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거짓말 게임

 

 

드라마 「사랑의 이해」 이야기
슈베르트와 뮐러의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를 띄워 보낸 지난 편지에 반가운 반응을 받았어요. 시와 음악을 모두 즐길 수 있는 편지여서 좋았습니다. 덕분에 시 낭독도 하고 클래식도 들어보네요.” 낭독을 어떻게 하셨는지 듣고 싶네요! 낭독을 함께하면 내가 듣는 내 표현도 흥미롭고, 옆사람이 예상 밖의 방식으로 읽는 걸 듣기도 재미있으니까요.
오늘은 따끈따끈한 신간 《릿터》를 읽어 봐요. 이번 주제가 ‘최신 금기’라고 해서 부랴부랴 펼쳐 봤죠. 동물과의 사랑이라는 희대의 주제를 다룬 하마노 지히로의 글이 실려 있어서 가슴이 벅찼구요. 최고의 정치 에세이 『우리를 바꾸는 우리』의 저자인 조무원 연구자의 글을 탐독했습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사랑의 이해」에 대한 유머 있고 예리한 비평에 표지 그림처럼 불꽃에 휩싸였어요…….
최근 종영한 드라마 「사랑의 이해」에는 쉽게 말하지 못하는 진심을 말하기 위해 ‘거짓말 게임’을 활용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거짓말만 해야 하는 ‘거짓말 게임’은 진실만을 말해야 하는 ‘진실 게임’에 비해 시답잖은 게임 같아 보인다. 드라마는 같은 직장 안에서 이루어지는 지난하고 복잡한 남녀 간 사랑의 문법을 보여 주던 차. 여자 주인공인 수영은 비정규직을 벗어났지만 대학을 나오지 못했고 직군의 차이라는 경계선에 따라 절반의 시민권만 가진 구성원으로 묘사된다. 반대로 온전한 시민권을 가진 남자 주인공 상수는 수영이 보기에 그 경계선 밖에서 자신을 만나기를 주저한다. 어제 로또 1등에 당첨됐다는 둥 뻔한 거짓말을 주고받던 남자와 여자의 대화는,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았어요.”라는 수영의 ‘거짓말’에 요동친다. 그러곤 눈물을 글썽이며 수영은 말한다. “거짓말 게임 끝!”
이 요상한 장면을 보면서 나는 거짓말 게임이 남녀 간의 사랑보다도 정치를 이해하는 데에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특히나 요즘은 누군가와의 대화 속에서 “사실 저는 1번 (혹은 2번) 찍었어요.”라고 말하기 쉽지 않다. 오히려 “저 인간 1번(2번) 찍었을 것 같다.”라고 낙인찍는 것은 쉽다. 성별이나 나이, 출신, 사는 곳, 옷차림, 심지어 머리 스타일로도 대화를 대신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거짓말 게임’이라는 장치 없이도 “처음부터 1번(2번)을 좋아했어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왜 우리는 나의 정치적 지향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게 됐을까? 말하자면 공공연하게 요란한 정치는 사람 속에서는 왜 금기가 되고 있을까? (……)
‘거짓말 게임’을 제안한 수영을 두고 누군가는 이 요망한 여자가 고단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실제로 그는 극중에서 무성한 소문과 뒷말의 주인공이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누군가와 동등한 관계로 만나고 싶어 하는 수영의 고군분투를 읽었다. 상수에게는 단순한 사랑의 문제였던 것이 수영에게는 위계의 문제로 느껴진다. 정규직이 되었음에도 서비스 직군과 일반 직군이라는 구분은 여전하고, 차별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은행원 수영의 노력은 상수와 벌이는 감정의 줄다리기와 언제나 겹쳐 있다. 같은 직장 내에서의 연애라는 설정은 도대체 이들이 언제 일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자아내지만, 사회에서의 위계, 경제적 차이, 그로 인해 생기는 문화적 격차라는 힘의 위계 속에 인물들을 촘촘하게 배치하는 역할을 한다. ‘거짓말’을 통해서만 진심을 전달할 수 있는 수영의 처지는 동등한 관계가 되기 위해서 오히려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생긴다는 진실을 드러낸다. ‘거짓말’은 힘의 위계적 배열에서 벗어나려는 약자의 기술이다.
— 조무원, 「정치를 이야기하기 위한 금기 만들기」,
영상도 가져왔습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았어요.”라고 ‘거짓말’을 하는 것도 자극적이지만, 영상 제목이 더하네요. ‘”손잡고 싶다..” 문가영, 거짓말 게임을 핑계로 전하는 진심’.
세상 만물에서 힘과 투쟁을 보는 정치학 연구자의 글을 읽으면 항상 ‘웃다가 생각해 보니 웃을 때가 아님’ 상태가 되는데요. 글쓴이는 ‘예금 업무만 보는 직원’인 수영과 계장급인 상수의 사랑싸움을 서로 동등해지려는 지난한 과정으로 재해석하고 있어요. 글의 하이라이트는 수영의 대사를 우리도 따라 해 보자는 대목입니다. 나를 열등하게 취급하는 상대방에게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말하자는 거예요. “사실 처음부터 당신이 나와 동등하다고 생각했어요.” 아악……. 자신만이 잘나고 옳아서 젊은이를, 아랫사람을, 편집자를, 여자를 무시하는 사람에게 울면서(술자리에서) 공격했던 기억에 분노와 수치심의 불길이 일어요.
한편 한국 사회의 금기들을 다루는 소설가 이미상의 인터뷰에서 불길을 식히기도 했어요. 상대방이 그거 위험하다고, 문제가 심각하다고 정색할 때 바람을 빼는 방식이죠. 다시 보니 “속으로” 그러는 게 눈에 띄는데요…….
수희   최근 몇 년간 ‘트리거 눌린다’라는 표현이 유행하고 있잖아요. 개인적으로 그 표현이 싫었는데, 또 어떤 상황에서는 너무 적절해서 달리 쓸 말이 없더라고요. 내가 지금 정말 ‘트리거’가 ‘눌렸네’ 하고요.
미상   ‘트리거 눌린다’도 흥미로워요. 저는 ‘트리거’를 트라우마의 맥락에서 사용해 왔는데 점차 기분이 나쁘다, 상처를 받았다, 자극을 받았다, 정도로 쓰이기도 하는 것 같아요. 사실 모르겠어요. 보수적인 입장에서는 용어를 정확한 뜻에서 어긋나게 사용하면 함부로 사용한다고 지적하겠지만, 언어란 원래 돌아다니면서 훼손되는 것이고, 그게 언어의 자연스러운 속성이라고 생각해요. 가끔 개념어를 잘못 사용하면 전공자분들이 아, 그건 좀 위험한데요, 하는 걸 보는데요. 그럼 저는 속으로 그래요. ‘지금 누구 죽었나요?’(일동 폭소) 물론 정확한 뜻을 알면 좋죠. 그러나 의미가 훼손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고, 부끄러움 없이 뜻을 찾아보고 물어볼 수 있도록 허들 낮은 문화를 만드는 것이 궁극적으로 더 이롭지 않나, 싶어요. 그냥 저부터 말을 편하게 쓰고 수치심 없이 묻고 배우고 싶어요.
— 이수희 인터뷰 ‘첫 책을 내는 기분’,
「탈고 후에 부치는 편지: 이미상」,
아름다운 가곡 다음으로 불타는 《릿터》 표지라니! 삼선 슬리퍼를 신고 안광을 빛내는 표지 속 인물은 하루 종일 무언가에 대해 토론하고도 못다 한 이야기가 남아 절대 가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는 듯해요. 아아, 눈 마주쳤다…….
거짓말에 서툴고 성미가 급한 저는 “몇 번 뽑으셨어요?” 하는 금기를 서슴지 않고 꺼내는 편인데, 돌이켜 보면 그 역시 ‘이 사람과는 말이 통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성립한 대화가 아니었나 합니다. 아직 솔직해질 수 없는 상대와 나누는 대화는 거짓말의 연속이죠. 리트리버 편집자님이 공유해 준 사랑의 거짓말 게임 장면에서는 긴장과 체념 속 약간의 희망이 엿보인다면, 조직에서의 거짓말 게임은 곧잘 무엇이 참말이고 무엇이 거짓말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 빠지곤 합니다. 조무원 연구자는 이렇게 정리하고 있어요.
“힘의 위계가 만드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의 문법을 제대로 이해할 때 우리는 칭찬을 듣고 그렇지 않을 때 총살당한다.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반문하고 싶다면 당신은 조직에서 누군가로부터 이미 암묵적 총살을 당했을지 모르니 주변을 잘 둘러보길 바란다. 우리는 이러한 고맥락의 충성과 반역의 게임을 수행하는 것을 눈치 있는 사회생활, 즉 정치라고 부른다. 수영이 분투했던 것처럼 말이다.”
요즘은 조직 생활뿐 아니라 일상 대부분에서 거짓말 게임을 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어요. 아니, 거짓말 게임조차 하기 싫어서 그냥 웃고 넘기게 된달까요? 이미상 소설가의 인터뷰에 나온 ‘트리거 눌린다’와 같은 표현을 보고 들을 때면 아주 가끔 ‘나도 나도’ 싶고 대체로 자주 ‘싫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마냥 웃음으로 긴장을 풀 수 없다면 거짓말하기보다 나의 무지나 약함을 70퍼센트 희석한 버전으로 내보이고 싶어요. 그 지점에서 몇 번 더 반응을 주고받으며 위험한, 불타는, 끝없는 대화로 나아갈 수 있겠죠.
민음사
1p@minumsa.com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 1길 62 강남출판문화센터 5층 02-515-2000
수신거부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