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에 대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인간에 빗댄 동물의 행동이나 언행을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과 약함을 조명하는 이야기 형식.” 따분하지만 부지런한 개미와 유쾌하지만 게으른 베짱이, 사악하지만 멍청한 늑대와 똑똑하지만 얄미운 여우를 보며 우리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보다 더 현실적으로 돌아보곤 한다.

대중문학과 순문학을 넘나들면서 가장 짜릿한 읽는 즐거움과 가장 첨예한 문학적 메시지를 한 권의 책에 담아 온 젊은 재능 이사카 고타로, 그가 3년여에 걸친 집필 끝에 내놓은 대작 장편소설 『밤의 나라 쿠파』는 이러한 ‘우화의 힘’을 아주 영리하게 이끌어 낸 작품이다.

일본 센다이 시의 지역 진흥회에서 근무하는 평범한 주인공 ‘나’, 아내의 외도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은 나머지 취미로 도피하고자 떠난 바다낚시 여행에서 ‘나’는 거센 파도를 만나 표류한다. 여기까지는 단단하고 확실한 현실, 그러나 눈을 뜬 주인공 앞에 말하는 고양이 톰이 나타나면서 우리는 작가가 장치한 정교하고 환상적인 우화의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 작품은 여러 층의 우화가 겹쳐진 커다란 태피스트리 같은 소설이다. 고양이 톰이 사는 세상은 높은 성벽으로 고립된 ‘밤의 나라’. 어딘가 현실을 연상시키면서도 우리가 사는 세계와 사뭇 다른 그 땅이 적국의 지배를 받게 된 후 벌어지는 부조리한 사건이 펼쳐지는 한편, 고양이들 앞에 갑자기 나타나 자기들에게도 생명권이 있음을 주장하며 사냥을 그만두라고 요구하는 쥐들의 이야기가 뒤섞이고, 옛날부터 내려오는 삼나무 숲의 괴물 쿠파의 전설과, 쿠파를 무찌르기 위해 옛날부터 마을에서 뽑혀 간 쿠파의 병사 전설이 또 다른 우화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 모든 복잡한 층들은 훌륭한 이야기가 항상 그러하듯 단 하나의 간결한 메시지를 그려 낸다. 우리 모두는 결국 ‘돌아갈 곳’을 위하여 싸우는 존재라는 것. ‘밤의 나라’ 주민들은 평화로운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골몰하고, 쥐들은 어느 날 갑자기 재앙처럼 나타나는 고양이가 없는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 쿠파의 병사들은 원래 살던 마을이 위기에 처하는 순간 돌아와 사람들을 구할 것이며, 센다이에서 표류해 온 ‘나’ 역시 그 언젠가 자신이 돌아갈 곳을 찾아낼 것이다.

지금, 돌아가야 할 곳을 위해 싸우는 당신을 응원하는 이 한 편의 우화. 오랜 잠에서 깬 쿠파의 발소리가 대지를 울리고 사라져 갔던 쿠파의 병사들이 소리 없이 돌아오는 순간,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당신의 귓가에 “함께 돌아갈까.”라는 다정한 음성이 들릴지도 모른다.

 편집부 양은경