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제33회 <오늘의 작가상>에는 68명의 응모자가 총 71편의 작품을 투고하였다. 예년에 비해 응모작의 수가 다소 줄어들기는 했지만, 기성작가는 물론이고 재능 있는 신인들의 다양한 작품 경향 등으로 당선작에 대한 기대는 오히려 큰 편이었다. 심사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예심위원과 본심위원을 구분하지 않고 1차 독회를 거쳐 예심을 통과한 작품을 각 심사위원들이 다시 교독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예심과 본심은 각각 소설가 정미경 씨와 문학평론가 김미현 교수, 정영훈 씨가 맡아 주었다. 예심을 통과하여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 날아라, 잡상인
  • 러브 이스트
  • 부르하통하
  • 브로큰 하우스

작품의 정독을 끝낸 심사위원들은 4월 10일, 민음사 회의실에서 본심을 진행하였다. 후보 작품의 장단점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압축된 두 작품은 『브로큰 하우스』와 『날아라, 잡상인』이었다. 관계의 위기에 직면한 가족의 일상을 상징적이면서도 마술적으로 비일상화시키는 데 성공한 『브로큰 하우스』는 유머와 위트로 읽는 재미를 더한 감동적인 소설이다. 그리고 『날아라, 잡상인』은 결코 행복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치명적 결점을 지닌 문제적 개인들이 모여 좌충우돌하며 건강한 웃음과 행복의 조건을 찾아가는 휴머니티 넘치는 따스한 소설이다.
심사위원들은 비슷한 성향을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전혀 다른 이 두 작품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인 끝에 별이 되지 못한, 누추한 점 같은 개인을 통해 삶이 간직한 사소한 비밀들을 풀어 나가며 각박한 이 세상에 진정 따스한 웃음을 전염시킨 『날아라, 잡상인』을 제3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당선자에게는 <오늘의 작가상> 기념 모뉴망과 함께 부상으로 상금 3000만 원 및 단행본 출간에 따른 인세가 증정된다. 당선자의 수상을 축하하며, 진정으로부터 우러나온 타자에 대한 이해의 시선이 한국 문학의 외연을 넓혀 나가는 원동력이 되기를 희망한다.

심사평

▶ 당선작으로 결정된 『날아라, 잡상인』은 사실 폭소나 홍소보다는 블랙 유머나 실소에 가까운 웃음을 제공하는 소설이다. 일명 ‘허무 개그’를 펼치는 이 소설의 특장은 각 인물들의 캐릭터가 분명한 점, 생생한 묘사를 중심으로 인물들의 개성이 분명하게 전달되고 있는 점, 인공적인 웃음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사랑과 이해의 산물로서의 자연스러운 웃음을 발견해 가는 이야기들이 성숙하게 발현되는 점, 지하철 상인이나 노숙자, 은퇴한 여배우, 말 못하고 듣지 못하는 미혼모, 앞 못 보는 장애인 등 다양한 군상들의 상처가 서로에 대한 반사경 역할을 하며 리얼하게 제공되는 점 등이다. 웃음은 인간의 삶 자체가 비극일 때에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마지막 포즈이자 제스처임을 진솔하게 보여 준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슬플 때도 웃을 수 있는 능력 때문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는 통찰력과 철학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누구도 행복할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구도 불행하지 않다면, 그때 유발되는 웃음은 ‘사랑의 번역어’에 해당된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부족하고 아프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불어서 모여 살고, 힘들여서 웃으려 한다. 그것이면 족하다. 웃기지 못하는 코미디언인 김철이가 지하철에서 랜턴(빛)을 파는 미스터 리에게 배울 바가 이런 마법이자 주술이라면, 우리가 이 소설에서 찾아내야 할 것도 바로 이런 절대 긍정의 힘이다. 너무 건강하지도 않고, 너무 밝지도 않아 이 소설 속 웃음의 온도나 채도는 적당하다. 그래서 뜻밖의 웃음과 미소를 선사한다. 자극적이지도 않고, 독하지도 않다. 물론 그래서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다. 인물과 인물의 유기성이나 관계성이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인물들의 아픔이 지나치게 보편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울기 위해 웃지 않고, 웃기 위해 웃지 않던가. 그러니 이 소설 속 웃음의 발생 조건과 인간의 윤리적 조건은 문학적 상황 속에서 서로 어긋나면서도 잘 겹쳐지고 있다. 본질에 천착하는 무모함과 당참이 신인다운 패기를 느끼게 한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 김미현(문학평론가)

▶ 『날아라, 잡상인』은 대안가족의 형성사를 그려 낸다. 코미디언 지망생 김철이가 행상을 하던 지하철에서 농아 소녀 수지를 만나게 된다. 칫솔을 팔던 김철이와 수치심을 팔던 수지가 만났을 때 어떤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걸까. 우리는 수치심을 갖고 있는가? 인간의 고결함은 무엇에서 비롯되는가? 웃기지 못하는 코미디언 김철이의 고민이 시작된다.
치명적 결점을 가진 문제적 개인들이 좌충우돌하는 틈 사이로 어떤 끈적임 같은 게 배어 나오면서 타자를 바라보는 개안의 순간이 오고, 그 타자의 타자로서의 자신까지 변화하는 지각 변화가 시작된다. 그들의 주위로 별이 되지 못한, 누추한 점 같은 인생들이 널려 있다. 못난 인생들이 꽤나 사랑스럽다. 읽다 보면 점은 선이 되고 선과 선이 만나 모서리 들쭉날쭉한 면을 이룬다. 손바닥을 대면 따스할 것 같은 면이다.
― 정미경(소설가)

▶ 당선작으로 결정된 『날아라, 잡상인』은 삶의 비루한 조건들로부터 웃음을 길어 내는 활달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텔레비전 개그 프로그램에 몇 번 출연한 후 퇴출당하고 지하철 ‘잡상인’이 된 주인공과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그녀, 그리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것도 모자라 눈마저 먼 그녀의 동생이 있다. 이들은 저마다의 ‘불행한 삶의 조건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불행한 삶의 조건과 더불어’ 행복하기를 꿈꾸고, 반어를 통해 불행을 행복의 조건으로 바꾸어 놓는 데 성공한다. 웃음은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거나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데서, 혹은 자신을 비하하여 놀림감으로 만드는 데서 오지 않는다. 웃음은 이해에서 온다. 타인의 삶에 대한 이해, 삶이 감추어 놓은 사소한 비밀들에 대한 이해가 웃음을 가능하게 한다.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자기 고통에 지나치게 민감한 최근 소설과 비교해 보면 이 소설의 장점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수상을 축하한다.
― 정영훈(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