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토마스는 왜 토마시가 되었는가?

 

 

지난 7월 30일 《한겨레》에 「‘서사적 바람둥이’가 낯설어진 이유」라는 제목으로 로쟈의 칼럼이 실렸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체코어판이 아닌 불어판으로 번역되었으며, 체코어판과 불어판의 차이 때문에 독자들은 ‘낯설어진’ 작품을 접할 수밖에 없다는 글이었다.

이 칼럼을 자세히 살펴보자. 로쟈는 크게 세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첫째로 ‘정본’의 문제인데, 쿤데라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정본으로 인정한 두 판본, 즉 체코어판과 불어판 중 한국에서는 오직 불어판의 번역본만 통용되기 때문에 “다양한 번역본을 음미할 수 없어” 아쉽다는 것이다. 로쟈의 말대로 1995년 우리나라에서 체코어판 번역본이 쿤데라의 동의 없이 출간된 적 있지만 지금은 구할 수 없다.

둘째로 그 체코어판 번역본에서는 주인공 이름이 ‘토마스’와 ‘테레자’였으나 민음사의 1999년 프랑스어판 번역본에서는 ‘토마스’와 ‘테레사’가 되었고, 작년에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된 개정판에서는 다시 ‘토마시’와 ‘테레자’가 되었는데, 여기서 ‘토마스’가 ‘토마시’로 바뀐 것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체코어판 번역본과 프랑스어판 번역본의 표현 차이를 지적하였다. 그가 유일한 예로 든 것이 ‘바람둥이의 유형’이다. 체코어판 번역본에서는 ‘서정적 바람둥이’와 ‘서사적 바람둥이’라고 표현된 것이 불어 번역본에서는 ‘낭만적 호색한’과 ‘바람둥이형 호색한’이라 옮겨졌다는 것이다. 쿤데라는 이와 관련된 일화를 『소설의 기술』을 통해 밝혔는데, ‘서사적 (바람둥이)’라는 표현이 프랑스인들에게는 아주 낯설기 때문에 편집 담당자와 논의하여 바꾸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쿤데라는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이었지만, 그럼에도 조금 서글펐다.”라고 했는데, 로쟈는 이를 두고 우리나라에서는 체코어판이 아닌 불어판만 번역됨으로써 이 ‘슬픔’까지 옮겨지고 말았다고 주장한다.

로쟈가 칼럼을 통해 비판하는 사항들에 대해 민음사는 밀란 쿤데라에게 직접 문의 메일을 보냈고 그에 대한 답신이 왔기에 이 지면을 빌려 밝혀 둔다.

첫째, 정본에 대한 쿤데라의 입장이다.
1999년에 민음사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쿤데라와 정식 계약하고 출간할 당시, 그는 출판사 측에 ‘프랑스어판’을 정본 삼아 번역해 줄 것을 요청해 왔다. 프랑스어 번역본은 쿤데라가 직접 단어 하나하나,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검토하고 수정한 후 당시에 세계 유일한 ‘정본’으로 인정한 판본이기 때문이다.(※쿤데라의 메일 인용: “the French translation was revised in the great detail, word by word by me personally.”)
체코 민주화 혁명을 다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1989년 공산정권 붕괴 전까지 체코 내 출판 및 외국어판 수입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출판 금지 조치 해제 이후에도 쿤데라는 모국에서 이 작품이 출판되는 것을 반대해 왔다. 체코어 원고를 잃어버린 데다가 거꾸로 프랑스어판 번역이 체코에서 출판되는 것은 넌센스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쿤데라는 그 후 꾸준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체코어 원고를 다시 쓰는 작업을 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프랑스어판을 참고하거나 각색하기도 했다.(「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22년만에 고국 체코서 출간」, 2006년 11월, 《국민일보》 기사 참조.) 그리고 마침내 지난 2006년이 되어서야 체코에서 이 작품을 출간할 수 있었다. 따라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체코어판 정본’이 있다면, 2006년 판본이어야 한다. 쿤데라가 프랑스어판과 동일한 가치를 지녔(“the same value of authenticity”)다고 일컬은 이 판본은 아직 국내에 한 번도 번역 출간되지 않았다.

둘째, 토마스가 토마시가 된 사연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주인공 Tomáš와 Tereza는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토마스’와 ‘테레사’로 불리어 왔다. 사실 이는 잘못된 표기였으며, 민음사는 이를 바로 잡아 개정판에 적용했다.
영어 번역본이든 프랑스어 번역본이든 민음사에서는 작품에 등장하는 고유명사는 원저의 언어와 상관없이 출신 배경에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예를 들어 미국에 사는 프랑스인 Thomas는 ‘토머스’가 아닌 ‘토마’다. 하지만 그가 독일인이나 오스트리아인이라면 ‘토마스’가 되어야 한다.) 이 원칙에 따라 체코인인 두 주인공 이름도 바뀐 것이다. 국립국어원에서 제정한 외래어표기법에 따르면 체코 이름 Tomáš에서 어말의 š는 ‘시’라고 발음되며 Tereza에서 모음 앞에 오는 z는 ‘ㅈ’으로 표기된다. 즉 토마스는 ‘토마시’로, 테레사는 ‘테레자’로 쓰는 것이 올바른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두고 “‘테라사’가 ‘테레자’가 된 것은 교정사례라고 할 수 있지만, ‘토마스’가 ‘토마시’로 바뀐 것은 근거를 찾기 어렵다.”라고 비판한 로쟈의 주장이 오히려 근거 없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가 지적한 것 중 ‘토마스 만’이 ‘토마시 만’으로 바뀐 것은 증쇄 시 반드시 수정되어야 할 교정 오류로 독자들에게 깊은 사과의 뜻을 전한다. 물론 이 오류는 로쟈의 조롱성 추측처럼 결코 “유머를 의도한” 것은 아니었음을 밝힌다.

마지막으로 바람둥이의 유형에 대해 살펴보자.
앞에서도 이미 밝혔듯 체코어판 번역본에 나오는 ‘서사적 바람둥이’라는 표현은 프랑스어 판본에서는 ‘le baiseur libertin’이라고 바뀌었다.(직역하자면 ‘방탕한 섹스꾼’ 정도 되겠다. 민음사 개정판에서는 ‘바람둥이형 호색한’으로 번역된 부분이다.) ‘서사적 (바람둥이)’라는 말이 내포한 여러 의미들이 그 표현 그대로는 프랑스인들에게 이해되지 못할 것이라는 담당 편집자의 판단 때문이었고, 쿤데라는 이에 동의했다. 조금 “슬프긴 해도” 출발어(번역 대상 언어)보다는 도착어(번역하는 언어)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 역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쿤데라는 프랑스인들에게는 ‘서사적 바람둥이’보다 ‘le baiseur libertin’이라는 표현이 덜 낯설 것이라고 판단했으며, 그러한 표현 변화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어판을 세계 정본으로 삼은 그의 선택에 따라 우리나라 독자들은 ‘바람둥이형 호색한’이라는 번역을 접하게 된 것이다.

‘서사적 바람둥이’라는 체코어 (번역) 표현과 ‘바람둥이형 호색한’이라는 프랑스어 (번역) 표현 중 무엇이 과연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친숙한가 하는 점은 따져 봐야겠지만, 원어 표현보다 도착어의 맥락을 중시한 쿤데라의 입장을 고려한 어떤 비판이 있을 수 있다면, 쿤데라의 본래 문장이 내포한 의미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보다 잘 공감되는 데 어떤 표현이 더 좋았을지를 따져야 한다. 만약 로쟈가 이 부분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면 민음사는 얼마든지 그 제안을 검토해 볼 것이다.

민음사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판본에 대한 로쟈의 비판에 고마움을 표하며, 이러한 토론이 보다 좋은 번역서를 만드는 가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민음사 편집부 박경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