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결혼할 남자가 없다

 

 

가부장 자본주의의 결혼 이야기
지난 주 리트리버 편집자님이 추천한 장마철에 어울리는 한시는 어떠셨나요? 저는 여전히 한시에 익숙하지 않지만, 500년 전의 시구를 따와 쓴 705년도의 당시가 천 년이 지나 조선에서 번역되고, 또 21세기의 우리말로 전달되는 모습이 자못 장엄하게 느껴졌어요. 지긋지긋한 장마 소식을 지구 순환의 한 장면으로 보면 좀 더 느긋하게 대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달까요?
한 독자분께서는 이런 감상도 전해 주셨어요. “《한편》 레터로 알게 되어 『산문기행』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번 책도 즐거운 읽기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옛사람의 산행기에 이어 당시의 아름다움까지 즐겨 주신다면 무척 기쁘겠습니다.
오랜 역사와 지구의 순환을 생각하는 한편, 저는 아직 지난 도서전의 열기를 가라앉히는 중입니다. 작년(2022년) 도서전과 비슷하게 올해도 민음사 부스에서 《한편》과 ‘탐구’ 그리고 방금 막 출간한 신간을 소개하는 행사를 여럿 진행했습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민음사TV를 통해 출간 소식을 전한 경제학 도서 『가부장 자본주의』입니다. 소개 영상을 보고 도서전에서 책을 찾아주신 독자 분이 정말 많았는데요. 경제적 성별 불평등의 기원을 폭넓게 탐색하는 이 책에서 경제학자들이 어떻게 결혼을 ‘시장’으로 이해하는지, 부부가 결혼을 통해 무엇을 얻는다고 설명하는지를 살펴보아요.
199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게리 베커는 가족과 결혼에 관한 경제학 이론의 기원을 이뤘다.* 베커가 발전시킨 결혼 시장이라는 관념은 여성과 남성이 파트너를 찾기 위한 경쟁에 진입하는 영역으로서의 시장을 의미한다. 그의 이론은 무엇보다 결혼을 자녀를 생산하는 하나의 기업체 또는 생산 단위로 개념화한다. 결혼은 가정에서 누군가가 제공한 식사, 이미 끝마친 설거지처럼 결혼한 두 사람 모두가 혜택을 보는 재화를 생산한다. 물론 재화의 목록에는 사랑도 포함된다. 경제학자 가운데 가장 ‘경제학적인’ 이들조차 여기에 사랑을 포함하지 않을 정도로 괴물은 아니다. 결혼한 부부는 자기 시간을 투여해 이 공통 재화 생산에 기여하는 한편 집 밖에서도 일해야 한다. 이들의 예산은 노동 시장에서 각자가 얻는 소득의 합으로 제한된다. 여기에서 가사와 노동 시장 사이에 두 사람의 시간을 어떻게 배분하느냐가 중요하다. 예산과 시간에 관련된 이중 제약으로 인해 가사의 배분은 노동시장 참여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하루는 스물네 시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부부 중 한쪽의 생산성이 더 클 수 있다. 가정의 공통 재화 생산에서나 노동 시장에서, 혹은 두 영역 모두에서 그럴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내가 남편보다 설거지를 더 잘할 수 있다. 여러분은 이미 눈치챘겠지만 이런 이성 커플 사례는 완전히 우연적으로 선택된 것이다. 머지않아 동성 커플에게도 같은 동역학이 적용된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우연하게 선택된 또 다른 예에 따라 노동 시장에서 남편이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 부부 중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노동에서 돈을 더 많이 버는 순간부터 돈을 더 버는 사람이 돈 버는 노동을 전문화하고 상대편은 가사 활동을 전문화하는 것이 논리적이다. 아내가 남편보다 설거지를 잘한다면 이는 더 논리적일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동역학을 강화하는 전문화는 이득을 준다. 아내가 설거지를 더 할수록 더 빛이 난다. 빛나는 것은 아내가 아니라 설거지이겠지만. 남편이 더 오래 일할수록 임금이 오른다. 수학적으로 말해 집안일을 전담하는 파트너 덕분에 더 오래 일할 수 있고 시간 단위로 임금을 지불받는다면 전체 임금은 더 많아진다. 그 유명한 ‘더 많이 벌기 위해 더 많이 노동’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추가 노동 시간에 따른 생산량은 이 단선적 효과를 훌쩍 넘어선다. 우리는 곧 경제학자들이 최근 노동 시장의 변화에서 강력한 경향 중 하나로 꼽는 이 지점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학자들은 이러한 경향을 노동 시장의 ‘아래로 볼록한 형태의 생산량’이라고 말한다. 수입이 가장 높은 직업이나 기업 변호사, 금융 투자 전문가처럼 가장 남성적인 직업에서 노동 시간은 증가했다. 그런데 이 직업군은 노동 시간이 증가할수록 전체 임금뿐 아니라 시간당 임금도 증가한다. 일반적으로 노동 시간이 증가하면 피로와 같은 이유로 노동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보므로 이런 현상은 놀라울 따름이다.
앞서 든 사례는 설거지이지만 경제학자들이 부부가 기능하는 상태를 분석할 때 가장 근본적인 공통 재화로 두는 것은 자녀 그리고 ‘사랑’이다. 베커의 논문에는 이 말에 따옴표가 있는데 그만큼 사랑이란 개념은 정의하기 어렵다. 경제학자들이 낭만주의자라서가 아니라 애초에 자녀와 사랑은 시장이 기능하지 않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은 설거지를 시킬 누군가를 고용하는 상황을 ‘생산의 외부화’라고 말할 것이다. 심지어 사랑의 몇몇 특징을 제공받고자 누군가를 고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부는 어렵다.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있는 특징들 너머에 있는 것이다. 어쨌든 시장에서 자녀라는 상품을 찾을 수 없거나 최소한 쉽게 구할 수는 없다는 점은 확실하다. 바로 이것이 결혼의 이득을 구성한다. 앞서 기술한 전문화의 이득을 취해 시장에서 살 수 없는 재화, 곧 자녀를 생산할 가능성 말이다. 이 이득은 부부 중 한 명의 임금이 다른 쪽보다 많을수록 중요해진다. 이런 경우에 부부가 각자의 영역을 전문화하는 것, 결국 전문화를 위해 결혼하는 것은 둘의 이해관계에 명백히 부합한다. 일반적으로 아내는 집에서 시간을 보내겠지만 임금 노동을 했다 쳐도 돈을 많이 벌지 못했을 것이다. 반면 가사 노동을 전담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남편의 시간을 해방시킬 수 있다. 그렇게 남편의 더 높은 암묵적 임금이 아내가 노동 시장에서 벌어 올 것을 벌충한다. 나는 아내와 남편을 사례로 들고 있으나 한 번 더 강조하자면 전문화에 따른 이득이 존재하는 순간부터 여성과 여성, 남성과 남성 커플 사이에도 같은 논리가 작동한다.
— 폴린 그로장, 배세진 옮김, 『가부장 자본주의』,
2장 「여성의 눈부신 성장」 중에서
* Gary S. Becker, “A Theory of Marriage: Part I,”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Vol.81 no.4(1973), pp.813~846.
모든 것을 시장으로 보는 경제학자들은 부부가 커플 관계 내에서 갖는 ‘협상력’을 분석하며 결혼에 대한 낭만을 박살냅니다. 이들이 말하길, 결혼 시장에서 갖는 가치가 큰(=결혼 기회가 많은) 사람은 그만큼 커플 내 협상력이 큽니다. 커플 내 협상력이 큰 사람은 상대보다 덜 일하고, 상대가 벌어준 소득을 쓰면서 더 많은 여가를 누릴 것이라는 설명이지요. “더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거야.”라는 말이 이런 식으로 해체되네요!
그런데 커플 각각의 협상력은 실제 노동 시장 참여에 영향을 미칩니다. 1960년대 중반에 프랑스 결혼 적령기 여성은 세계 대전과 베이비 붐의 영향으로 결혼 기회가 줄었습니다. 미혼 여성들이 일터로 나가면서 이 당시 여성 노동 시장 참여율은 자연히 증가했어요. 결혼에 대한 경제학 이론은 오늘날의 인구 및 출산 정책, 여성의 결혼과 노동 시장 진출을 분석하는 기본 틀로 받아들일 만합니다.
저는 만약 나중에 결혼을 한다면 노동과 가사는 균등하게 배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어요. 단순히 둘이 벌 때 더 많이 벌 수 있고, 둘 다 노동을 하니까 가사일도 같이 해야한다는 판단이었죠. 그래서 “수학적으로 말해 집안일을 전담하는 파트너 덕분에 더 오래 일할 수 있고 시간 단위로 임금을 지불 받는다면 전체 임금은 더 많아진다.”라는 내용 자체가 제게는 새로운 정보였어요.
다만 경제학자들의 주장에 조금 반발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부부 사이에 노동과 가사를 배분하는 것은 단순히 ‘두 사람이 똑같이 일을 반반하자’라는 의미가 아니니까요. 두 가지 일을 나누어 함께하면서 서로의 상황을 더 잘 이해하고 각자에게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본문의 내용은 여러 조건을 따져가며 하는 ‘계약’ 관점의 결혼에 적합한 설명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사랑’처럼 값을 매길 수 없는 가치에 비중을 더 두고 싶은 건 험난한 자본주의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너무 낭만적인 생각일까요?
이론과 현실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도토리 마케터님이 말씀하신 대로 많은 부부가 전문화를 목표로 하기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돕는 방식으로 노동과 가사를 나눠 하고 있으니까요. 경제학 이론상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 지금의 현실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결혼을 하나의 기업체 또는 생산 단위로 본다면 “부부가 각자의 영역을 전문화하는 것, 결국 전문화를 위해 결혼하는 것”은 논리적입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여성들은 더는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짧은 육아 휴직 후에 어떻게든 직장으로 복귀하고, 승진이 밀리고 눈치 보며 ‘칼퇴’를 하더라도 일을 계속합니다. 퇴근 후 육아라는 제2의 일터로 출근하는 동료의 고된 현실을 알면서도 ‘힘들면 그만 둬.’라고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일과 가정을 어떻게든 이끌어 가려는 동료의 마음을 이해하고 지지하기 때문이지요.
『가부장 자본주의』는 일과 가정의 문제를 분석하는 최신 경제학 이론을 소개하는 한편 실증적인 데이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역사와 문화의 문제를 살핍니다. 저는 “임금 불평등은 엄마 대 엄마 아닌 사람 사이에 있다.”라는 저자의 통찰에 특히 공감했는데요. 냥이 마케터님은 이 말에 공감이 가시나요?
최근의 경험을 돌아보면 그냥 결혼’만’한 친구들은 사실상 싱글이었을때와 별다를게 없는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하고 싱글인 친구들과 관심사도 별로 다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기혼이냐 미혼이냐보다 ‘아이가 있느냐 없느냐’가 더 큰 차이를 만드는 것 같아요. 저는 결혼 자체도 큰 변화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출산’이 여성들의 혹은 부부의 삶에 엄청난 변화와 시련을 야기하는구나 라는 당연한 생각을 하게 됐어요. 알약 편집자님이 언급한 저자의 띵언이 다시금 떠오르면서 말이죠.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유독 버거웠던 순간이 있었는지”, “ 출산 혹은 육하 휴직 후에 부조리한 대우를 받았던 사례”를 알려 달라는 인스타그램 댓글 이벤트에 참여한 분들의 사연을 보면 세상이 아직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씁쓸한 기분에 빠집니다. 출산과 육아에 따른 불평등을 공감하는 분이 있다면, 이런 불평등이 벌써 옛일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의 생생한 경험을 들려주시면 좋겠어요.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이 불행이 ‘여성’들만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되지 않을까 해요. 드라마 악귀보다 서늘한 댓글 이벤트 많은 참여 부탁드리면서, 저는 이만 악귀를…… 아니, 책을 보러 갑니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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