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인플루언서 vs. 슈퍼전파자

한편을 같이 읽어요! 오늘은 한편》 2호의 오리지널 콘텐츠 「인플루언서 vs. 슈퍼전파자」를 훑어봅니다. 2호 기획회의를 하는 동안 인플루언서들의 폭발적인 영향력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슈퍼전파자와 공유하는 지점이 많다는 비판적인 이야기로 나아갔는데요. 편집부는 그 이야기를 제대로 들려줄 필자로 신경인류학자 박한선 선생님을 꼽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역시 그 아이디어에 공감을 보내면서 곧바로 글을 써 보내 주셨지요. 

1851년 파리에서 국제위생회의가 열렸다. 유럽의 수많은 저명한 의사가 모였고, 회의의 목적은 바로 전염병 퇴치였다. 하지만 첫 회의의 성과는 초라했다. 의사들은 오랫동안 미아즈마(miasma)* 이론을 믿고 있었는데, 이른바 ‘오염된 공기’가 질병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더러운 냄새가 나는 축축한 밤공기가 건강에 안 좋다는 것은 직관적으로는 옳은 주장이었다. 전쟁터의 참호나 빈민가의 열악한 주거 환경, 탄광과 공장, 원양 함대의 좁은 선실과 탐험가의 낡은 텐트에서는 불쾌한 냄새가 날 수밖에 없었고, 이런 곳에서 전염병이 많이 발생했다. 그 둘이 서로 관련된다는 짐작은 누구나 할 수 있었다.
 
사실 미아즈마는 유럽의 전통 의학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서양에서는 기원전부터 전염병의 핵심 원인으로 간주되었다. 물론 대중은 전염병의 원인에 대해 초자연적 원인, 즉 신의 저주나 불경의 대가 등을 먼저 떠올렸다. 이런 원시적 질병관에서 한 단계 나아가 자연주의적 질병관, 즉 환경과 신체의 부조화가 병을 일으킨다는 관점도 있었지만, 여전히 과학적 사실은 아니었다. 병에 걸린 모든 사람의 신체가 똑같이 불균형할 리는 없기 때문이었다. 의사들은 따라서 신체보다 환경이 문제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고, 주거 환경과 근로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예 도시를 떠나 맑은 공기가 있는 시골로 요양하든지. 근대 문학 작품에서 병든 인물이 공기 좋은 시골로 요양을 떠나는 일화가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물론 가난한 이에게는 주거와 근로 환경 개선과 요양 모두 쉽지 않은 일이었다.
 * 미아즈마란 그리스어로 ‘오염(μίασμα)’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독성을 품은 수증기가 질병을 일으킨다는 것인데, 심지어 콜레라의 원인도 미아즈마라고 했다. 콜레라는 수인성 질병이다. 물론 진단이 틀렸으니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유언비어가 범람하는 정보화 사회에 대한 우리의 진단도 흔히 이와 비슷하다. 음습한 온라인 커뮤니티와 정돈되지 않은 인터넷 정책, 익명성 뒤에 숨은 열악한 네티켓 등이 바로 어지러운 여론을 만드는 미아즈마라는 것이다. 대책도 비슷하다. 온라인 문화의 개선이나 선플 운동, 인터넷 실명제 등이다. 아니면 각자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고 ‘맑은’ 오프라인 정보를 얻든지. 미아즈마처럼 물론 가난한 이에게는 둘 다 쉽지 않은 일이다. 수많은 사람에게 인터넷은 생계 수단이자 업무 도구이며, 가장 값싸게 정보를 얻고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인터넷 유머를 즐기는 것이 대학로에서 희극을 관람하는 것보다 분명 저렴하다.
신석기가 조금 지난 무렵, 인류는 글자를 발명하는 희대의 사건을 저질렀다. 특히 문자언어는 시대를 뛰어넘는 정보 전달을 가능하게 해 주었고, 인쇄술의 발명은 이런 능력을 크게 확장시켰다. 그리고 급기야 제3의 언어, 즉 인터넷 언어가 발명되었고 지리적 한계를 뛰어넘게 되었다. 한 사람의 생각이 전 세계 수십억의 사람에게 수초 내에 전달되고,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다. 분명 산업혁명 당시 도시와 탄광, 공장을 방불케 하는 효율적인 정보 환경이다.
 하지만 곳곳에 빈민굴이 생겨나고 있다. 정보 취약 계층이 모여 사는 곳이다. 흔히 인터넷에 접근하기 어려운 노년층이나 저소득층을 취약 계층으로 취급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현상도 벌어진다. 바로 온라인이 친숙하고 오프라인 연결망은 취약한 집단이다. 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양질의 정보를 구하지 못하고, 그들이 가진 모든 정보는 온라인 세계에서 얻은 것이다. 직접 사람을 만나서 얻는 오프라인 정보는 구하기도 어렵고 값도 비싸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방적기를 응시해야 했던 노동자들은 이제 현대인이 되었다. 이젠 방적기가 아니라 하루 종일 컴퓨터 화면과 스마트폰을 응시해야 한다. 게다가 싸구려 저질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음란한 광고와 터무니없는 황색 기사를 감수해야 한다.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참언(讒言)이 증식하기 쉬운 더럽고 비위생적인 정보 환경이다.

우리 몸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미생물이 살고 있다. 소화를 돕고, 면역 반응을 조절한다. 암을 막거나 우울감을 줄여 주기도 한다. 그들은 악의를 가지고 우리 몸에 침입한 것이 아니다. 미생물은 단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생명 활동을 하는 생명체일 뿐이다. 오랜 세월 같이 살면서 숙주와 기생체는 공생의 길을 닦았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허풍쟁이와 익살꾼도 필요하고, 진지한 선비와 사려 깊은 숙녀도 필요하다. 뭔가 이유가 있으니 오랜 진화사 동안 다양한 양식으로 공생하며 적응해 온 것이다. 하지만 모든 미생물이 평화로운 공생의 길을 도모하는 것은 아니다. 미생물은 숙주가 죽으면 같이 죽기 때문에 큰 위해를 가하는 미생물은 진화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진화적 원칙을 벗어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빠른 전파 속도다. 숙주가 죽더라도 그보다 빨리 다른 숙주를 찾아내면 그만이다. 그래서 치명적 병원균은 인간이 정주 생활을 시작한 이후에 주로 나타났다. 많은 사람이 도시에 모여 살면서 ‘악의적’ 병원균도 나름의 살 길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이런 경향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정보의 세계도 역시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헛 정보를 남발하는 사람은 곧 평판을 잃는다. 주변 사람은 그의 이야기를 듣기는 하되 귀 기울여 따르지는 않는다.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자연스럽게 신뢰하는 정보와 헛 정보에 대한 균형이 맞춰진다. 그런데 활판인쇄술은 이런 미묘한 균형을 깨어 버렸다. 또한 인터넷 세계는 터무니없는 가십을 입에 달고 사는 수다쟁이가 활동할 영역을 거의 무한대로 넓혀 주었다. 그동안의 방송이나 언론이 사회적 신망을 얻은 자의 정돈된 의견을 효과적으로 나누는 수단이었다면, 인터넷은 그런 진입 장벽을 사실상 완전히 무너뜨렸다. 강력한 인플루언서가 된 수다쟁이는 엄청난 성능의 확성기를 쥐게 된 셈이다.
 
젊은 사람들은 온종일 디지털화된 언어로 소통하고 대화한다. 자극적인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하는 인플루언서의 발언은 밴드웨건* 효과, 그리고 인터넷의 강력한 재전송 기능에 힘입어 순식간에 수천, 수만 배의 파급력을 가진다. 물론 때로는 사실도 아니고 올바르지도 않은 이야기다. 이때 정보를 듣는 모든 사람이 피해자가 된다. 마치 치명적 병원균이 숙주를 희생하더라도 높은 전파력을 통해 번식을 도모하는 전략과 흡사하다. 그리고 이런 인플루언서들이 바로 정보화 세계의 슈퍼전파자다. 
 
* 시가지에서 퍼레이드를 벌일 때, 행렬 맨 앞에는 큰 소리로 사람을 불러 모으는 악대 차량이 배치된다. 대중의 관심을 끌려는 것인데, 이 악대 차량을 영어로는 밴드웨건(Bandwagon)이라고 한다. 그래서 대중적으로 유행한다는 사실 때문에 어떤 정보가 힘을 얻는 현상을 흔히 밴드왜건 효과라고 한다. 보통 당선이 유력한 후보자에게 표가 몰리거나, 소비자가 시장 지배적 상품을 더 선호하는 현상을 말할 때 사용된다.
 
글로벌 시대에 슈퍼전파자가 이동하는 모든 곳마다 영향을 주듯이, 정보화 시대의 인플루언서는 마이크를 잡은 모든 곳마다 흔적을 남깁니다. 박한선 선생님의 글 전문은 잡지에서 확인해 보세요. 
박한선은 신경인류학자이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다.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인간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 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을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