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등단한 이후 “거침없는 활달함과 왕성한 생명력”(문학평론가 정효구)으로 우리 시단에 새로운 미감을 선보여 온 시인 김산이 드디어 첫 번째 시집 『키키』를 내놓았다. 2년 전 시인은 오른쪽 어깨와 다리의 뼈가 모두 으스러지는 대형 교통사고를 당했다. 찰나의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죽는구나’가 아니라 ‘시집 한 권도 못 냈는데……’였다고 한다. 대수술을 두 번 거쳤다. 다행히 머리와 손은 멀쩡했다. 시를 쓰고 싶어 물리치료와 재활 운동에 매달리는 동안 그의 시의 진가를, 그러니까 김산 시의 ‘재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생과 사의 기로에서 돌아온 그는 한층 더 강화된 재기와 발랄함, 선명한 시적 감각으로 무장했다.

치키치키, 빗방울이 16비트 리듬으로
살아나는 광릉수목원에 가 본 적 있나요
수십만의 히피나무들이 부동자세로
입석 매진된 한밤의 우드스탁 말이에요
레게 머리 촘촘한 수다쟁이 가문비나무와
짚내복을 사철 입고 사는 늙은 측백나무 사이
우르르쾅, 천둥 사이키가 번쩍거리고
다국적 수목원 안에 쏟아지는 박수 소리
고막을 찢으며 축제는 시작되지요
굵어진 빗방울이 시름시름 앓고 있던
뽕나무 그루터기를 흠씬 두들기고 가는 밤
비자도 없이 말레이시아에서 입국한
고무나무도 언제 새끼를 쳤는지 말랑말랑한
혀를 내밀고 빗방울을 받아먹고 있네요
때론 아무것도 흔들지 못한 빗방울들도 있어요
맨땅에 헤딩을 하고 어디에도 스미지 못하고
웅덩이에 모여 울고 있는 음악들을 나무들은
뿌리를 뻗어 싹싹 혀로 핥아 주기도 해요
지상의 모든 음악들이 생생불식 꿈틀거리는
수십만의 히피나무들이 밤새 기립 박수를 치는
광릉수목원 즐거운 우드스탁으로 놀러 오실래요
지난가을부터 자작나무 가지 위에 걸터앉아
나, 당신만을 기다리는 올 나간 테디베어예요
―「광릉 우드스탁」

  『키키』는 그의 “우주적 명랑함”이 집약된 주목할 만한 작품집이다. 불시착으로 지구별에 떨어진 우주 소년처럼, 김산의 기발한 방외적 상상력은 인용된 시처럼 비 내리는 고요한 광릉 숲을 역동적인 록 페스티벌의 현장으로 변모시키거나 금성 마크가 붙은 라디오에서 우주의 비밀스러운 소리를 엿듣는 등 가공의 시적 공간을 세속의 삶과 탁월하게 엮어 낸다. 또한 시인은 소소한 존재들의 언어를 온전히 받아 안는 신낭만주의적 태도로 의미는 무의미하다며 무의미의 의미를 따져 묻는다. 이렇게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상상력, 팔딱거리는 신선한 시적 감각, 그리고 이를 현실 속의 이미지로 조각해 내는 놀라운 재주를 가진 김산의 시편은 독자들에게 지나칠 수 없는 “총체적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민음사 편집부 김윤지

김산
출간일 2011년 11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