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만삭스의 최고경영자는 2007년 봉급과 보너스, 주식 상여금으로 6850만 달러를 받았다고 한다. 일반인에 비해 2000배 정도 많은 액수이다. 하지만 그는 금융계에서 고소득자 축에 들지 못했다. 헤지펀드의 귀재 조지 소로스가 29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또 다른 헤지펀드 매니저 케네스 그리핀도 20억 달러 이상을 챙겼기 때문이다. 반면 전 세계적으로 10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하루에 고작 1달러를 벌기 위해 애쓴다. 여기서 니얼 퍼거슨은 묻는다. ‘세상이 너무 불공평해 화가 나는가?’ 하지만 그는 『금융의 지배』에서 금융과 금융업자에 대한 적대감과 뿌리 깊은 편견에도 불구하고, 돈은 대부분 진보의 근원이었으며 인류의 역사를 움직이는 추동력 중 하나였다고 말한다.
14세기~16세기, 인간성 해방을 위한 문화 혁신 운동 르네상스는 왜 이탈리아에서 가장 먼저 일어났을까? 봉건 질서가 붕괴되고 교회 세력이 약화되면서 자유로운 분위기가 만연하고 억압된 인간성을 해방하려는 욕구와 함께 결정적 동력으로 작용한 것은 상업의 발달로 인한 부의 축적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상인 출신 가문 메디치가 있었다. 적극적인 판매 수완과 탁월한 경제 감각으로 사업을 일으켜 결국 초일류 금융가가 된 메디치의 후원을 받아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다빈치, 갈릴레오는 어두웠던 중세를 떨쳐버리고 새 시대를 열었다.
프랑스 혁명 이면에는 어떤 금융의 비밀이 숨어 있을까? 살인자에 도박 중독자, 그리고 결점 많은 금융 천재인 스코틀랜드 출신의 야심가 존 로. 그는 세계 최초로 주식 시장에 거품을 만들고 터뜨리면서 프랑스 금융 제도를 만신창이로 만들었고 간신히 버티던 프랑스 군주는 마침내 파산하면서 혁명이라는 극단적 처방을 받아야 했다.
워털루 전쟁시 채권 투기로 수백만 파운드를 치부했다고 알려진 로스차일드 가문에 관한 오랜 속설은 사실일까? 니얼 퍼거슨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이는 훗날 나치에 의해 각색된 일화이며, 로스차일드 가문은 워털루 전투 덕분에 한몫 잡은 게 아니라 오히려 그런 전쟁의 와중에도 재산을 모은 인물들이었다. 프랑스의 침공을 받은 포르투갈로 부대를 이끌고 들어간 웰링턴 공작은 물자 공급을 위해 은행권이 아닌 실질적인 화폐를 필요로 했고, 막대한 양의 금을 모아 위험을 무릅쓰고 전달한 것이 바로 로스차일드 가문이었다.
역사의 결정적 순간의 이면에는 늘 금융과 관련된 비밀이 숨어 있었다. 금융의 입장에서 역사를 살펴보는 일은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통찰력을 안겨 줄 것이다.

민음사 편집부 박향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