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인터넷과 현실 중 어느 쪽으로 가지?

 

 

온라인이냐 오프라인이냐
한편을 같이 읽어요! 무더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한편》 8호 ‘콘텐츠’를 둘러싼 글을 보내 드린 지도 세 달째. 그동안 콘텐츠에 관한 생각을 이어 오면서 편집부에서는 만남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어요. 콘텐츠와 ‘나’가 독대할 때의 주의산만, 흥분, 아찔함, 외로움, 암담함……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데, 어디에서 만나서 어떻게 나눌 것이냐가 고민인데요.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서점을 그런 만남의 장소로 만든 기획자의 책을 펼쳐 봤습니다. 일본 츠타야서점 이야기예요.
현실적으로 내게도, 인터넷과 현실 중 어느 쪽으로 나아가야 할지 판단을 내려야 하는 분기점이 이미 존재했었다. 마침 그 일은 20세기에서 21세기로 이행하는 전환기에 일어났다.
당시에 CCC는 인터넷을 통해 컬처 콘텐츠를 제공하는 ‘TSUTAYA online’ 서비스를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1999년, 아마존이 일본에 진출하기 바로 전해에 해당한다. 만약 그 시점에 CCC가 당시 가지고 있던 모든 경영 자원을 인터넷 사업에 쏟아붓기로 결단을 내렸다면 일본 온라인 유통의 패권을 움켜쥐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그 시점에서는 인터넷 환경이 지금처럼 빠르게 진화하여 일상생활에 짙게 침투하리라는 사실을 내가 완벽하게 읽어 내지 못했다. 그러나 설사 충분히 예상했다고 해도 나는 비즈니스를 인터넷 사업으로 특화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TSUTAYA는 전국에 1400여 매장을 거느리고 있는데 그중에서 CCC 직영 매장은 약 100군데 정도다. 나머지는 프랜차이즈를 통한 전개다. CCC에 신뢰를 가지고 TSUTAYA의 미래를 믿어 준 프랜차이즈 오너들이 있었기에 현재의 1400여 매장 또한 존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출발 당시부터 그들과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을 찾는 것이 내 진짜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인터넷 시대에 어떻게 해야 오프라인 매장의 매력을 창출해 내고 표현해 낼 수 있을까. 그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나에게는 ‘기획’이라고…….
이런 점에서 보면, 기획은 ‘사명’과 같은 의미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이 탄생했고 ‘하코다테 츠타야서점’이 완성되었다. 그곳들은 실물 매장이 인터넷 사회에서도 충분히 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내 나름대로의 사명감에서 탄생한 것이기도 하다. 2000년 1월 1일 오전 0시 정각, ‘SHIBUYA TSUTAYA’의 문을 열었다.
물론, 2000년대 전후에 내가 내린 결단이 ‘CCC가 인터넷을 버리고 현실을 찾았다.’라는 의미는 아니다. 2002년에 우리는 인터넷 택배를 이용한 DVD・CD 렌털 서비스 ‘DISCAS’를 시작했고, 이 기획은 현재 회원 수 약 150만 명을 넘는 ‘TSUTAYA DISCAS’로 발전했다. 즉,(글로 적고 보니 고루한 느낌도 들지만) 인터넷과 현실의 진정한 시너지를 찾는 것이 CCC의 입장에서 볼 때 최고의 선택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CCC는 인터넷과 현실 세계 양쪽에서 사업을 전개하는 기획 회사다. 바로 그 때문에 나타나는 실물 매장의 가치도 있다. 그 부분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싶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 자신이 살아 있는 사람들이 북적이고 살을 스칠 수 있는 현실 공간을 보다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현실 세계의 소매점은 ‘인터넷 기업이 운영하는 상점’ 이외에는 살아남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현실적인 공간을 좋아한다.’라는 말을 해 놓고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 같지만 실물 매장의 미래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우선 오프라인 매장과 인터넷상의 가상 매장을 냉정하게 비교해 보자. 첫 번째 차이는 ‘매장의 넓이’다.
현실 세계의 매장은 당연히 매장의 면적에 제약을 받기 때문에 상품을 진열하는 공간에 한계가 있다. 한정된 공간에서 수익률을 높이려면 팔리지 않는 상품을 진열해 둘 여유가 없다. 잘 팔리는 상품만 진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상품의 라인업은 새로울 수 없고 획일적으로 흐르기 쉽다. 그것은 매장의 매력 저하, 즉 매장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의 감소로 이어진다.
한편, 가상 매장에서는 상품을 진열할 공간에 제한이 없다. 상품을 비축해야 할 창고는 필요하지만 실제 그 비용을 따져 보면 실물 매장을 구상하는 금액과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게다가 인터넷 공간에선 볼 수 있는 모든 상품을 망라한 라인업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고객 가치의 차이는 더욱 현저해진다.
특히 골프 용품이나 가전제품 등은 기술 혁신 주기가 빠르다. 새로운 상품을 즉시 매장에 진열해 놓지 않으면 고객 가치는 순간적으로 저하되어 버린다. 그러나 현실 세계의 매장에서는 예전 상품이 판매되어 공간이 비지 않는 한, 최신 상품을 진열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 어렵다. 따라서 판매가 잘 되는 상품을 중심으로 갖춰야 하지만 최신 상품은 수량을 확보해 진열하기 어렵고 또 최신 상품이 없으면 고객은 발길을 돌리게 되니, 이를테면 패배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가상 매장에서는 그럴 걱정이 없다. 재고 상품은 사이트 뒤쪽 계층에 배열해 두면 된다. 어차피 그 상품 자체는 여전히 창고에 있다. 언젠가는 팔 수 있다. 그때까지 그냥 내버려 두어도 큰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다. 즉, 비가동 재고품이 매장 공간을 차지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항상 최신 상품을 진열할 수 있다.
그렇다고 현실 세계의 모든 상점이 사라지고 인터넷 상점에서만 상품을 구입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기획은 반드시 ‘피부 감각’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고객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무엇을 제공해야 고객 가치의 증대와 연결되는지를 포착하려면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정말로 고객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그것이 현실 세계의 매장이다.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을 찾는 고객들이 이 공간의 어디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 보이는가, 하는 관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발상의 힌트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나는 사무실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 내부를 돌아다니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때문에 스케줄 관리를 하는 비서가 꽤 힘들어한다. 하지만 그 시간을 줄이고 사장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을 늘린다면 사장 자리를 계속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기획 회사의 사원으로서 나는 스스로에게 실격을 선언할 것이다.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 한편, 그래도 현실 세계와 인터넷을 비교하는 경우에 인터넷에 그만큼의 우위성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그보다 현실 세계에 이 정도의 제약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현실 세계의 매장만으로 성장을 실현하는 일은 매우 어렵게 느껴진다. 공간을 압박하는 비가동 재고품은 가격을 인하하여 판매하는 것 이외에는 처리할 방책이 없다. 그렇다면 결국 성과 없는 가격 경쟁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실 세계도 인터넷 기업이 운영하는 매장을 활용하여 살아남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인터넷 통신 판매와 현실 세계의 매장, 이 양쪽을 보유한 기업은 인터넷에서의 판매 경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고, 현실 세계의 매장은 ‘인터넷 기업에 의한 지원’을 통해 큰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을 개입시켜 얻은 거대한 정보 처리와 비용이 들지 않는 재고 관리를 무기로 고객과의 접점인 현실 세계의 매장을 기획, 조합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경합을 벌이는 매장은 새로운 고객 가치를 창조해 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 마스다 무네아키, 이정환 옮김,
『지적자본론』 96~102쪽 중에서
인터넷과 현실, 둘 중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 동네서점에서 만날까, 줌 미팅으로 만날까를 두고 고민했던 지난 한편 회의가 떠올랐어요. 편안한 분위기의 서점에서 소수의 독자들과 가깝게 소통할 것인가, 아니면 댓글창에서 더 많은 독자들과 소통할 것인가!
위의 글에서는 인터넷에 우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그러니 그것을 이용하면서 오프라인 매장만의 매력을 갖춰야 한다는 방향성이 뚜렷하고 날카롭네요.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는 미래’라는 부제가 눈에 들어오는데, 다가오는 만남을 어떻게 디자인할지 더 고민해 봐야겠어요. 그런데 그 회의는 회의실에서? 아니면 채팅창에서?
내일의 회의를 어디에서 할 것인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며 그때 사정에 따라 정해야 할 영원한 고민거리네요.  ‘만남 잡기’가 왜 이토록 골치 아픈가를 토로하면서 오늘 편지를 시작했는데, ‘디자인’을 짚으시니 문득 ‘만남 디자인’이란 그 자체로 중요한 일이라는 게 상기돼요. 제가 잊지 못하는 (또) 아래 구절도 같이 읽어요.
모두가 스스로를 조직한다. 이게 바로 민주주의의 기반이야. 사실 아주 피곤한 일이지. 조직을 만들어 뭔가를 할 때 언제, 어디서, 어떻게, 몇 명이 모여서 뭘 할지 결정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잖아. 모임을 언제 공지할 것인가부터 논의해야 하니 얼마나 지난한 일이겠어. 그 모든 과정을 다 밟아 나가는 게 민주주의야. 그렇게 탄탄한 시민사회가 만들어지는 거지. 아주 작은 마을에서도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그 과정을 기록하고, 결정이 되면 거기에 따르지.”
옆에서 듣고 있던 소렌 선생님이 거들었다.
“민주주의와 복지 제도가 그냥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재교육하는 일이 중요해. 우리가 신경 써서 지키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이거든. 요즘 자라나는 덴마크 아이들은 복지 제도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아. 우리가 스스로를 조직하고 싸워 왔다는 걸 교육해야만 해. 지금도 여전히 싸우고 있지. 그 옛날 농부들이 힘을 얻기 위해 스스로를 조직했다면 그다음에는 노동자들이, 여성들이 나섰고, 지금은 이민자들이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우고 있어.”
선생님들은 말한다. 이 모든 것들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았다.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면 작은 모임이라도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조직하고, 싸워라.
229~230쪽 중에서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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