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비 오는 날과 시

 

 

장강의 맑디맑은 물줄기……
서울국제도서전이 끝나고 조용한 사무실에 돌아와 앉아 있어요. 비 오는 날인 오늘은 하지. 태양이 황도상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때로, 낮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죠.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는 철이니 “하지가 지나면 구름장마다 비가 내린다.”라는 속담도 있대요. 축축한 날 한시 몇 편을 읽어 볼까요?
위승경 「남으로 가는 길에 아우와 헤어지며」
장강의 맑디맑은 물줄기
먼 나그네의 아득한 마음.
꽃잎도 함께 한을 품었는지
땅에 떨어져도 소리 하나 없네.
韋承慶, 南行別弟

澹澹長江水 悠悠遠客情*
落花相與恨 到地一無聲(一)
남역흐로 가ᄂᆞᆫᄃᆡ 아으를 니별ᄒᆞᆷ이라(『언해당음』)

말고 말근 긴 강믈의
멀고 먼 손의 ᄠᅳᆺ지러라
ᄠᅥ러진 꼿치 셔로 더부 한ᄒᆞᆷ은
ᄠᆞ의 일르러도 엇지 ᄒᆞᆫ가지로 소ᄅᆡ 업ᄂᆞᆫ고
*1구는 초 송옥(宋玉)의 「초혼(招魂)」 “넘실대는 강물이여 그 곁에 단풍나무 서 있네.(湛湛江水兮上有楓)”와, 위진(魏晉) 완적(阮籍)의 「영회(詠懷)」 “맑디맑은 장강의 강물, 그 곁에 단풍 숲이 있다네.(湛湛長江水 上有楓樹林)”에서 보듯 이른 시기부터 즐겨 쓰인 표현이다. 長江은 양자강인데 긴 강으로 풀이해도 무방하다.
[평설] 위승경(639~705년)은 하남(河南)의 원양(原陽) 출신으로 자가 연휴(延休)이다. 『신당서(新唐書)』 등에 자세한 이력이 보인다. 이 작품의 작가에 대해 이론이 있다. 『만수당인절구시(萬首唐人絶句詩)』, 『전당시』 등에 최도융(崔道融)의 작품으로 되어 있다. 최도융(?~907년)은 스스로 호를 동구산인(東甌散人)이라 하였는데 호북(湖北) 출신이다. 『전당시』에 80여 수의 시가 전한다.

위승경이 705년 장안 남쪽에 있는 고요현(高要縣)에 좌천되어 갈 때 지은 작품이다. 흘러가는 맑은 강물이 아우와 헤어지는 아쉬운 마음과 호응을 이루면서 시상을 일으킨 것이 묘하며, 꽃잎이 이별을 한하여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땅에 떨어진다 한 것 역시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눈물 흘리는 형제의 정과 연결한 점에서 오묘한 맛을 느끼게 한다. 흐르는 강물에 나그네의 마음이, 떨어지는 꽃잎에 이별의 한이 투영되어 있다.
— 이종묵 평역,
위에서 파란색으로 표시한 건 한문 원문과, 조선 사람이 그 한시를 번역한 거예요. “담담장강수(澹澹長江水)”를 “말고 말근 긴 강물의”라고 번역한 솜씨가 괜찮죠? 위승경이 이 시를 쓴 게 705년이고, 조선 사람의 번역이 실린 『언해당음』은 19세기 책이라니 세월은 까마득한데요. 이 “담담장강수”라는 구절은 위진의 완적(阮籍, 210~263년)이라는 시인이 일찍이 쓴 거래요. 옛사람들의 인용 스케일! 이것을 2022년 “장강의 맑디맑은 물줄기/ 먼 나그네의 아득한 마음”이라고 부드럽게 읽은 이종묵 교수의 해설을 함께 참고해 봅시다.
「열녀춘향수절가」에서 춘향이 이몽룡과 작별하면서 일배주(一杯酒) 가득 부어 눈물 섞어 드리면서 하는 말,
한양성 가시는 길에 강수청청(江水靑靑) 푸르거든
원함정(遠含情)을 생각하고
천시가절(天時佳節) 때가 되어 세우(細雨)가 분분커든
노상행인욕단혼(路上行人欲斷魂)이라
춘향이 이렇게 쓴 ‘문자’는 당시에 나온다. 위승경의 “장강의 맑디맑은 물줄기, 먼 나그네의 아득한 마음(澹澹長江水 悠悠遠客情)”과 두목의 “청명시절 비 뿌리니, 노상 행인 애끊을 때(淸明時節雨紛紛 路上行人欲斷魂)”가 그 출처다. 또 변학도가 남원에 부임하였을 때 호방이 기생을 점고하면서 “차문주가하처재오 목동요지행화”라 행화(杏花)를 부르는데, 두목의 “술집이 어느 곳에 있는지 물었더니, 목동이 멀리 살구꽃 마을 가리키네.(借問酒家何處有 牧童遙指杏花村)”에서 가져왔다. 작가 미상의 시조 “청명시절우분분할 제 노상 행인이 욕단혼을, 묻노라 목동아 술 파는 집이 어디메나 하뇨, 저 건너 행화 져 날리니 게 가 물어보소서.” 역시 두목의 시를 풀어서 노래한 것이다.
평범한 조선 사람들이 두루 즐긴 「열녀춘향수절가」에 입에 밴 것처럼 당시가 튀어나왔고 흥겨운 잔치 자리의 노랫가락에도 당시가 자연스럽게 얹혔다. 춘향과 호방이 당시를 꿰고 있었던 것처럼 조선은 남녀노소, 귀천을 가릴 것 없이 당시를 얼음에 박 밀듯 줄줄 읽었다. 이처럼 당시는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이므로 중국 문학이지만 조선 사람에게도 익숙한 ‘교양’이었다.
당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당시삼백수(唐詩三百首)』를 읽지만, 정작 이 책이 조선에 읽히기 시작한 것은 거의 20세기 들어와서다. 그 이전 조선 사람이 당시에 입문할 때는 『당음(唐音)』부터 읽었다. 그러나 초보자가 보던 『당음』도 무려 1341수를 수록한 거질의 책이어서 여기에 실린 당시를 모두 외기에는 무리가 많았다. 시의 모범이 되는 이백이나 두보의 시가 실리지 않은 것도 불만이었다. 이에 19세기 후반 민간 출판업자들은 『당음』에 수록된 시를 추리고 이백과 두보의 시를 보태어 ‘조선식’ 『당음』을 편찬하였다. 『오언당음』, 『칠언당음』, 『당시장편』 등의 이름으로 간행된 책이 이것이다. 이들은 대중에게 판매하기 위한 방각본으로 간행되었으니 당시 독자층의 수요가 상당하였음을 짐작하겠다. 또 그 인기에 힘입어 20세기 초에도 신활자로 왕성하게 거듭 출판되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까지도 조선에서 당시의 열풍이 이렇게 강하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한문에 능하지 않은 일부 사람을 위해 한시 원문을 한글로 적고 토만 단 책이 만들어졌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한글본 『당시장편』이 그것이다. 굳이 시의 뜻을 알 것까지 없는 사람이 유흥 공간에서 당시를 외거나 노래하기 위해 나온 책인 듯하다. 이 점에서 한글본 『당시장편』에 실린 180여 편의 시는 20세기 전후한 시기 조선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던 애창곡이라 할 만하다.
— 이종묵 평역, ‘머리말’,
“조선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던 애창곡”인 당시 이야기 재밌죠. 끝으로 위승경의 당시를 조선 사람들이 받아쓴 시 두 편을 띄워 보내요. 여러분도 가만히 따라 읽어 보고, 받아 적고, 만약 느낌이 있다면 화답하는 시를 써 보세요. “탁하게 흐르는 한강물/ 먼 노동자의 아득한 마음”…… 답답한 마음이 약간 풀어질지도요.
적막하게 이름난 꽃이 떨어지니 
아득한 먼 길 나선 나그네의 시름.
寂寂名花落 悠悠遠客愁
─ 조현명(趙顯命), 「비 오는데 홀로 앉아(雨中孤坐)」
봄 저물어 버들개지도 함께 한하는데 
배꽃이 야박한 바람에 소리 없이 지네. 
柳絮春深相與恨 梨花風薄一無聲
─ 조면호(趙冕鎬), 「눈을 읊조려 다시 차운하다(詠雪復次前韻)」
— 이종묵 평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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