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 러너」, 「공각기동대」, 「매트릭스」. 독특한 디스토피아 미래 세계를 보여 주며 마니아를 양상하고 SF계의 ‘레전드’가 된 이 작품들을 묶을 수 있는 단어는 ‘사이버펑크’다. 최근 많은 이들이 즐겨 보았을 영화 「인셉션」도 어떤 면에서는 이들 사이버펑크와 맥을 같이한다. 기계를 통해 꿈과 현실을 오가며 다른 이의 생각을 훔치거나 심는 스릴러 영화 「인셉션」을 사이버펑크라고 적극적으로 호명하기는 어렵지만, 사이버펑크 장르 내에서 발달해 온, 가상현실과 현실을 오가는 이야기들이 토대가 된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이 급진적으로 발달한 미래 모습을 적극적으로 보여 주며, 첨단 정보 사회의 폐해를 드러내고 주로 디스토피아 미래 사회상을 그리는 사이버펑크. 이 장르를 이야기하며 빼놓을 수 없는 작품 중 하나는 윌리엄 깁슨의 디스토피아 소설 『뉴로맨서』(1984)다. 이제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개념인, 인간과 기계가 결합한 존재 ‘사이보그’와 가상현실 공간인 ‘사이버스페이스’가 처음 본격적으로 묘사된 『뉴로맨서』는 사이버펑크의 효시로 꼽힌다. (‘매트릭스’라는 용어 역시 이 소설에서 처음 등장한다.) 이후 사이버펑크는 영화, 게임, 패션 등 다른 대중문화에도 영향을 미치며 큰 인기를 끌었다. 금세 소리 없이 사라졌지만 1990년대 말에 ‘아담’이라는 사이버 가수까지 등장했던 걸 생각해 보면 확실히 1990년대 사이버펑크의 영향은 대단했다. ‘사이버 대학’을 비롯하여, 이제 우리는 넷상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작업이나 결과물들을 으레 ‘사이버 ○○’라고 부르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정작 ‘사이버펑크의 아버지’ 윌리엄 깁슨은 사이버펑크의 뿌리를 다른 작품에서 찾는다. 그것도 페미니즘 SF 소설이라 할 만한 독특한 작품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에서. 하지만 작품을 찬찬히 뜯어보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마지 피어시가 1976년에 발표한 소설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에 등장하는 두 미래 세계 중 하나가 사이버펑크의 디스토피아 세계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곳은 모든 것이 기계로 통제되는 엄격한 계급사회로, 사람의 생각을 스캔하고 감지 장치로 신호를 잡아내어 감정까지 알아낸다. 또 그곳 사람들은 공기 오염 때문에 외부 활동을 일절 할 수 없는데, 그래서 HG라는 3차원 영상물을 보거나 ‘센스올’이라는 일종의 가상현실 체험 기구로 이야기를 경험하며 여가를 보낸다. 여기서 특히 ‘센스올’의 존재가 눈에 띄는데, 모든 감각을 자극하여 가상 체험을 하듯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이 기계가 아마도 이후 여러 작품에 등장한, 가상현실로 연결시켜 주는 온갖 기계들의 모태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윌리엄 깁슨도 이에 주목하여 ‘사이버스페이스’라는 개념을 창조하기에 이르렀던 것이 아닐까.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가상인가. 사이버펑크 장르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 질문은 아직도 너무나 매력적이다.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정보사회 속에서 혼란과 공포와 매혹을 동시에 느끼며, 장자로부터 시작한 이 질문을 현대에서는 사이버펑크가 대신해서 이어 가고 있다.

민음사 편집부 박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