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 교양강좌] 대한민국 최고의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대표 특강 행사 스케치!

2월의 마지막 날, 민음사에서는 국내 최고의 정치 컨설턴트박성민 대표님을 모시고 두 번째 민음 교양강좌를 진행하였습니다. 휴일 전날의 저녁에도 많은 분들께서 논의를 멈추지 않으며 열기를 더했던 이날 강좌의 후기를 전합니다.

 대표님께서는 어떤 사회가 행복하고 그렇지 않고를 판가름 할 때의 기준은, 바로 예측성이라고 하셨습니다. 행복한 사회란 대낮의 고속도로처럼, 미래가 예측되는 사회이며 불행한 사회란 밤길을 걷는 것처럼 긴장되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어 불확실하고 힘든 사회라고요. 곧이어 대표님께서는 ‘정치’에 대해 가장 좋아하신다는 정의를 전해주셨는데요, 어젠다Agenda를 넌-어젠다Non Agenda로 바꾸는 것, 불투명한 것을 투명하게 바꾸는 것, 불확실한 것을 확실하게 바꾸는 것, 이슈를 이슈가 아니도록 만들되 국민들이 모르게 행하는 것이 바로 좋은 정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좋은 정치란, 대중이 그 존재를 느끼지 못하도록 새벽에 쓰레기를 몰래 치우는 청소차 같은 것이라고요.

“저는 기본적으로 정치의 본질은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제가 선호하는 정치의 정의는 ‘어젠다(Agenda)를 넌어젠다(Non-Agenda)로 바꾸는 기술’이라는 것이에요. 대립하는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이 갈등하는 과정에서 사회적인 어젠다가 탄생합니다. 그 어젠다를 정치인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넌어젠다로 만드는 것이 바로 정치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정치는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바꿔서 대중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도록 ‘가시거리’를 확보해 주는 기술이라는 거죠.”

앞서 대표님께서는 본인이 ‘사양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이야기에 보태어 정치가 몰락하는 것은 분명하다며 그를 뒷받침하는 여러 사회문화적 현상들을 전해주셨습니다. 대표님께서 어렸을 때는, 세상을 분류하는 방법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이었는데 현재는 정치가 그 우선 순위의 자리를 잊은 지 오래라고 하셨습니다.
1987년 대선 당시 정치 연설 때는 100만 명에서 150만 명에 가까운 청중들을 동원했고 1971년에는 김대중과 박정희 각각이 몇 십만 명의 청중들을 동원했으며 그 이전인 1955년에는 신익희가 한강 백사장에서 연설할 때에는 전쟁 직후 인구조차도 적던 당시에 서울시민 30만 명을 동원했던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강 백사장이 흑사장이 되던 그런 시대는 이제 종언을 고했고, 연설을 듣는 사람은 기껏해야 50명에서 100명, 경험한 바로는 탤런트들을 동원했을 때에야 비로소 400여 명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정치가 몰락하는 이유에 대해 대표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원인을 꼽았습니다.

첫 째, 냉전이 끝나고 시작된 ‘세계화’
2차 대전 당시에는 처칠, 루즈벨트, 드골, 스탈린, 맥아더, 아이젠 하우어 등 그 이름만으로도 무게감 있는 활동과 성향이 표상되는 인물들이 줄을 이었고, 이후 혁명의 시기에도 박정희나 마오쩌둥 같은 인물들이 탄생했으며, 민주화 시기에는 김대중이나 만델라, 냉전의 끝물인 1980년에는 고르바초프나, 대처 같은 인물들이 각각의 시대를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을 끝으로, 역사의 주인공 자리에서 정치는 내려오게 됩니다. 당시에는 그 사람들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상황이 위대한 지도자를 낳은 것이었는데 지금은 그러한 지도자를 만들 수 없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경제, 문화, 스포츠가 이룩하는 성취가 10배로 커지고 빌 게이츠, 이건희, 영화 배우나 감독이 전세계를 호령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88올림픽 슬로건이 <서울은 세계로, 세계는 서울로>였던 것만 봐도 시대가 상징하는 바를 알 수가 있었지요.

냉전이 끝나고 세계화가 시작됐다는 것은, 국적이 중요치 않게 된 것을 일컫습니다. 세계화가 되면서 나머지 문화, 스포츠도 세계화가 되었지만 정치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바로 정치는 국경을 넘어갈 수 없다는 것. 모든 일은 세계적으로 벌어지는데, 정치만은 그럴 수 없었기 때문에 첫째, 공간에서부터 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공장은 해외로 옮길 수도 있고, 축구선수는 이직을 하고, 자유무역협정은 국가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그러나 정치는 국경 바깥으로 들고나갈 수 없기 때문에 시공간에서 지고, 둘째로 그 속도도 매우 느리다는 것입니다.

셋째, 정치는 그 영향력에서도 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요즘 누가 정치인의 말에 영향을 받느냐는 것이지요. 옛날에는 정치인이 고급 정보를 확보하고 어젠다 세터의 역할을 수행했다면, 지금은 모두가 인터넷 유저인 세상이기 때문에 결국 시스템과 상품, 자원에서 다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정치를 몰락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정보화’
토마스 쿤은 『과학 혁명의 구조』라는 책에서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처음 제시했습니다.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 하는 것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양식이 바뀌었을 때를 말하는 것이며, 그것은 반드시 혁명을 통해서만 도래한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비주류가 주류를 덮는 혁명은 ‘정치’도 마찬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날의 생산력 혁명은 세 가지 싸움, 즉 누가 더 싸게, 빨리, 그리고 많이 만드느냐는 것의 문제이며 항해술이나 증기기관, 인터넷 등이 다 이런 싸움에서 나온 산물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산업 혁명 이래로 비주류가 주류를 뒤엎는 엄청난 디지털 혁명을 목도하고 있고, 현재는 1등 빼고 다 죽는 게임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이러한 패러다임이 권력의 이동을 초래하게 된 것이라고요.

예전에는 ‘신학자(우주관, 세계관 설명) > 인문학자/철학자/문학자/역사학자/정치가(윤리, 규범, 법 제정) > 과학자(이론) > 기술자’와 같은 질서가 오래 유지되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이러한 구조에서의 일탈은 목숨을 거는 것이었고, 대중의 행동 역시 예측이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강력한 신앙이나 윤리, 법적 체계에서 살아가며 평균 안에 들어가려 했던 합리성이 존재하던 시대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세상은, 디지털 혁명을 통해서 구조가 완전히 뒤바뀌게 됩니다. 바로 현재는 ‘기술자 > 과학자 > 철학자/문학자/정치가 > 신학자’와 같은 구조가 뒷받침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지금은 기술자들이 스스로 원하는 세상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세상의 구조가 완전히 전복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안철수나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와 같은 기술자들이 부와 명예, 권력까지 손에 쥐게 된 것이지요.

첫 번째와 같은 구조의 사회에서 유명해지는 방법은 구전과 연설, 그리고 조직의 힘에 뒷받침해 있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오늘 날의 ‘정당’입니다. 과거에는 그 영향력이 막강했던 언론을 상대하고,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기업에서의 투자를 확보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 시절의 정치는 1선에서부터 순차적으로 7선, 8선 의원까지 올라가야 하는 것이었다면 두 번째와 같은 구조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조직’이라는 존재가 아무런 쓸모가 없어지게 됩니다. 이 시대에서는 한 번도 정치를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도 가능성을 갖게 되고 오히려 3선, 4선 의원은 퇴출 대상이 되고 맙니다. CNN, YTN, 포털 사이트는 24시간 뉴스를 만들어 내고, 그 어떤 것도 보호받지 못하는 시대가 되면서 예전처럼 지도자를 만들어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디지털 혁명이 가져온 변화는 첫 째, 정치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과 둘째, 대중이 주인공이 된 것, 그리고 셋째로 모든 엘리트가 대중이 된 것, 즉 엘리트와 대중의 차이가 없어졌다는 점입니다. 올드 미디어에서 뉴 미디어로, 남자에서 여자로 권력은 넘어갔고, 대표님께서는 그 흐름을 꺾을 수는 없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예전에는 개인의 정체성도 분명했으나 지금은 보보스, 강남좌파 등 개인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을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국가주의, 민족주의는 소멸되고 지금의 추세처럼 개인주의로 가게 될 것이라고 하셨는데, 지금은 국민이 국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표님께서는 이렇듯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보수시대는 종언을 고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시대]
1950년대와 1960년대는 전쟁을 겪으면서 살아남는 것만이 목표인 시대였습니다. 아우슈비츠와 홀로코스트를 겪은 뒤에 어떻게 서정시를 쓸 수 있느냐 하는, 실존성 논쟁이 붙었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1970년대와 1980년대는 국가권력이 국민을 탄압하면서 국가권력에 대한 회의가 치솟고, 민주주의가 도래하던 시대였습니다.

1990년과 2000년대는 진보는 먹고사는 문제에 무능하다는 평이 나오면서 자유의 시대가 열리고, 신자유주의, FTA 등 다양한 경제 관념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던 시대였습니다. 2010년대에는 시장을 더 이상 믿지 않는 공화주의 시대가 되면서 정의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세대]
국민들의 연령별 정체성을 보면 60대 이상의 정체성은 ‘국민’입니다. 즉 그들이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있고, 권리는 없이 오로지 의무만 있던,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세대입니다. 또 40-50대는 시민의 시대를 열은 세대로, 대한민국을 바꿨다는 의식을 갖고 있는 세대입니다. 권리와 의무를 동등하게 만들고, 비로소 터무니 없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했던 세대이지요. 현재의 20-30대는 가난과 독재, 억압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소비의 시대에 살았던 세대로, 의무는 없이 오로지 권리만 찾는 ‘소비자’와 같은 세대입니다.

이렇듯, 현재는 보수를 뒷받침하던 기존의 기둥이 다 무너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보수학자가 담론을 주도하지 못하면서 학계가 무너지고 재벌 언론의 권력이 약해지면서 언론의 기둥이 무너지고, 게다가 문화는 원래 진보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화의 속내를 살펴 봐도 <도가니><부러진 화살><워낭소리>등이 흥행하는 이유는 바로 구체적으로 사람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는 반면 보수는 스토리에 약하고, 숫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늘 문화에서 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재벌2세들과 같은 시대를 지내며 어떤 감성을 공유했다면 현재는 기업3세의 성장 배경을 전혀 알 수 없게 되면서 그들을 괘씸히 여기게 되고, 이런 재벌들을 대신해 자수성가한 안철수가 뜨는 현상을 만들어 내게 된다는 것이지요.

오랜 시간 동안 박성민 대표님과 함께 정치가 몰락하는 현상과 그 이유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대표님께서는 정치란 결코 몰락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정치야말로 공공의 영역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선거와 법과 예산 배분이라는 배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기업은 공공성이 결여되어 정치처럼 문제를 공론화하여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후에는 이날 오신 분들과 함께 다양한 질의응답을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고, 정치 컨설턴트의 자질, 정치가의 자질, 20대의 담론과 역할 등에 대해 대표님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막연한 대상으로 설정해두기만 했던 ‘정치’라는 것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그것으로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의문을 해소해나갔던 이날 박성민 대표님의 교양강좌는 경제, 사회, 문화 등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준거와 생생한 이야기들로 가득했던 시간이었습니다. 2시간을 훌쩍 넘기며 뜨거운 자리를 마련해주셨던 박성민 대표님과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해주신 모든 독자 분들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