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 이름을 불러 주세요.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 보셨나요? 국민 여동생 문근영이 소녀티를 벗고 성숙한 모습으로 변신해 화제가 되었지요. “은조야, 하고 불렀다.”라는 문근영의 내레이션이 드라마의 명대사로 꼽혔다는데, 그저 이름을 불렀다는 내용에 불과한 이 한마디가 어떻게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던 것일까요?
잉글랜드 북부 어느 도시에 사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존 맥그리거의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름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어떤 노인은 젊은 시절 군에서 전사자들을 매장할 때 신상 정보가 없는 시신들에 임의로 이름을 붙이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구청에 민원을 넣으며 자기 이름의 철자 하나를 잘못 쓴 것에 대해 심각하게 지적하는 중년 남자도 있습니다. 눈이 아픈 남자애 하나는 버려진 물건이나 사소한 것들을 찍은 사진에 일일이 이름을 붙입니다. 화자인 ‘나’는 뜻하지 않은 임신으로 당혹감에 빠져 있지만, 그 와중에도 아이의 이름을 정하기 위해 고심합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전설의 복서 알리와 테렐의 권투 경기를 시청하는 장면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않는 상대에게 분노한 알리가 주먹을 날리며 “내 이름이 뭐라고?”를 반복하는 일화도 나옵니다.
이름은 나를 온전히 나일 수 있게 하는 표식이지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존재에 고유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고,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 존재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행위입니다. 때로 우리는 누군가 “은조야.” 하고 부드럽게 이름을 불러 주는 것만으로도 오롯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름을 불러 주는 이에게로 가 ‘꽃’이 됩니다. 주목받지 못하는 삶도 이름을 불러 주면 놀라운 이야기를 쏟아 냅니다. 그리고 일상은 기적이 됩니다.
소설의 시작이자 끝맺음이 되는 사고가 벌어졌을 때, 희생된 소년의 이름을 되뇌는 한 남자의 모습에서는 숭고한 영성마저 느껴집니다. 이것이 ‘이름을 부르는’ 행위의 기적적인 힘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동네 전체가 소년의 이름을 부른다면 어떻게 될까, 그 어머니의 조그만 목소리를 따라, 동네 전체가 소리를 높여 불러서 소년의 이름이 이 도시 전체에 울려 퍼지고, 황혼의 새 떼처럼 날아올라, 하늘을 뒤덮고, 들판과 숲과 바다를 지나, 전해지고, 전송되고, 방송되고, 소식이, 이름이, 하늘에서 전자파 비처럼 쏟아져 내리고, 고급 주택에서 판잣집에 이르기까지 꼿꼿하게 서 있는 피뢰침 안테나에 모두 빨려 들어가, 이 죄다 잘못 연결된 세상을 가로질러 우리 모두가 이름을 합창하고, 짧은 만회의 시간에 집중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고 상상해 본다. 오, 인샬라, 세상 모두에게 들리게 하소서, 세상 모두가 잠시라도 듣게 하소서, 소년의 이름은 샤히드입니다, 샤히드 모하메드 나와즈이고 죽어 가고 있습니다 하고 마음속으로 말한다.」

사랑하고 계신가요? 행복한 기적을 꿈꾸시나요? 이름을 불러 주세요. 당신이 무심히 지나치던 그곳에서 당신이 미처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민음사 편집부 우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