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어디에서 일하세요?

 

 

번아웃과 이직 없는 일터의 비밀
지난 레터에서 이동하는 시간에 대해 생각해 봤다면, 이번에는 오래 머무는 장소를 한번 들여다봐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사무실로 출근하는 사무직 노동자인 제게 가장 익숙한 만남의 장소는 사무실이에요. 동료들과 대화하고 상사와 마주치며, 하루에도 여러 번 회의실에 둘러앉아 의견과 웃음과 피로를 공유하는 장소죠.
집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던 팬데믹 이후 어떤 이들은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고, 누군가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집에서 일할래? 사무실에서 일할래? 선택할 수 있다니 부럽기도 하지만…… 사실 저는 좁은 집에서 노트북 앞에 앉아 일하는 동안 편한 만큼 답답하기도 했어요. 사무실도, 집도 아니라면 어디에서 어떻게 일해야 할까요?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의 저자들은 새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진짜 유연성은 어떤 모습인가? 하고 말이에요. 문제는 장소가 아니라 더 적은 시간 더 효율적으로 일하도록 일과 일터를 변화시키는 것이란 주장입니다. ‘번아웃과 이직 없는 일터의 비밀’이라는 절박한 부제를 보고 펼치지 않을 수 없었던 따끈따끈한 신간을 함께 읽어 봐요.
사무실이 우리를 괴롭히는 원인일 수 있다. 사람들의 일과를 출퇴근에 맞추도록 강요한다. 예정에 없던 깊이 없는 (가끔 즐겁기도 한!) 회의가 줄기차게 이어지며 주의를 빼앗는다. 실제로 생산적인 것보다도 생산적인 느낌을 주는 일을 더 높이 산다. 사무실은 미묘한 차별(microaggression)과 반복되는 유해한 위계적 행동의 온상이다. 사무실에서 잘나가는 사람들이 거의 항상 사무실 바깥에서 정체성에 기반한 특권을 누려왔거나 그로 인해 높은 자리에 오른 이들이라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재택근무는 의미 있는 통제와 저항의 행위일 수 있다. 그러나 만병통치약이 아니고,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에 자리한 위기를 바로잡겠다는 약속이 될 수도 없다. 앞서 열거한 유해한 역학 관계는 모두 원격근무 세계로도 그대로 옮겨질 수 있다. 특히 노동자 또는 회사가 재택근무를 ‘사무실에서 하던 모든 일을 집에서 하는데 단지 임대료와 공과금을 직원이 부담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면 더욱더 그렇다. 그러므로 이 책을 쓴 목적은 사무실 근무의 가장 유해하고 소외감을 유발하고 짜증 나는 면들로부터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는지 숙고해보자는 것이다. 단순히 업무를 하는 장소를 옮기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과 일에 쏟는 시간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진짜 유연성은 실제로 어떤 모습인가? 그 답을 구하려면 어떤 종류의 과업과 협업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어떤 일이 시차를 두고 이루어질 수 있는지, 사람들이 일주일에 며칠간, 얼마나 오래, 어떤 목적으로 사무실에 있기를 원하는지를 재구상해야 한다. 또 직무를 더 넓게 정의함으로써 장애가 있거나 돌봄 의무와 직장 생활을 아슬아슬하게 병행하는 사람들의 근무 시간 및 근무 장소에 관한 필요를 더 잘 충족시켜야 한다. 또 ‘유연근무’가 일정표 여기저기에 퍼져 있지 않도록 실질적인 경계를 정하고 그 경계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앤 헬렌 피터슨, 찰리 위절, 이승연 옮김,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 10~16쪽에서
“진짜 유연성”이라는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게 돼요. 일과 유연성이라는 조합이 등장하면, 보통 고용 불안정을 심화하고 노동유연화의 혜택을 전부 회사 몫으로 만드는 ‘노동 유연성’을 떠올리게 되어서 의심의 눈초리부터 짓게 되는데요. 그런 방향이 아니라, 내 업무와 협업 방식과 출퇴근 시간과 사무실이라는 규율이 유연해진다는 것은 어떤 걸까, 편집자의 일이 유연해진다면 어떤 변화가 올까 상상해 봐요.
그러면서 팬데믹 기간 동안 겪었던 저의 재택근무를 떠올려 보니, 붉은 얼굴 편집자처럼 집이 곧 일터가 되는 상황의 답답함과 단점들도 따라오거든요. 이런 말을 들은 적도 있어요. 재택근무에는 출근이 없지만 퇴근도 없을 수 있다……. 책장을 좀 더 넘기면 유연근무가 외려 ‘워라밸’을 붕괴(!)시키거나, 사무실 근무의 단점을 지속시킬 수 있다며 이런 말을 해요.
“업무가 일상의 한 부분을 차지해버리고 나면, 그것을 몰아내는 데 정말이지 결연한 노력이 든다. 경계선은 더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가드레일이 필요하다.
[경계선과는] 달리 가드레일은 우리에게 보호가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여 설치된다. 우리가 취약하고 제멋대로라서가 아니라, 오늘날의 일을 견고하게 떠받치는 힘, 특히 성장과 생산성에 대한 강박이 무차별적으로 파괴적이라서다. 이 힘은 우리의 최선의 의도마저 무력화하고, 우리를 불안정하게 만들어서 권력을 얻는다.
가드레일이 없다면, 오래된 사무실의 위계는 스스로 재생산될 것이다. 돌봄 책임이 없는 특권을 누리는 사람이 그런 책임을 분담하고 있는 사람보다, 더 꾸준하게 대면 상호작용을 즐기는 사람이 그런 일이 피곤하다고 느끼는 사람보다 우위에 있다. 팬데믹 이후 유연근무는 그저 이전과 똑같은 커다랗고 불명확한 일덩어리가 되어 늘 유리한 자리에 있던 사람에게 똑같이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앤 헬렌 피터슨, 찰리 위절, 이승연 옮김,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 62~63쪽에서
우리는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니, 장소가 바뀌어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면 시간을 바꿔야 한다는 제안이 설득력이 있어요. 물론 일의 내용도 중요하고요. 저와 함께 사는 사람은 팬데믹의 시작과 함께 전면 재택 근무를 한지 꽤 되었어요. 옆에서 그걸 지켜 보고 있자면 통근 자체의 괴로움에서 벗어난 것은 부럽지만, 까만 코 편집자가 지적한 것처럼 계속 연결된 상태로 도무지 퇴근을 하지 못하는 문제가 매우 커요. 결국 어디서,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일할 것인가를 모두 살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겠죠.
한편 2023 서울국제도서전을 하루 앞둔 민음사 사무실에는 설렘과 긴장감이 흐르고 있어요. 소개 영상을 함께 보고 이번 주 도서전에서 만나요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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