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헤어날 수 없는 외로움의 구렁텅이

 

 

나는 왜 이렇게 외로운 거지

$%name%$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 《한편》 3호 주제인 ‘환상’을 탐구하면서 광기, 꿈, 음모론, 우울, 질투 등등 인간 정신의 그늘을 들여다보고 있죠. 오늘은 마침내 외로움이 왔습니다.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사라지지 않는 그림자 같은 외로움에 관한 과학적 연구인데요. 인간에게는 ‘외로움 유전자’가 있다는 독특한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치는 책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의 한 대목입니다.

만성적으로 외로움 수준이 높은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스스로 외부 환경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생활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다. 그런 비관적인 생각에다 언제나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느낌이 더해지면서 그들은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기 내면으로 침잠한다. 아울러 스트레스에 수동적으로 대처하면서 총 말초 저항(혈류에 대한 말초 혈관의 저항으로 혈관이 수축되면서 저항도가 높아진다.)이 올라가 결국 혈압이 높아진다.외로움은 사회적 회피성이 높고 사회적 접근성이 낮은 전략을 유발한다. 이런 사교 전략은 외로움을 지속시킨다. 외로움이 유도한 냉소적인 세계관은 소외와 불신으로 이어져 실제로 사회적 배척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 여러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그래서 외롭다는 느낌은 ‘자기 충족적 예언(실패하리라고 예상하면 실제로 실패하게 된다.)’을 만들어 낸다. 이처럼 주관적인 판단의 배척감을 오래 유지하면 실제로 주변으로부터 배척당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과정은 새로운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입증되었다.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뒤섞인 자원자들은 전혀 모르는 한 사람을 상대로 게임을 했다.돈을 두고 벌이는 게임이었다. 참여자들은 게임 전에 상대방에게 충성심을 포상할지 배반을 벌할지 말했다. 하지만 그 상대방은 그들이 거짓말을 하는지 진실을 말하는지 몰랐다. 한 참여자가 게임 전에 선언한 대로 행하고 다른 참여자가 그러지 않는다면 사람을 믿는 쪽이 게임에서 진다. 하지만 이 게임은 과학 실험이기 때문에 상대는 연구진의 한 명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처럼 실험 자원 참여자로 가장하고 실제 참여자처럼 반응했다. 보복 전략을 사용했다는 뜻이다. 그 연구원은 늘 이전의 행동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에 실제 자원한 참여자들은 게임이 어떻게 진행될지 뻔하다고 생각했다. 처음 몇 게임에서는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똑같이 협조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참여자가 배반하면 상대방도 따라서 배반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상대방을 불신하는 정도가 심해졌다. 배반과 악감정의 연속이었다. 반면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과 상대방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계속 협조적이었다.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만들어 낸 서로 다른 사회적 현실은 다른 사람의 성격에 관한 자신들의 서로 다른 기본 기대감을 반영했다.
 
미국의 저명한 정신 분석학자 해리 스택 설리번은 외로움을 “정확한 기억을 사실상 왜곡할 정도로 끔찍한 경험”으로 규정했다.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배척의 두려움은 자신에게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 주는 모델로서 반드시 필요한 사람에 의해 거부당한다는 두려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종합하면 결론은 이렇다. 외로움은 견디기 힘든 두려움을 유발한다. 특히 청소년은 또래 집단과 필사적으로 어울리기 위해 자신의 판단력과 정체성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적든 많든 배척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자멸적인 어리석은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앞으로 겪게 될 실망과 좌절, 배척당할 고통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무의미하며 절대로 관계가 잘 풀리지 않으리라는 이유를 끊임없이 생각해 낸다. 우리가 외로움을 느끼면 사실이 아닌데도 스스로 사교 기술이 부족하다고 여겨 자신을 해치게 되는 이유도 이것으로 설명 가능하다.
 

 

인간은 의미를 만들어 내는 존재다. 외로운 사람만이 고도로 주관적인 렌즈를 통해 사회적 단서를 해석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뇌는 입력되는 수많은 이질적인 감각 신호의 조각을 취해 그 상황에 적합한 이론을 만들어 내야 한다. 시간과 공간, 원인과 결과의 해석 말이다. 그래야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계획하며 과거를 이해할 수 있다. 이상적인 경우 그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 내는 이론과 전략이 객관적 현실과 잘 맞아떨어진다. 그럴 경우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 부닥치는 문제를 적절히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확실한 보장은 없다. 사회성에 민감한 뇌는 삼각형의 점 세 개를 보고 반사적으로 인간의 얼굴을 떠올릴지 모르지만 때로는 그 점 세 개는 단지 점 세 개일 뿐이다.
 
심리학자 프리츠 하이더와 메리앤 짐멜은 1940년대에 작은 삼각형과 작은 원, 그리고 큰 삼각형이 큰 사각형 주변과 안을 돌아다니는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작했다. 빙빙 돌아가는 기하학적 형태에 불과했지만 그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의도와 계획, 그리고 감정적 의미로 가득 찬 사회적 드라마라고 평가했다. 인간의 뇌가 가장 잘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의 뇌는 입력된 감각 신호가 무엇이든 이를 바탕으로 자신들이 생각하는 ‘현실’을 만들어 낸다.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이 움직이는 삼각형과 원, 그리고 사각형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찾아내듯이, 마음 이론이 형성되지 않은 어린이는 주변의 다른 사람에 대해 나름대로의 생각과 경험을 마구잡이로 투사한다. 대다수 학자의 의견에 따르면 바로 이런 경향 때문에 인류 초기에 원시 종교가 생겨났다. 그 종교는 자연의 힘에 이름을 붙이고 개별적으로 복잡한 기원과 역사를 부여했다. 인간적인 속성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그런 속성이 최초의 신화와 전설의 원재료였다.
 
플라톤의 ‘전차 마차부’ 비유에서부터 프로이트의 ‘고통당하는 잠재의식’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들은 인간성 내부에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면과 어둡고 감정적인 면이 공존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사회신경과학은 좀 더 통합적인 시각을 지향한다. 인간의 자기 보존과 생존을 관장하는 감정 체계는 원시적인 환경과 단순하고 직접적인 위협에 맞게 구축되었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순진한 경향을 보인다. 외부의 영향에 민감하며, 추상적인 데이터보다는 피상적이고 사회적이며 일화적인 정보를 선호한다. 그러나 우리를 격하시키는 바로 그 비이성적인 과정이 인간으로서 우리의 가장 훌륭한 자질의 기초가 되기도 한다.
 

 

희망은 불합리성을 수반한다. 배우자에게 갖는 긍정적 환상은 길고 행복한 결혼에 도움이 된다.모험 사업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은 앞으로 닥칠 어려움을 낙관적으로 편향된 시각에서 평가한다. 그렇지 않고는 누가 모험을 감행하겠는가? 순전히 통계 자료만을 기준을 판단한다면 사업가가 새로운 사업으로 성공하리라 생각한다거나, 화가가 미술품 수집가들이 구입할 만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거나, 작가가 읽을 만한 책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거나, 과학자가 과학에 중대한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거나, 결혼을 앞둔 사람이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편견은 인지적 지름길을 취하려는 단순한 필요성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처리 가능한 양보다 많은 정보가 입력되면 정치, 문화, 종교 등 우리의 생존에 직결되지 않는 문제에는 생각을 절제하려는 경향이 있다. 때로는 내재된 이미지와 예견, 그리고 우리의 선호도를 좌우하는 편견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선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삶의 이야기는 대부분 이성적인 면과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인 면의 융합이 결정한다.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똑같은 경험이 해 볼 만한 도전이 될 수도 있고 악몽이 될 수도 있다. 같은 물잔을 두고 반이 비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반이나 찼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오랫동안 외로움에 빠져들었을 때는 이런 위협적인 감시 체계와 방어적이고 이기적인 관점으로 왜곡된 사회적 정보의 과민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인 관점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다. 그래서 사회적 유대감이 진심으로 필요한 사람이 오히려 그런 욕구를 억누르는 장애물을 만든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빠져들 수 있는 딜레마다.
 
고등학교에 갓 입학하여 파티에 처음 참석하는 10대, 아는 사람이 없는 새 직장에 첫 출근하는 20대, 남편과 사별한 지 얼마 안 되어 친구의 교회나 클럽에서 개최된 행사에 참석하는 나이 든 여성은 소외감으로 불안을 느끼기 마련이다. 우리가 불안을 느끼면 옛날 옛적 저 아프리카 평원의 수렵 채취인이 했던 행동을 그대로 하게 된다. 위협이 있는지 지평선을 자세히 살핀다는 뜻이다. 그러다가 마치 수렵 채취인이 숲에서 불길한 소리를 들었을 때처럼 외로운 사람은 대개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바짝 긴장하면서 자신을 보호하려고 심리적으로 최대한 방어적이 된다.
 
가장 편안한 상황에서도 감정을 정확히 전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하물며 강렬한 위협 인지로 몸 전체가 스트레스 호르몬에 흥건히 적셔지고, 무엇이 식은땀을 흘리게 하고 숨이 가빠지게 하는지 의식적으로 모를 때는 더더욱 어렵다. 따라서 우리 대다수는 삶의 많은 부분을 태엽을 감아 움직이는 인형처럼 행동하면서 보낸다. 똑같은 벽에 계속 다가가 부딪히면서 왜 우리가 그런 작고 외로운 방에 갇혔는지 의아해한다. 우리 자신이 무심코 그런 방을 만드는 데 거들었으면서도 말이다.
 

 

다행히도 바로 그런 인지 능력 덕분에 우리는 무엇이 우리를 구속하는지 깨닫고 활짝 열리는 방문과 창문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그런 긍정적 인지가 쉽게 생겨나지 않는다는 점이 여전히 문제다.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내는 ‘현실’은 다른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보고 우리에게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대부분 결정한다. 그들은 우리가 만든 ‘현실’을 보고, 그것을 기초로 우리를 규정하고, 그 평가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반응한다. 따라서 외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재교육과 자제력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현실을 비틀려는 우리 마음의 욕구는 일시적이지도 않고 피상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외로움을 느낄 때는 사회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식한다. 동시에 그런 욕구를 충족시킬 능력이 자신에게는 아예 없다고 생각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다른 사람의 편견이 이런 부정적인 피드백 고리에 언제나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새로 만나는 누군가가 재미있고 친절하기를 기대한다면 그의 즐겁고 재미있는 면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그를 대할 것이다. 부모나 교사가 아이의 지능이 우수하기를 기대하고 실제로 그렇다고 생각하면 그 지능을 드러내 보이도록 유도하는 행동이나 말을 하게 된다.
 
한 실험에서 참여자에게 이성 파트너를 소개해 주면서 만나게 될 그 파트너가 외로운 사람이라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고 임의적으로 미리 말해 주었다. 파트너가 외로운 사람이라는 말을 사전에 듣고 편견을 갖게 된 참여자는 그 파트너를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참여자 자신도 파트너가 외로운 사람이라는 편견을 가졌을 때는 그 파트너를 쌀쌀맞게 대했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부정적인 기대를 가지면 그 사람에게서 실제로든 상상으로든 우리의 그런 기대를 확인해 주는 행동을 보게 된다. 그 경험으로 우리도 자신을 보호하려고 부정적인 행동이나 말을 하게 된다. 결국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소외감과 고립감은 더욱더 심해지게 된다. 물론 유전적 기질에다 불운한 상황마저 겹쳐지면 누구나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특히 우리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생각 때문에 계속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힘든 경우가 적지 않다. 외로움의 덫이 사회적 기대와 염원의 한 가지 기능으로 자리를 잡아 가면서 실제 현실의 중요성은 더욱 낮아진다.
 

흔히들 외로운 사람은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새로이 만나는 사람을 흔쾌히 받아들일 것이라고 기대한다. 마치 굶주린 사람이 설익었거나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라도 기꺼이 먹으려 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실제는 다르다. 외로움을 느낄 때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새로운 사귐을 위해 사람에게 잘 다가가려고 하지 않는다.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외로움을 느끼는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같은 방을 쓰는 동료를 더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거리에 비례했다. 같은 방보다 같은 구역을 공유하는 동료의 경우 더 크고, 같은 층을 사용하는 동료의 경우 그보다 더 크며, 다른 층의 동료의 경우 그보다 더 크게 나타났다.
 
이러한 부정적인 ‘현실’을 만드는 데는 시간도 영향을 끼친다. 한 연구에서 참여자들은 각자 한 친구와 대화를 한 뒤 곧바로 두 사람의 관계와 대화의 질을 평가했다. 그다음 그 대화 장면을 찍은 비디오를 보며 다시 평가했다. 몇 주 뒤 그 장면을 머리에 떠올리며 또다시 평가했다. 그러고는 다시 그 비디오를 본 뒤 또 평가했다. 참여자 중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네 차례 모두 더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동시에 시간이 오래될수록 평가는 부정적이었다. 비디오를 본 뒤의 평가는 특히 더 부정적이었다.실제의 대화 직후 평가에서는 친구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기 때문에 사회적 인지의 부정성이 억제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부정적 인지가 제어되지 않았다. 그 당시 친구의 행동 이면에 깔린 이유를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시간이 오래 지날수록 객관적 현실은 외로운 사람의 부정적 사회 인지가 만들어 낸 가짜 ‘현실’에 자리를 내주었다.
 
학생들에게 토론에 협조적으로 행동하도록 부탁했을 때도 외로움을 느끼는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급우들에게 덜 협조적이었을 뿐 아니라 적절하고 효과적인 반응도 적게 보였다.이처럼 외로움이 유발하는 인지와 행동의 왜곡은 외부 환경이 개입하지 않아도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세계는 반드시 인자하지 않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염색체 차원의 세계도 생존 경쟁이 치열한 정글이다. 특정 유전자의 의도는 그 유전자가 전달되는 개인의 계획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유전자와 염색체 조각, 그리고 유전 정보를 담지 않은 DNA 물질은 전부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면서 다른 유전적 요소에 해를 입히기도 한다. 일부는 회복 과정에서 자신의 복제를 위해 다른 염색체를 공격한다. 또 일부는 모든 다른 염색체의 세대 계승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자신만의 계승을 확실히 보장받으려는 의도다.
 
이처럼 유전 정보가 없는 DNA에서부터 국가 간의 자유 무역 협정에 이르기까지 인간사의 모든 차원에서, 인간 조건의 일부로 치열한 경쟁이 존재한다. 그런 상황에서 외로움마저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면 우리는 엄청난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 존 카치오포 · 윌리엄 패트릭, 이원기 옮김,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 236~245쪽 중에서

 

 

흠, 어두운 이야기예요. 이 책은 인간이 이토록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유대감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라고 주장하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은 현실 묘사가 너무나 생생해요. 지난번 레터인 ‘사람들이 음모론을 믿는 이유’에서도 확인했듯이 의미 중독자인 뇌 구조의 무서움이네요. 그런데 중간에 “작가가 읽을 만한 책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환상” 부분에서 정곡을 찔렸어요. 바로 어제 그런 희망 또는 불합리성을 품고 저자와 밤새 술을 마셨거든요 >.<

글을 읽고 나니 외로움의 ‘구렁텅이’라는 표현이 와닿네요. 외로움을 느낄 때 오히려 사람들을 만나는 데 더 어려움을 느낀다는 점도 공감이 되고요. 방 안에 틀어박혀서 스마트폰의 필터버블 속에 갇혀 있으면 정말로 더 우울해졌던 기억이 나요 ㅠㅠ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외부와의 만남뿐일 텐데 바로 그게 어려운 아이러니. 외로움의 늪에서 현실에 대한 ‘긍정적 인지’로, 바깥으로 향하는 창을 내는 쪽으로 나아가는 방법은 뭘까요?

사회신경과학의 개척자이자 권위자인 존 카치오포는 지난 30년간 인간의 뇌, 신경계와 내분기계, 그리고 면역체계들이 사회 문화적 과정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지속적으로 연구해 왔다. 사회신경과학은 사회심리학과 뇌과학을 접목하여 인간 이해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최신의 학문으로, 이미 2006년부터 국내 학계에서도 다루고 있다. 카치오포는 사회학 분야와 생물학 영역을 통합하여 인간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근본적인 질문 하나에 직면하게 되었다. “인간에게 사회적 유대가 주는 효과는 무엇인가?” 그는 해답을 찾기 위해 학제 간 실험을 실시했고, 그 결과 인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야를 얻게 되었다. 바로 ‘외로움’이다. 존 카치오포는 정신과학과 심리학 분야 ISI ‘최대 피인용 연구자’ 가운데 한 명이며, ≪뉴욕타임스≫, ≪가디언≫ 등 유력 일간지에서도 ‘외로움’을 언급할 때마다 소개되어 왔다. 카치오포의 대표 저서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는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외로움’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 준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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