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배반』은 ‘시장 실패 경제학’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시장 실패’라는 개념을 처음 쓴 사람은 하버드 대학교 명예교수인 프랜시스 베이토다. 아무리 완벽하게 예측이 가능한 세계에서도 시장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세 가지 있다. 첫째는 독과점, 두 번째 시장 실패는 기업이 교량, 병원, 공원, 소방서 같은 가치 있는 것들을 생산할 인센티브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애덤 스미스와 아서 피구가 다룬 ‘공공재’의 문재이지만 로잔학파와 시카고학파는 이 문제를 얼버무렸다.” 세 번째는 과잉효과(혹은 베이토가 만든 용어인 ‘외부효과’)다. 이런 시장 실패들이 경제학 교과서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도 주요 분석에서 참고 정도로만 다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시장 실패는 자유시장이라는 플라톤의 이데아에서 특수한 예외로 치부되고 만다. 이처럼 주류 경제학은 시장이 실패할 경우를 예외로 치부하고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책 결정자들은 코앞에서 부동산 거품이 터지고 금융 시장이 붕괴되고 있는데도 제때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이 책은 조지 애컬로프의 레몬 시장과 ‘합리적 비합리성’ 등의 개념을 통해 경제학의 다양한 측면을 소개함으로써 독자에게 경제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한다.  

이 책은 또한 우리가 익히 들어 온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도록 이끈다.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는 애덤 스미스의 명제, “개인의 이기적인 행동이 사회 전체의 효용성을 극대화한다.”는 전제에 세워졌다. 하지만 250년 전 국가가 경제를 이끌던 시절에 시장의 효율성을 강조하기 위해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을 고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21세기 시장 자본주의에 그대로 적용한다면 무리가 아닐까? 하지만 미국의 싱크탱크들은 애덤 스미스의 명제를 철통같이 신봉했다. 이 책은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의 핵심, 즉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알아서 최적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비현실적인 이론의 흥망사이기도 하다. 하이에크, 케네스 애로, 하이먼 민스키, 그리고 2008년 주택 버블의 붕괴에 이르러서야 그 환상이 깨지는 드라마틱한 경제사가 펼쳐진다.

경제학자 우석훈 씨는 「해제」에서 지난 10년 동안의 경제학을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에 비유한다.

금융위기는 경제만 위기로 만든 게 아니라, 경제학과 경제학자들도 위기로 내몰았다. 지난 10년 동안의 경제학을 특징적으로 표현하자면, ‘극단적 미니멀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수학적 기법으로 최적화와 약간의 미분방정식을 안다면, 경제학자로 활동하기 위해 알아야 할 내용은 책 몇 권으로 간소화된다. 이것저것 복잡한 게 많을 것 같지만, “결국은 시장이 효율적이다.”라는 이 한 문장만 알아도 먹고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던 시기였다. … 경제학도 예술과 마찬가지로 사조가 있고 학파가 있다. 예술로 비교하면 극단적 미니멀리즘이 지난 10년간을 지배했는데, 이제는 공동체나 실물 혹은 사회적 문제 같은 것들을 복합적으로 결합시키는, 뭔가 아는 게 많아야 하는 새로운 사조로 향하는 셈이다. 시쳇말로 ‘수요와 공급’만 알면 경제학은 끝이라고 생각했던 시대가 막을 내리는 것이다. … 인간들의 경제적 삶을 다루는 학문에 인간이 빠져서야 어찌 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극도로 앙상해졌던 경제학에 다시 살집이 붙어서 통통해지는 과정이 앞으로 진행될 경제학의 변화가 될 것 같다. 좀 멋지게 얘기하면, 하나의 학파가 지배하던 시절에서 학문적 혹은 이론적 다양성이 추구되는 시기가 온다고 할 수 있다. 주류 안에 있던 경제학자인 존 캐서디의 『시장의 배반』은, 그런 점에서 새로운 흐름의 맨 앞에 선 책이 될 것이다. … 존 캐서디가 우리에게 펼쳐 보여주는 세상은,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새로운 30년’의 밑그림과도 같다. 공포와 초조함으로 다가올 경제의 모습에 대해 한 가지 안도해도 좋은 것은, 『시장의 배반』이 미리 보여 주는 새로운 경제가 악몽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가올 시대가 유토피아는 아니더라도, 죽이지 않는다면 죽는다는 경쟁의 정글이 아니라는 사실은 새롭게 경제학을 공부할 동기를 만들어 준다.

―우석훈(『88만 원 세대』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