마음으로 하반기를 맞으셨는지도 궁금하네요. 너무 빨리 가는 시간에 대한 불안과 점점 더워지는 날씨와 여전한 일상의 힘듦 한가운데에서…… 오늘은 토마스 만의 중편소설 『베네치아에서 죽다』를 함께 읽어 봐요.
『베네치아에서 죽다』의 주인공은 ‘한순간도 정신을 쉬지 않는’ 예민함으로 창작을 해 온 초로의 작가 구스타프 폰 아셴바흐예요. 머리를 식힐 겸 산책을 하던 아셴바흐는 이국적인 행색의 낯선 이를 마주치고, 처음으로 일탈에 대한 욕망을 느낍니다. 고통스러운 창작의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욕구를요.
물론 뒤늦게, 느닷없이 그를 사로잡으려고 한 그 무엇인가는 이성과 젊은 시절부터 단련해 온 자제심으로 곧장 진정시키고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는 시골로 거처를 옮기기 전에, 그동안 몰두해 온 작품을 어느 정도까지는 진척해 놓고자 했다. 사실 몇 달간 창작에서 손을 떼고 무위도식하면서 세계를 돌아다니고 싶은 충동은, 너무나 방종하고 계획에도 어긋나는 발상이라 진지하게 고려해 볼 여지조차 없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 돌연 그런 유혹이 마음속에서 일었는지는 그 스스로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인정하는 바에 따르면, 바로 탈출하고자 하는 충동이었다. 미지의 새로움을 동경하며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 ─ 모든 짐을 덜고 모든 것을 망각하고자 하는 충동 ─ 이른바 작품에서, 경직되고 냉혹하며 고통스럽기까지 한 일상의 작업 장소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충동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자기 일을 사랑했다. 강인하고 자부심에 가득 찬 확고부동한 의지와, 점점 더 지쳐 가는 생활 사이에서 매일 새롭게 전개되는 소모적인 신경전을 즐기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가 지칠 대로 지쳐 있음을 몰랐다. 작품에서조차 결코 좌절이라든가, 태만의 기미를 보여서는 안 되었기에 그의 지친 심신 상태는 당최 탄로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생생하게 솟구치는 욕구들을 가혹하게, 깡그리 말소시켜 버리는 일 또한 그리 바람직한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자기 일에 관해서,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 또다시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그 부분에 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 부분은 인내심을 가지고 다듬을 수도, 대충 얼버무릴 수도 없었다. 그는 재차 그 부분을 검토해 보고, 막히는 데를 돌파하거나 해결해 보고자 애썼지만 결국 불쾌감에 사로잡혀서 온몸을 떨 뿐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특별한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다. 사실 그를 마비시킨 것은, 어떤 불쾌함에서 오는 일종의 회의감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더 이상 그 무엇에도 만족할 수 없을 듯한 불만감으로 나타났다. 물론 불만감은 젊은 시절의 그에게 재능의 본질이자 가장 핵심적인 속성으로 통했더랬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둔 채, 그는 감정을 억제하고 냉정을 유지하곤 했었다. 왜냐하면 감정이란 즐거운 우연, 심지어 대충 마무리된 일에도 만족해 버리는 경향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야 그토록 억압당해 온 감정이 그를 저버리고 예술의 가능성마저 차단해 버린 채, 형식과 표현에 대한 욕구와 열망까지 앗아 가면서 복수하려는 것일까?
— 토마스 만, 박동자 옮김,
매혹적인 신경전과 도피하고 싶은 충동. 아셴바흐의 하루하루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지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엄격하고 예민한 작가는 베네치아로 여행을 떠나는데요. 아름다운 도시 베네치아에서의 마주침이 주인공의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후반부도 살짝 들여다볼까요?
작가의 행복이란 완전한 감정이 될 수 있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며, 완전히 생각이 될 수 있는 감정을 가지는 것이다. 그 당시 외로운 작가는 그처럼 약동하는 생각과, 그토록 세세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런 생각, 그런 감정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즉, 정신적인 사람이 아름다움을 애모한 나머지 그것을 경배하면, 자연 역시 기뻐하며 전율한다는 생각과 감정이었다. 그는 갑자기 글을 쓰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하긴 에로스는 빈둥거림을 사랑하고, 또 에로스가 빈둥거리는 사람만을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말도 있다. 그렇지만 이렇듯 위기를 맞이한 사람의 흥분은 생산적 창조를 향해 작용하기 마련이었다. 글을 쓰고 싶은 계기는 거의 대수롭지 않다. 문화와 취미 영역의 어떤 중대하고도 시급한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혀 달라는 일종의 질의 혹은 자극이 정신 세계의 현안으로 부상하였다. 급기야 이 문제는 현재 여행하는 이 작가에게까지 와닿았다. 그 주제는 그에게 친숙했고, 그의 체험에 속해 있기도 했다. 그 주제를 자기 언어로 조명함으로써 찬연히 빛내고 싶은 욕심이 생겨나자 돌연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사실 그의 욕구는 타치오가 있는 데서 창작하고 글을 쓰며, 그 소년의 육체를 자기 문체의 본보기로 삼아 그 신적인 형상을 따르도록 하는 것이었다.
— 토마스 만, 박동자 옮김,
올봄 저도 베네치아에 여행을 다녀왔어요. 너무 관광지 같은 곳이라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물 위에 지은 예쁜 도시는 ‘어디서도 이런 건 본 적 없는데!’ 하고 놀랄 만했어요. 토마스 만 소설 속의 예민한 작가도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함으로써 새로운 창작의 영역으로 전환을 이루게 되나 봐요.
저는 이제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지 한 달 반 되었는데요. 집과 회사, 두 장소 사이를 오가며 하루에도 몇 번씩 이게 전환인지 분열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두 장소 모두 제게 서로 다른 역량을 요청하고 있고, 게다가 그 사이를 오가는 새로운 일상 자체가 또한 지금까지 몰랐던 역량의 영역임을 경험하고 있는 나날입니다. 이 두 장소 외에…… 숨통 틔울 순간은 갑자기 올 수도 있다고 꿈꾸고 있어요.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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