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물방앗간 젊은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통영음악제에 다녀온 편집자들
시에서 시로 이어지는 지난 편지는 어떻게 읽으셨나요? 이번 편지에서 소개해 드리고 싶은 작품도 시예요. 19세기 독일 시인 빌헬름 뮐러의 연작시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에서 시냇물 소리를 따라 방랑하던 젊은이는 물방앗간에서 아름다운 아가씨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집니다.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둥근 달이 떠 있고 꽃들이 피었는데 젊은이의 마음은 기쁨과 초조와 호기심과 슬픔으로 요동치고 있어요.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는 뮐러의 시에 곡을 붙인 슈베르트의 가곡으로 유명한데요. 친구 집에 놀러갔던 슈베르트가 책상 위에 놓인 뮐러의 시집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허락도 안 받고 집에 가져가 곡을 써 버렸다고 해요.
한편 편집부는 지난 주말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마티아스 괴르네가 부르고 세르게이 바바얀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가곡 무대를 함께 보았어요. 조용한 데에서 혼자 읽는 시도 좋지만, 역시 함께 보고 들으면 서로의 감상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아요.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를 함께 읽어 볼까요?
비처럼 흐르는 눈물
우리는 다정하게 어깨를 맞대고
시원한 오리나무 그늘 아래 앉아 있었네,
우리는 다정하게 어깨를 맞대고
졸졸대는 냇물을 내려다보았네.
달님이 둥실 떠올랐고,
별들도 따라서 반짝였네,
우리는 다정하게 어깨를 맞대고
은빛 거울 속을 들여다보았네.
내 눈에는 달님도 보이지 않았고,
반짝이는 별들도 보이지 않았네,
나는 오로지 그녀의 모습만을,
그녀의 두 눈만을 바라보았네.
그녀의 두 눈이 행복한 냇물에서
춤추며 올려다보는 것을 보았네,
물가에 핀 파란 작은 꽃들도
춤추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네.
그리고 하늘이 몽땅
냇물 속에 가라앉은 것 같았네,
그 깊은 냇물 속으로 나를
끌어들이려 하는 것 같았네.
개울에 비친 구름과 별들 위로
냇물은 즐겁게 흘러갔네,
졸졸졸 소리 내며 노래했네:
“친구여, 친구여, 나를 따라와요!”
그때 내 눈에선 눈물이 흘렀고,
거울의 표면이 어지럽게 흔들렸네;
그녀는 말했네: “비가 올 것 같아요,
안녕! 이만 들어가 봐야겠어요.
칠현금의 초록색 리본을 풀어
“저 고운 초록색 리본이
벽에 걸려 시들다니 안타까워요,
초록색은 내가 좋아하는 색인데!”
그대는 오늘 내게 그렇게 말했지;
나는 당장 리본을 풀어 그대에게 보내네:
이제 초록색을 실컷 즐겨 다오!
그대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 흰색이라 해도,
초록색은 초록색대로 멋있어,
나도 그 색이 좋다네.
우리의 사랑은 늘 푸른색이기에,
희망은 멀리서 파랗게 피어나기에,
우리는 초록색을 좋아한다네.
이제 초록색 리본으로 우아하게
그대의 머리를 묶어요,
그대도 초록색을 좋아하니까.
그러면 나는 알겠네, 희망이 깃든 곳,
그러면 나는 알겠네, 사랑이 깃든 곳,
이제 나는 초록색이 정말 좋아졌네.
시든 꽃
그녀가 내게 건네준
너희 모든 꽃들아,
나와 함께
무덤 속으로 가자.
너희는 왜 모두들
날 슬픈 눈으로 쳐다보니?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꼭 아는 것 같구나.
너희 모든 꽃들아,
왜 그리 시들고 창백하니?
너희 모든 꽃들아,
무엇에 그리 젖었니?
아, 운다고 오월의 초록빛
되돌아오지 못하고,
죽은 사랑 다시
되살아나지 않으리.
봄이 오고,
겨울이 가면,
풀밭에는
꽃들이 피어나겠지.
그리고 작은 꽃들은 나의
무덤 속에 누워 있겠지,
그녀가 내게 건네준
그 모든 꽃들은.
어느 날 그녀가
내 무덤가를 지나며
‘그 사람은 진실했어!’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면,
너희들 모든 꽃들아,
어서 나와라, 어서 나와라!
겨울은 가고,
오월이 찾아왔으니.
— 빌헬름 뮐러, 김재혁 옮김,
『겨울 나그네』 중에서
사실 저는 가사가 적힌 팸플릿을 챙기지 않은 바람에 내용을 알아듣지 못한 채로 공연을 보았는데요. 내용을 모르니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소리와 몸짓들이 기억에 남아요. 큰 음악당을 가득 채운 목소리, 발뒤꿈치부터 어깨와 손까지 나풀나풀 움직이는 몸짓. 알라딘 램프에서 튀어나오는 지니처럼 열린 그랜드 피아노를 잡고 피아노 안팎과 무대 앞뒤를 오가는 움직임도요.
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순간은 공연이 끝난 뒤 동료의 설명과 함께 연주를 다시 한번 들었을 때였어요.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는 시냇물 소리 그리고 흐르는 눈물이었구나, 격정적인 노랫말은 질투의 소리였구나 다시 한번 곱씹었던 순간들입니다.
아…… 노래들이 계속 맴돌아요! 뮐러와 슈베르트의 연가곡은 『겨울 나그네』를 줄기차게 들었는데, 연주회에 가는 김에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를 공부하니 무척 즐거웠어요. 피아노 반주가 콸콸 졸졸 철철 똑똑 돌돌 줄줄 하면서 물방아, 시냇물, 빗물, 눈물 소리를 표현하는 것도 신기했구요. 붉은얼굴 편집자님 관찰처럼 가수의 몸짓을 지켜보기가 진정 재밌었죠.
뉴스레터의 강점을 살려 노래도 한 곡 함께 들어 볼까요? 연가곡의 첫 번째 노래 「방랑」인데요.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의 우렁찬 목소리와 유머 있는 몸짓에 시작부터 빠져들었던 기억이에요. 특히 1:36 구간에서 물살에 구르는 돌을 노래하는 부분을 들어 보면요.
물방아의 돌도, 아무리 무거워도,/ 물방아의 돌도!/ 물방아의 돌은 기쁘게 윤무를 추며,/ 좀 더 빨리 구르고 싶어 한다네,“(Die Steine selbst, so schwer sie sind,/ Die Steine!/ Sie tanzen mir den muntern Reihn/ Und wollen gar noch schneller sien,/ Die Steine.)”
돌이라는 뜻의 독일어 “슈타이네”라고 힘차게 발음하면서, 기쁘게 좀 더 빨리 구르고 싶어 하는 돌을 표현하면서 괴르네 님이 진짜 어깨춤을 췄는데 방랑의 신남이 그대로 전해졌거든요. 문득 이 연주회를 뮐러가 본다면 얼마나 재미있어할지 상상되네요.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첫머리에 붙은 「시인의 머리말」 일부를 끝으로 보내드릴게요.
시인의 머리말
그대들을 초대하고 싶다, 어여쁜 숙녀, 현명한 신사들이여,
그대들은 멋진 이야기를 듣고 보는 것을 좋아하니
반짝반짝 빛나는 새 연극을 보여 주겠다,
보지도 듣지도 못한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소박한 말로써, 조금도 꾸미지 않고 다듬어,
고상한 독일식 거칢으로 돋보이게 하고,
무리 지어 다니는 병사들 속의 젊은이처럼 호기 있게,
그러면서도 가정을 위해서 조금 유익하게 하겠다:
이 정도로 권하는 말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내 말이 마음에 드는 사람은 어서 들어오라. ……
하지만, 물방앗간에서 가장 멋진 일이 무엇인지는,
나의 일인극 주인공이 그대들에게 말해 줄 것이다;
내가 직접 그걸 말한다면, 그의 연극을 망치는 일이다:
그럼 이만 줄이니, 즐거운 구경이 되길 바란다!
— 빌헬름 뮐러, 김재혁 옮김,
『겨울 나그네』 중에서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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