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 영국의 대학도시 여행기

 

 

슈테판 츠바이크의 새 책
5월 1일 노동절은 다들 어떻게 보내셨어요? 저는 미뤄둔 일을 잠시 모른 체하고…… 역시 미뤄둔 집안일을 하고 길게 산책을 다녀왔답니다. 낯익은 동네를 걷고 익숙한 카페에 들르는 것도 좋지만 맑고 따뜻한 날씨에 새로운 곳으로 떠나 보고 싶기도 했어요. 여행길의 공부는 또 새롭게 즐겁지 않을까 상상해 보면서요.
오늘은 세계 각지를 여행했던 20세기 오스트리아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여행기를 함께 읽어 봐요. 1907년, 방학을 맞은 대학 도시 옥스퍼드에 대한 묘사가 재미있어요.
옥스퍼드에는 그저 고요함, 후덥지근한 여름의 고요함, 숨차는 여름의 고요함, 활기 없는 고독, 침묵 그리고 잠만이 존재한다. 마치 누군가 잠들어 있는 방을 지나가듯 사람들은 조심스레 이 집에서 저 집으로 건너다니고, 엿듣는 사람처럼 살그머니 햇살 가득한 마당으로 나가서, 행여 자기 걸음이 포석을 울리면 거의 겁을 먹기까지 한다. 대학 생활의 다양한 가면이 진짜 얼굴에서 떨어져 나와 흐릿한 잠 속에서 쉬고 있다. 이처럼 옥스퍼드는 어슴푸레한 여름날에 모습을 드러낸다. 입상처럼 냉정하지만 여러 색깔로 가득 차 있는, 심오한 의미가 담긴 옆얼굴을 보여 준다.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선을 진심으로 지키려 하는, 강한 유혹을 느낀다.
두세 달 동안 도시는 이렇게 눈꺼풀을 닫고, 입을 다물고, 피를 멈춘 채 지낸다. 매해 영국 전역에서 몰려드는 수많은 젊은이들, 대학생 삼천 명의 즐거운 생명력 대신에 고루하고 시골스러운 고요함이 사방에 깔려 있다. 영국, 불충분한 힘의 나라가 자신의 기력을 한데 집중시키기 때문이다. 포츠머스, 리버풀, 사우샘프턴 및 다른 거대한 항구 도시들이 거대한 조직에게 밥을 먹여 주는 손이라면, 런던은 조용하게 진동하며 영원히 일하는 심장, 끝없는 박동으로 모든 피의 물결을 혈관을 통해 막힘없이 내몰아 대는 심장이다. 그렇다면 옥스퍼드는 영국의 뇌로서, 교육받고 생각하는 힘이다. 혹은 — 골상학적으로 더 정확히 말하자면 — 뇌의 절반으로, 다른 절반은 케임브리지일 터다.
— 슈테판 츠바이크, 「옥스퍼드」,
이미선 옮김, 『수많은 운명의 집』 중에서
“그리고 잠만이 존재한다.” 방학을 맞은 캠퍼스의 소곤소곤함을 떠올리면서 재미있게 읽었어요. 츠바이크의 옥스퍼드 묘사에는 ‘좋은 시절’의 활기가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2023년 이 글을 읽는 저는 대학이 도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돼요. ‘잠자는 도시’는 나른하고 기분 좋은 편안함을 주지만, 대학의 구성원들이 떠나간 빈 도시를 지칭하는 ‘유령 도시’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마음이 복잡해져요.
1924년의 파리 여행기도 읽어 볼까요? 파리에서 뉴욕 같은 미국 거대 도시의 속도감을 느낀 츠바이크는 ‘올해만큼 파리가 눈부시고 강렬했던 적 없었다’며 감탄합니다. 하지만 행복한 만큼 피로도 찾아와 “고요하고 색다른 박자”를 느끼기 위해 샤르트르 대성당으로 향합니다. 아름다운 건축물을 세세하게 들여다보면서 깊이 있는 아름다움을 느껴요. 하지만 샤르트르 대성당 같은 작품은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을 거예요.
그렇다, 인간은 더 이상 대성당을 짓지 않는다. 그런 불변의 형상들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니 잠시 우리 시대가 빈곤하게 느껴진다. 우리의 계획은 성급한 목표만을 노리고, 우리의 리듬은 보다 성마르게 움직인다. 그러나 현대의 성과는 더 이상 전 세대를 살피지 못한다. 아니, 개인의 삶조차 살피지 못한다. 우리, 이야기하는 불꽃 덕분에 단 일 초 만에 다른 대륙으로 말을 전할 수 있게 된 우리는 느린 돌 속에, 무한한 세월 속에 우리 존재를 표현하는 방법을 잊었다. 우리의 경이는 더욱 편리하고 더욱 개념적인 것이 되었으며, 우리의 꿈들 역시 덜 구체적인 무언가로 변했다. 마치 숭고하게 낯설어진 것으로부터 작별하듯, 파르테논 신전이나 기자의 피라미드 같은 것과 작별하듯, 영혼은 이렇게 거대한 형상과 작별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부터 세상이 얻었던 영원성을 잃었음을 잘 안다. 온 민족의 정신을 탁월하게 구체화할 수 있는 능력, 한 시대의 천재를 하나의 작품 속에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말이다. 이것은 사라졌다. 인간들은 더 이상 대성당을 짓지 않는다.
이제 기차들이 저녁의 어둑한 풍경을 지나서 쏜살같이 되돌아가는 저곳, 눈길이 아직 거대한 도시를 예감하지 못하는 저곳, 파리의 분위기가 이제야 약간 감지되는 저곳에서 이글대는 반구가 솟아오른다. 이윽고 지평선 위로 눈에 보이지 않는 붉은 아치가 하늘까지 드리운다. 그것은 파리에서 내뿜는 열기가 만들어 내는 불의 원형이다. 돌과 지지대 없이 매일 밤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또 다른 대성당이 — 수천 개의 네모진 돌로 지어진 샤르트르 대성당처럼 — 빛과 전기의 불꽃으로 기묘하게 솟아나고 있다. 북적대는 도시 위에서 빛으로 작열하는 이 대성당, 우리 시대에 가장 장엄한 이 대사원은 매일 밤 수많은 전기 에너지를 통해, 뜨겁게 번쩍이는 수백만의 생명에 의해 확고부동하게 서 있다. 이 대사원은 샤르트르 대성당을 세웠던 것과 똑같은 믿음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똑같이 활활 타오르는 의지로, 똑같이 무한한 삶의 에너지로 만들어졌으리라. 장엄하게 아치를 이루고 초현실적으로 빛나는 대사원은, 파리의 이 새로운 대사원은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는 밤 속에 우뚝 솟아 있다. 어쩌면 예전의 건축 장인들은 오늘날의 대사원을 역시 장엄하고, 웅장하고, 신성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그들이 전해 준 작품들을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듯 말이다. 각 시대는 지상의 풍경 속에 각기 다른 기호로 자신들의 역사를 써 놓는다. 이처럼 삶의 의지로 시간의 틈새에 새겨 넣은 하나의 기호를 그리고 또 다른 기호를 (이 기호들은 서로 정말 낯설게 보인다.) 읽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보다 더 놀라운 일은 없다.
— 슈테판 츠바이크, 「샤르트르 대성당」,
이미선 옮김, 『수많은 운명의 집』 중에서
어머, 이처럼 자연스럽게 나온 대학 이야기! 츠바이크의 새로 나온 여행기를 덕분에 맛보았네요. 이 최후의 유럽인의 기록을 읽으면 좋다가도 좋지 않은…… 양가감정이 들어요. 전통과 현대의 분열이 더 격심한 한국에 살고 있어서겠죠.
웅장한 대성당은 없고 뾰족한 수많은 십자가가 있는 한국 여행을 계속하면서 저는 그 모든 “기호”를 같이 보고 대화할 상대가 있어야 하고, 대화를 곱씹는 일까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돌아보면 그렇게 죽이 잘 맞았던 상대일지라도 대화가 통한 적이 없다는 걸 알게 되잖아요. 그러면 지난 대화를 복기하면서 여전히 내 손안에 쥘 수 있는 진실이 있는지를 애써 찾아야 하는 거죠. 걷기의 전문가가 자신의 출발점이라고 꼽는 책에서처럼요.
1941년 10월 말이었다. 보어와 그의 전 제자이자 협력자 하이젠베르크가 다시 함께 산책을 나섰다. 주변의 모든 것과 둘 사이의 관계까지 모조리 변해버린 상황이었다. 유대인 어머니를 둔 보어는 머지않아 조국인 덴마크를 떠나게 되기는 하지만 당시에는 유대인을 구출하기 위한 덴마크인들의 노력에 앞장서고 있었고, 계속 독일에 머무른 하이젠베르크는 확실히 나치당의 환심을 얻고 있었다. 사실 하이젠베르크가 독일에서 하고 있던 일은 리제 마이트너의 이전 협력자인 한을 비롯한 몇몇 사람과 협력해 실라르드가 두려워한 폭탄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나치 독일이 자행한 인종 청소로 인해 독일 물리학자들의 입지가 약해진 상황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하이젠베르크는 덴마크를 찾았다. 공식적으로는 과학 학술대회 참석을 위해서였다. (……) 그러나 산책에서 돌아온 보어는 자신의 옛 협력자인 하이젠베르크가 해준 말이 나치가 성공적으로 핵폭탄을 개발 중이라는 말이라고 확신했고, 연합국에 그 사실을 알렸다. 보어의 경고로 미국은 핵폭탄 프로그램에 더 박차를 가했고 독일인들이 (어쩌면 하이젠베르크가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탓에) 실패한 부분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
폭탄이라는 결과물을 낳은 물리학은 사람들이 폭탄을 향해 전진하기 전에 걸었던 다른 여러 산책길처럼 어떤 다른 세상, 더 풍요롭고 더 복잡한 이야기로 이어지는 길이었던 것 같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보어의 상보성 원리는 고전 물리학과 데카르트 철학이 제시했던 것보다 더 정교한 진리 모델을 보여주었다. 그전까지의 과학적 방법은 참과 거짓, 관찰자와 피관찰자의 명확한 분리를 전제로 했지만,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보어가 제시한 개념들 속에서는 그런 구분이 차츰 희미해졌다. 그들이 제시한 이 세상에 관한 모델에 따르면 눈에 보이는 것은 그것을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졌고, 보는 사람의 객관성은 약화되었으며, 관찰이 일종의 개입이 되었고, 그 어떤 입장도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었다.(이는 물리학과 매우 다른 영역에서 뉘른베르크 원칙을 통해 확인하게 된 사실이기도 하다.) 최근 많은 작가가 양자역햑을 불교, 도교, 기타 신비주의적 전통에서 해석하려고 시도했다.(그리고 보어는 덴마크의 코끼리훈장을 받고 문장을 새길 자격을 얻었을 때 중국의 ‘음양’ 상징을 택했다.) 하이젠베르트는 이렇게 썼다. “양자역학에 대한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우리를 개개인으로 간주하지 않아도 실로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자연과학이 인간에 의해 구성되는 학문이라는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고 이미 앞에서 지적한 바 있다.” 그는 더 나아가 과학이 단순히 자연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와 자연, 즉 과학자와 “우리의 질문 방법을 통해 노출되는 자연” 사이의 상호작용을 기술하는 학문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과학은 질문에 따라 대답이 달라지는 종류의 대화이며, 그 대화의 기록물인 서사에는 질문자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 리베카 솔닛, 양미래 옮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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